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중에 육아를 비교적 먼저 시작한 나에게는 많은 질문이 들어온다. 주로 어떠한 경우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난감하다.
친구 : 애가 내 말을 안 들어~ 아빠가 이야기하면 안 듣고 엄마가 이야기하면 엄마 말만 듣는데 어떡하냐?
나 : 나야 모르지..
친구 : 전문가들 보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해라! 라는 조언해주잖아 그런 조언 없어?
나 : 세상에 그런 조언은 없어.
정말 세상에 그런 조언은 없다. 세상에 사람을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미디어에서 육아는 간단하다. 몇 가지 솔루션을 주면 몇 주만에 아이가 바뀌어 있다. 심지어 아이를 실시간으로 교육하는 모습과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그것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인스턴트 음식을 먹듯 지금 당장의 배고픔만 채워주는 행위다.
육아는 쌓아가는 것이다. 육아 전문가들은 그것을 인지하고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솔루션은 우리가 겉만 보고 받아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단순히 단호한 표정을 지으라는 지시에 따라 단호한 표정을 짓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단호한 표정’은 대상 부모와 자식 간 쌓여왔던 시간 속에서 꼭 필요한 하나를 이야기한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 정도만 따라 해서 해결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극적인 효과를 원한다. 미디어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솔루션 몇 개로 아이를 바꾸는 것. 나는 단호하게 그것은 ‘불가능’ 하다고 말하고 싶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들이 투자된 것이다. 충분한 상담을 하였고 전문가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였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가 쌓아갔던 시간들. 그 속에서 꼬이고 꼬였던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데미안의 등장으로 싱클레어의 인생이 바뀌었다. 싱클레어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왔다. 그런 환경에서 조금은 반항아스러운 데미안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데미안의 모습에 빠져든다. 싱클레어가 만약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렇게 소심했을까? 그는 그렇게 불량스러운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을까? 데미안이 관심이나 가졌을까? 하나하나 사건들이 쌓여서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아이의 행동과 생각을 그렇게 간단히 파악할 수는 없다. 육아법을 단편적으로 배워서 행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서로 쌓아온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신뢰, 아이의 성격 등 모든 것이 다른데 수학적으로 입력과 출력이 나올 일은 없다. 효과 빠른 감기약보다 하루하루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1화에서 나는 육아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육아의 본질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절대 그렇지 않다. 1주일 1달의 시간만으로 변하게 되면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전문가들은 육아법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경우 이렇게 하세요!라는 방법론적인 육아법의 홍수다. 우리는 미디어에서 비치는 육아 솔루션을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솔루션들이 그 상황과 그 쌓인 시간에만 활용 가능한 것이라고 인지하자. 직접 전문가를 만나보거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육아는 빠른 해결책이 없다. 부모와 아이의 시간. 하루하루 행복한 그런 시간들을 쌓아가며 육아를 완성시키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