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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국 Oct 02. 2024

3. 왜요? 왜 그래야하는데요?

왜라고 묻는 반항적인(?) 아이에 대하여

추석 명절, 할머니댁에 가는날. 바쁜 와중에 아이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빠 : 할머니집에 갈때는 양말을 신어야해

아들 : 왜요?

아빠 : 그게 예의니까

아들 : 그게 왜 예의에요?

아빠 : 어휴 그냥 좀 해!



우리는(또는 나는) "?"라는 질문이 익숙하지 않다. 아이가 "왜요?"라고 물어 올때면 왠지 모르게 반항하는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그냥 좀 해!" 라며 역정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이것은 굉장히 큰 실수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히만은 너무나 평범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사람"처럼 보이지만 극악한 학살을 주도하고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인물을 보며 누구나(우리도) 생각없이 살면 악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심각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두려움은 아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나도 악하지 않을까? 내가 하는 일의, 내가 하는 생각의 선악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우리는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또는 본질에 대한 탐구 없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왜"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업무를 하면서 "왜 내가 이 일을 해야하는가? 이 일을 하는 본질적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은 후에야 우리는  생각과 내 일의 본질을 파악하고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물에 물을 주는 빨간 버튼을 계속 누르는 일을 지시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빨간 버튼이 물주는 버튼인지(왜 누르는지) 모르는 자는  버튼이 미치는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계속해서 버튼만 눌러댄다. 식물이 과식(음?)으로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이 버튼이 물주는 버튼인지(왜 누르는지) 아는 자는 버튼을 누를지 말지 판단할 수 있다. 버튼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고심하여 지금 버튼을 누르는 것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판단할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 명절의 실랑이는 짜증이 아니라 다음 대화와 같이 마무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할머니집에 갈때는 양말을 신어야해"

"왜요?"

"발 만져봐~ 촉촉하지? 그게 다 땀이야. 다른 사람 집에 질퍽 질퍽 땀을 남기는건 그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을것 같아. 엄마가 양말 깨끗하게 빨아서 너도 부담없이 할머니댁에 들어 갈 수 있을꺼야."

"그럼 더러운 양말을 신은 사람은 양말을 벗고 발을 깨끗하게 씻고 가야겠네요?"

"그렇겠네 무조건 양말이 좋은건 아닐 수도 있겠네?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양말이 잘 없는 나라에서는 양말을 못신고 대신 발을 깨끗하게 씻고 가야할수도 있겠어요."

"좋은 생각이네!"


사고의 확장이 느껴지는가. 아이는 양말도 신을 것이고 양말에 대해, 예의에 대해, 상황에 따른 변동성에 대해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 것이다. 이것이 "왜" 라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다. 아이의 왜 라는 질문을 지지해줌으로써 누군가 만들어놓은 틀을 생각없이 따르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현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해야하는 이유를 알고 행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해당 내용은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다.)



글이 길어질것 같지만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가보고 싶다.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에서 문을 열려고 하는 늑대의 모습이 나온다. 개의 경우는 문 여는 모습을 6년동안 봤으나 혼자서 문을 열지 못했다. 늑대와 개의 혼혈종은 2주만에 습득했다. 마지막으로 늑대는 단 한 번의 관찰로 문을 여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기술은 달랐다. 혼혈종은 주둥이를 썼으나, 늑대는 앞발을 사용한것이다. 늑대는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파악한 것이다. 늑대는 아마도 왜 주둥이로 문고리를 누르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였을것이고 문고리를 누르는것이 이 문제 해결의 본질이라면 앞발로 누르는것이 더 나을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을것이다.


"왜?"라는 간단한 질문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고안하게 해준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이렇게 위대하다.


어른들에겐 당연한것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왜? 라고 묻지 않는다. 다행히도 아이들의 세상에는 당연한것이 없다. 왜 양치 하는지 왜 세수 하는지 왜 수저를 써야하는지 모든것이 신기하고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나는 이 시기에 아이의 "왜?"를 더 키워줬으면 한다. 더 질문하고 더 본질을 파악하고 더 정해진 틀을 깨려고 하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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