돈(2)
아들이 카톡으로 질문을 적어 보냈다.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용이고 오늘은 진지한 생각을 나눌 기분이 아니라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운동하고 돌아온 아들이 "생각해 보셨어요?"하며 밝게 웃으며 물어와서 "그럼 간단하게 대화할까?" 했다.
우리가 보통 주식투자를 할 때 수익이 났음에도 남들보다 얻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으면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반대로 손해를 본 경우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게 피해를 입었다면 오히려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우리는 돈에 있어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나와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 그 손익을 상대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물론 이에 관해 이미 많은 연구 자료가 있기는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시기에 유독 돈에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너도 알다시피 사람의 행동이 합리적 근거에 의해 이성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아닐 때가 많음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잖아. 모건 하우절도 '금융'은 수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연구하는 영역이라고 말했지. 인간의 탐욕, 인간의 본능 등 사람의 심리를 아는 것이 '돈'의 흐름을 아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어.
엄마도 주식분야는 아니지만 상대평가의 잣대로 손해를 봤다고 느낀 경험이 있거든.
아파트 가격이 한 달새 1억 이상이 오르던 시절이 있었어. 엄마는 부동산이 오르는 초기에 집을 팔았기 때문에 큰 수익을 보지는 못했어. 엄마가 팔 때, 앞으로 집값이 어느 정도 오를 지 당연히 예측하지 못했지. 그러니까 살 때보다는 비싸게 팔았기 때문에 매매 계약을 할 당시에 정말 기뻤고, 지인들로부터 축하도 받았거든.
그런데 하루가 멀다하고 부동산 가격은 올라가고 한달 사이 엄마가 판 가격에서 1억 이상이 오른 거야. 이제는 더이상 내 집이 아닌 부동산 가격이, 나날이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내내 우울했고, 뭔가 크게 손해를 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어. 사실 4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이라는 후회가 있기도 하구.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 너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될 거 같다. 유독 '돈'에 있어서 손익을 따지는 기준이 상대적인 이유 말이야.
엄마는 분명히 아파트를 매입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난, 손해를 크게 봤다고 생각하고 있지. 사람들이 '돈'에 대해서만 상대적 평가로 손익을 따지는 것은 아닐테지만, '돈'이 다른 것에 비해서 영향력이 큰 건 사실이야.
너의 질문에 대한 엄마의 의견은 두 가지 정도 있어.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동문서답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들어봐.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은 남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하는 거라는 강력한 요구를 어렸을 때부터 받아 왔고 그것이 체화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충분함' 이란 개념이 없으니 '자기 만족'이라는 상태를 경험해볼 수 없는거지.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얻어지는 정서적 경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혹은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다' 를 설정하지 못하게 하잖아.
나머지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속하여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치있게 여겨지는 모든 것이,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신과 같은 위상에 있는 것으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살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지. 아파트를 광고하면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영양제'를 홍보하면서 '건강'을 살 수 있다고 과대포장하고, 반짝거리는 보석을 팔면서 '사랑'을 살 수 있을 것 처럼 말하잖아.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재화로 바꿀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하지. 우리는 그런 설득과 유혹이 만연한 사회그물망 안에 갇혀있으면서 '돈'이 신의 자리를 대신할 만큼 중요한 가치라는 것에 어쩌면 세뇌당하고 있을지도 몰라. 한병철 교수님이 말씀한 디지털파놉티콘인 동시에 '자본주의 파놉티콘'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하하
유독 '돈'에 있어서 상대적 비교에 의한 손익을 따지는 이유를 너는 뭐라고 생각하니?
엄마 말씀대로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완전히 자리잡으면서 행복, 건강, 사랑과 같은 모든 중요한 가치들이 결국 재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유독 돈에 있어서 상대적 비교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행복과 건강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귀중한 가치임은 분명해요.
다만 우리 대부분은 서로 비교를 통해 내가 더 낫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는 본능을 가지고 있죠. 때문에 이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가장 확실하면서도 객관적 척도인 돈을 가지고 우리의 상황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재물주의적 사고 때문에 돈에 관한 손익에 유독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 자체에 대한 만족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 과도한 돈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