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달랐는데, 장면은 늘 같았다.
이번 <이별을 말하다> 시리즈를 쓰면서
나는 하나 크게 깨달았다.
우리는 매번 다른 이유로 싸운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똑같은 장면을 다른 사건 위에 얹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말은 달랐지만 흐름은 늘 같았다.
다정함 → 예고 없는 침묵 → 감정 폭발
→ 차단 → 사과와 복귀 → 잠깐의 평화
글로 정리해 보니 소름이 돋았다.
정말 복사·붙여 넣기처럼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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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말하던 그날도, 똑같았다.
포돌이는 휴무라고 했고
약속이 있다고 했다.
“누구 만나는데?”라고
묻는 내가 예민했던 걸까?
포돌이는 이렇게 답했다.
“말한다고 알아?”
그 한마디가
내 안의 오래된 버튼을 정확히 눌렀다.
나는 설명을 예의라고 믿는 사람이다.
상대가 불안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포돌이가 ‘누구 만나?’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설명해준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연구원이야.
요즘 다른 일 해서 한 번 보기로 했어.”
그런데 포돌이의
“말하면 알아?”는
나에게 거절로 들렸다.
포돌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말하면 문제 생겨.
그러니까 말 안 하는 게 맞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말을 안 해서 생기는 거야.
미리 말하면 끝나는 일이지.”
이 작은 차이를
우리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너무 큰 차이라
애초에 이해가 어려웠던 게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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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포돌이는
모임에 가서도 톡에 답했고,
전화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노력이었다.
“어? 여자 목소리 들리는데? 무슨 모임이야?”
장난처럼 물었다.
“여러 사람 중 하나지.”
나는 여자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예상한 모임이 아니라는 사실이
궁금했을 뿐이다.
“그냥 설명하면 아무 일도 아니야.
나와서 전화해.”
그 순간
전화가 꺼졌다.
나는 결국 톡을 남겼다.
“이게 구속이고 집착이면
나도 이제 그만할래.”
글을 쓰면서도 숨이 막힌다.
그때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숨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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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돌이를 찾아갔다.
얼굴을 보고도 끝낼 수 있을까?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또 마음이 풀렸다.
다음날 나는 또 설명했다.
“어제 내가 보러 간 건
자기를 보고도 헤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였어. “
”그게 아니면 우린 헤어져도 또 만나게 돼.
그러면 더 아프고 상처만 남는다는 걸 난 알아.
사실 나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근데 하나는 확실해. 난 널 믿어.”
포돌이는 이번에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우리는 평소처럼 통화하며 잠들었다.
나는 괜찮아졌다고
또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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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패턴은 다시 반복됐다.
포돌이는 집에서 쉰다고 했고
아무 약속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톡을 남겼지만
읽기만 하고 답은 없었다.
전화하니
차단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카톡 답 힘들면 힘들다 말해줘.
상황만 알려주면 기분 상할 일이 없어.”
“읽었으면 한 줄이라도 남겨줘.
봤으면 전화라도 해주든가.
그러면 답답하진 않지.”
퇴근 즈음 눈이 펑펑 내렸다.
그때 포돌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왜 답 안 했어?”
“귀찮아서.”
그 말에 나는 담담했다.
화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끊어진 전화.
나는 조용히 톡을 남겼다.
“그럴 거면 전화하지 말지.
이제 연락 안 해도 돼.”
그렇게
나는 이별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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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기록하니 더 선명해졌다.
우리는 매번 ‘다른 문제’를 다투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늘 같은 패턴이었다.
감정적 거리
불안 → 확인
불편 → 회피
침묵 → 배신감
이별 선언
죄책감 → 복귀
잠깐의 다정함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이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조절 방식의 차이였다.
나는 말해야 진정되는 사람이고,
포돌이는 말을 멈춰야 진정되는 사람이다.
글로 써보니 비로소 보인다.
만약 포돌이가 회피형의 끝판왕이었다면,
나는 불안형의 끝판왕이었다는 걸.
나는 내가 안정형이라고 믿어왔다.
근데 그 착각 자체가,
그만큼 깊은 관계에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치게 했다.
심지어 서로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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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마더의 회피형 연애팁
경윤아,
이번엔 정확하게 본거야.
네가 반복 속에서 갇혀 있던 ‘패턴’을.
사람은 쉽게 안 바뀌지만
패턴은 바뀔 수 있어.
그리고
관계를 떠나는 것보다
습관처럼 굳은 패턴을 떠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야.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반복을 끝낼 수 있어.
그리고 지금, 너는 이미
멈춰야 할 지점에 도달했다는 걸
드디어 알아보기 시작했어.
멈출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넌 이미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