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이들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나름 많은 것을 배워 온다. 때로는 다른 개념들과 헷갈려서 오답을 말하기도 한다.
아들 : 아빠! 일본에 63층 짜리 빌딩이 있데! 아빠 : 그래? 신기하네~
나는 아이가 어떤 오답을 말하더라도 정정하고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나의 이런 태도를 스스로도 많이 고민하였다. 아이가 관심을 보일 때 더 많은 지식을 알려줘야 하지 않나? 아이가 오답을 이야기하면 제대로 된 답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가 아닌가? 나는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이의 긴 학습 인생 중 지금 알려주는 단 하나의 지식이 중요할까? 나는 그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 아이가 자신감 있게 본인이 아는 것을 말하고, 더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은 아이의 오답도 인정해 줌으로써 시작된다. 훈육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떠한 답도 인정해 준다.
이처럼 인정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발표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배우고 기억하고 자랑하고 인정받고 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낀다. 결국 아이는 새로운 것을 더 경험하고 싶어 한다. 스스로 배우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아이의 대답은 맞는 것보다 틀린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사소한 하나까지 '그게 아니고~ 이렇게~' 정정하면 아이는 자신감이 없어진다.
‘아, 내가 틀렸구나. 더 정확히 배워서 다시 말해야겠어!’
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다. 어떻게 보면 어른들 중에서도 이러한 위대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비판은 쓸모없는 짓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비판을 해도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아이들은 속이 상하거나 반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판은 오히려 상대방을 강하게 만든다. 일단 틀렸다는 말을 들으면 반박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아이의 오답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아이에게 틀렸다고 정정해 주면 아이들은 본인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정정한 대답을 듣고도 자신의 생각을 우기는 아이도 있다. 이러한 감정적 소비는 무의미하다. 아이의 대답을 굳이 반박하기보다 오답도 인정해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이는 어떤 답이든 자신 있게 발표하고 질문한다. 자신의 답에 자신감 가진다. 비판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나에게는 몇몇 지식보다는 이러한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 몇 가지 정정하여 제대로 배운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자세다. 자신의 답,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인정받는 아이는 질문하고 생각한다. 나중에 자신의 답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앞두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비방이나 잡소리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중요한 것을 찾아갔다. 나는 우리 아이가 이러한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비방이나 잡소리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몇 가지 틀렸다고 해서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신감과 발언의 용기를 키워주는 것이다. 비록 답이 틀렸다고 해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아이를 만들고 싶다. 그 자존감과 의지는 아이가 이 오답 많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