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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게 묻다 - 10장 - 비애〔悲哀〕

by 준서 Mar 24. 2025

  바람이 차가웠다. 날씨가 쌀쌀해 옷을 하나 더 걸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으니, 귓바퀴를 타고 바람 소리가 밀려 들어왔다. 그저 들렸다고 믿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곧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어디서 온 소리인지 생각하려는 순간, 내 안에서도 똑같은 무언가가 부러졌다.          

  개나리 가지가 부러졌다….     



  연우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고 나서, 나는 말 그대로 얼어붙었다. 메시지라는 감정과 언어 전달의 매개체를 통해 고통, 절망, 외로움이 한 번에 내게 넘어왔다. 

  미약한 신호들을 무심히 지나친 것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잘 알지 못해 그랬다고, 스스로를 변호하려 했으나 그것이 내 상태를 호전 시켜주지는 못했다.

  가지가 꺾이기 직전에야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하나하나의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일은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었다. 그 작은 흔적들이, 인제 와서야 나를 후회와 자책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나서 지민이와 민준이에게 공유하며,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진짜 죽겠어, 하는 마음과 일이 어디까지 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 손가락을 멈추었다.

  …내 머릿속에서 자책은 이미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음울한 생각들을 쫓아내려 애를 썼지만, 그것들은 참호를 구축하고 버티며 전선을 고착화시켰다.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이다.

  무언가 죽음을 막을 방법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 모든 것을 놓쳤다.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조금만 더 무언가 이해하려 시도했다면 지금 내 곁에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않았을까.

  죄책감의 구렁텅이에 굴러 들어가 처박혔다. 나는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시간마저 나는 외면했다. 나는 자살방조자였다. 법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자살방조자였다. 어쩌면 자살을 도운 것 같았다. 유서 대필을 하거나 죽기에 용이한 무언가를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행동했다면 연우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살방조자였다.        

  


   

  눈물이 가로등의 개나리처럼 샛노란 불빛을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누었다. 향긋한 봄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개나리 가지를 꺾어왔다. 정확히는 예리한 가위로 가지를 하나 잘라내었다. 다소 검은 가지와, 그 위로 소복이 쌓인 눈. 흑백의 대비가 적절했다.

  개나리 가지를 접목하면 키울 수가 있다길래, 나는 영상을 본대로 화분에 그것을 꽂았다. 은방울꽃이 있다고 착각했던 그 텅 빈 화분을, 앙상한 가지가 조금은 채우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를 보자, 현장의 기억이 선명하게 찍히는 느낌이 들었다. 차는 인도 옆 제 길을 따라 지나가고, 뒤늦게 몰린 사람들은 수군대던 모습이 기억났다. 한발, 아니 열 발은 더 늦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무력감. 그 무력감에 짙은 후회를 느꼈다. 조금만 노력했다면 죽기 전에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인제 와서는 의미 없는 그 후회를 말이다.     

  방학이 다가옴에도, 별 바뀌는 건 없었다. 학교에서는 잠깐의 애도 후 몇몇을 빼면 모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펴보지는 않았으나, 누가 담배 중에서도 궐련 한 개비를 내 입에 물려주면 곧잘 뻑뻑 필 수 있을 것 같았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코트를 입고 외롭게, 홀로 벤치에 앉아 흡연을 계속하다가, 담배를 짓이기고서 하늘을 째려볼 때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나는 차디찬 겨울의 한복판에 서서 입술을 둥글게 만들고서는 숨을 내쉬었다. 연기 같은 그 따듯한 공기가 대기 중으로 허옇게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더 하다가, 너무 멍청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쌀쌀하고 춥다 못해 속눈썹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공기는, 나를 세상에서 고립시켰다. 숨을 쉬면 쉴수록 나는 더 차가워졌다. 아아, 풍부한 감정을 잃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인생이 정말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세상은 참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테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토록 살아남으려 애쓰는 걸까?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모두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까?

  어차피 다 죽을 텐데, 열심히 살아서 무엇하겠나, 하고. 그래서, 그냥 방학을 막 보내기로 했다. 아빠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접목한 개나리 가지에 물을 주고 잠깐 살핀 후에는,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을 검색하거나 상처를 어떻게 하면 흉터를 남기지 않을 수 있을지 하루 종일 검색했다. 허무와 공허가 감정 대부분을 삼켜버렸다. 세상이 약간 흑백으로 보였다. …연우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았을까? 그래서 창가를 그렇게 무력하게 쳐다본 걸까?          



     

  오래전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아빠는 검은 옷을 입고서는 하염없이 우는 나를 달랬다. 네 살 때의 기억은 딱 그것뿐이었다.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은 저렇게 일만 하려는 아빠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저 돈을 벌려고 그런 건가, 했다. 생각은 깊지 못해서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어지간한 경우에는 딱 하나의 이유뿐만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심리와 감정이 행동의 근거가 된다. 단지 그 기억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서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후로도 한참을 생각했지만, 결론이 나지를 않았다.

  죽음은 점점 가까워져 나를 서서히 옥죄어가고 있었다.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이 기어코 나를 찾아온 건가. 괴로웠다. 누군가가 나를 구제해 주었으면, 했다. 참 야속하게도, 이런 나와는 다르게 개나리 가지는 화분에 잘 자리 잡고 있었다. 묘한 열등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심 그 가지가 부러웠다.          



              

  방학이 되었고, 나는 며칠 동안 할 일 없이 방에만 처박혀있다가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옷을 좀 더 두껍게 입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밤공기는 바람과같이 차가웠다. 그때 함께 있던 기억이 떠올라, 그네가 있는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개나리 가지는 여전히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빨간 그네에 앉을까 생각하다가, 멈칫하고는 초록 그네에 앉았다. 눈을 감고, 연우가 내 곁에 있으리라고 상상했다. 그때처럼.     

  붙잡기 싫어도 붙잡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편이 저림과 동시에 희미하게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떠올린 그 형상은 마치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수천수만 년 전의 빛을 내뿜는 별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질 것만 같아서 조심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그 사람을 잊는다는 걸까?     

  그 답이 어떻든, 내가 연우를 마음속에서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다시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그래도, 잊어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시은아, 아빠랑 얘기 좀 할까?”

  “….” 나는 조금 오랜만에 방에서 나왔다. 딱히 배가 고픈 일도 없었고, 어쩌다 한번 배가 고플 때는 방에 있는 먹을 것 한두 개를 입에 물리면 다시 잠잠해졌다. 화장실은 방에 딸려있었으므로, 정말 나갈 일이 없었다. 학원도 가지 않았다. 가서 무엇하겠는가, 해서. 여태까지는 그런 나를 아빠도 건드리지 않았다.

  “아빠가 너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을 해봤는데.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

  “아빠가 상담을 받아봤어. 전문가가 조언해 주더라. …너에게 지금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내 자식이 망가지는 건 더 이상 보기가 힘들다. …더 이상 널 몰아붙이지는 않을게. 아빠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것 같아.”

  “….”

  “미안하다. 그냥, 살아있어서 고마워.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그저 아빠 곁에만 있어 줘라.”

  나는 긍정의 표시가 아니라, 말을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약간 주억거리고서는 방으로 돌아와 어제와 별 차이 없는 개나리 가지를 살폈다. 아무리 내가 폐인 비슷하게 살아도, 이전 아빠의 행적을 보면 저런 말은 다소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빠는 오랫동안 나를 두고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아빠에게는 이런 내가 희망이었을까?          

· · · - - - · · ·          

  다 같이 봄에 개나리를 보러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봄이 왔고, 개나리가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작은 세상에 자리 잡은 개나리 가지는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법 파릇해 보이는 잎 몇 장이 가지 끝에서 나려고 했다. …개나리 가지도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데, 나는 뭘까. 대조와 함께 묘하지 않은, 확실한 열등감이 몰려왔다.

  나는 하다못해 식물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말인가?     

  아직은 발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개학 날이 되었고, 별일은 없었다. 집에 오면서 지민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직접 대면한 지는 얼추 두어 달은 된 것 같았다. 이렇게 못난 나를 만나주는 것만 해도 참 고마웠다.     

  “시은아, 요즘은 어때?”

  “…그럭저럭.”

  “오늘 만나자고 한 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뭔데.”

  “그냥, 너 이렇게 사는 모습 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안타까워?”

  “응. 그…, 연우가 죽은 거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 너 스스로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민준이도 그렇고, 단서는 찾기 힘들었을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연우가 죽는 걸 막을 순 없었을 것-”

  “말 함부로 하지 마!”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었는데, 미안….”

  “….”

  “좀 진정되면 나중에 또 대화하자. …난 가볼게.”     

  나를 도우려 한 지민이에게 나는 오히려 화를 내었다. 참 못난 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는 없는 걸까.          



     

  겨울이 끝나가는 어느 날,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은 여전히 차가웠고, 거리의 풍경은 삭막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처럼 보였다.

  방 안은 따듯했다. 개나리는 제 개화 시기를 완전히 착각하여, 따듯한 방 안에서 섣불리 꽃을 피웠다. 비록 몇 송이 밖에 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화분에 심겨 있던 앙상한 가지 끝에서, 작은 생명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문득 그네를 같이 탔을 때, 연우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 있어. 어쨌든 밤이 가면 아침은 오니까.” 자기도 힘들었을 거면서, 이런 말은 내게 왜 해주었는지. 너무 철학적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 우울감이 한층 심해졌던 것일까? 떠날 거라면 이런 말은 왜 해주었는지, 참. 나는 여태껏 너무 나약하고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분 속 가지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것은 분명 내 기준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내게 어떤 말을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불요불굴이라…, 내가 흔들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뭐가 부족했던 걸까? 행복? 희망? 사랑? 인정? 간절함?

  무엇이 분명한 원인인지는 내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아까처럼 무언가 파동이 일었다.     

  내 안의 고통은 여전했다. 죄책감은 나를 짓누르고, 자기혐오와 우울감은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흑백의 산 송장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화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안에도 아직 희미한 생명이 남아있다는 것을. 너무 작고 연약해서 쉽게 무시될 것 같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존재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이 두려웠고, 또한 나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살아볼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하다못해 개나리 가지보다도 못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아야 할, 고통받지 않아야 할 이유를. 연우의 죽음에 이어 나도 죽는다면 다른 것들은 다 뭐가 되는가. 연우의 죽음을 잊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솔직히 이제는 그만 놓아줘야 할 것 같았다. 잊는 것과 놓아주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창밖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겨울 햇살이, 화분 속 나뭇가지 끝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노란색을 띠는 꽃이 몇 송이 나 있었다. 잎까지 나면 연녹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져 제법 풋풋한 느낌을 낼 것 같았다.나는 창문을 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 꽃은 마치 나를 향해, “괜찮아, 괜찮아.”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희망도 어쩌면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저 화분 속의 개나리처럼, 나는 희망을 키우기로 했다. 하찮은 이유라 해도, 적어도 살 이유 하나쯤은 만들어둬야 할 것 같았다. 저 나무가 그 겨울에 꺾어왔던 나무의 크기만큼 자랄 때까지는 살아있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희망이 불확실이 아니라 불가침적인 개념이 되기엔 아직 멀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참으로 낙관적인 허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4월이 되어, 모든 개나리는 꽃을 피웠다. 죄책감은 약간 덜어졌다. 나는 사람과의 교류를 다시 시작했다. 조금은 더 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은 연우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뭐 자살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친구들이랑 납골당에 가기로 했다. 처음 가보는지라, 한참을 헤맨 끝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듣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연우에게 해지고 싶은 말을 준비해, 민준이부터 시작해 지민이와 나까지, 차례대로 읊었다.     

  “…어쨌든, 거기서는 잘 지내고. 뭐, 하….” 민준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되게 열심히 준비해 왔는데, 난 못하겠다.” 이어서 지민이가 말했다.

  “나라도 해야지.” 나는 숨을 들이쉬고, 또 내쉬었다. 긴장이 되었다.

  “야, 나연우. 뭐 못 듣겠지만, 나, 너 좋아…했어. 나중에 내가 죽으면 그때는 알아줘라.” 비록 당사자가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말했다. 지민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민준이는 꽤 놀란 기색이었다.     

  …곧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창밖의 노을이 지평선 너머로 기어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낙관적 허무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허무한 인생도 아름다울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마음이 따끔거렸다. 감정이 너무 빠르게 변했다. 어느 쪽으로든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희와 비가 교차하다 못해 얽히고설켰다. 몇 달 전만 해도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지금은 왜인지 더 살고 싶어졌다. 고작 말 몇 마디가 사람을 이렇게 바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급작스럽기는 해도, 어쨌든 죽고 싶어 미칠 때보다는 정신을 차리고 희망을 품고 있는 이 상태가 더 나은 것 같았다.      

  나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뇌는 그럴싸한 결론을 도출했다. 낙관적 허무주의란 희망에 대한 내 새로운 정의였다.     

  이 아무 의미 없는 세상에서 내가 살 이유를 만드는 순간, 그것이 희망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할까? 인생에는 누가 나 대신 정해준 의미도, 누가 나 대신 만들어준 희망도, 누가 나 대신 정해준 방향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내가 개나리 가지를 보고서는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더라도 스스로가 그 의미, 그러니까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인생이 그토록 허무한 것이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라면, 그전까지는 마음껏 희망을 품고 꿈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 그냥 뭐라도 해보는 거다.     

허무함과 무력감, 그 속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거. 그리고 이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에서 내가 살 이유, 그러니까 희망을 만들라는 것. 

  내가 수십 번의 질문 끝에 진정한 ‘희망’에게서 받은 답신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아직 세상이 두렵고, 여전히 우울하고 나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인생을 떠나보내는 것보다는 적어도 내게 살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다.     

  언젠가 행복이 온다는 뜻을 가진 은방울꽃도 좋지만, 나는 봄날의 희망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행복이 올 거라고 믿으며 그것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노란 희망 하나를 마음 속에 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개나리 가지 속에서, 이제 희망은 내겐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쓰다듬을 수 있는, 그런 실재하는 것이 되었다. 화분의 개나리꽃은 만개했고,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희망에게 다시 물으면, 그때는 은방울꽃이 아니라 개나리꽃을 물고 올 것이다.     





작년 9월에 쓰기 시작해서 올해 2월에 끝내고, 열망이 시들해져 한달 반 정도 묵혀두다가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피드백이나 질문 등은 jseopark0509@naver.com으로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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