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쫑알쫑알 말이 많은 딸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재미가 매일 쏠쏠하다. 아들과도 나름 대화를 많이 하고는 있으나 아들은 대화중 금방 잠들어 버리곤 만다. 딸은 마치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은 없는 것처럼 머릿속의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전달해주고자 한다. 어젯밤 대화 중 내 마음속에 훅 들어왔던 말이 있었다.
딸 : 아빠는 오늘 하루 어떤 것이 가장 재미있었어?
아빠 : 하나랑 같이 슬러시 먹었던 게 정말 즐거웠어. 하나는?
딸 : 나는 오늘 하루 모든 게 다 행복했어! 오늘이 또다시돌아오면 좋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니체의 영원회귀는 나에게 상당한 생각의 전환을 안겨주었다. 이 사상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석들이 여럿 있겠으나 모든 철학이 읽는 사람의 수준과 상황에 맞게 해석되므로, 나에게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생각하여 순간순간을 즐겁게 만들어라!"
흘러가는 삶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며 오늘과 순간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사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그저 흘러가는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될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 사상을 알게 된 후론 내가 살아있는 순간,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대화하는 순간, 밥 먹는 순간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 순간이 가벼운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되는 무겁고 귀중한 순간이니.
딸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이 또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라며 정말 잘 만들어 놓은 행복한 오늘의 영원회귀를 기원하는 우리 딸이 너무나 신기하고도 놀랍다.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놀아달라는 아이,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돕는다며 모아놓은 먼지를 온 사방에 흩뿌리는 아이, 오랜만에 걸려온 반가운 친구와의 전화중 계속해서 칭얼대는 아이. 모두 골치 아픈 순간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 순간들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자. 더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잠시 설거지를 멈추고 큰 리액션 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순간, 사방에 뿌려진 먼지를 다시 모으는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순간, 친구와의 전화를 몇 시간 후로 미루고 우리 아이와 더 많은 눈 맞춤을 하는 순간. 골치 아픈 순간들은 의외로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행복한 순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러한 질문들을 가질 수 있다. "아이와 항상 함께 놀아줘야 하나?" "아이가 보채고 울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등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상황별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육아책이나 유튜브들도 이런 종류의 '상황에 따른 대처 방안'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한다.
인문학에 대한 고찰이 깊어지면서 이 모든 질문들이 무의미해졌다. 그저 이 순간이, 나의 대처가, 아이의 반응이, 매 순간 앨범에 꽂혀서 영원히 재독하고 재독 해야 하는 앨범이 된다고 생각해 보자. 모든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