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피곤한 나날들이었다.
며칠 동안 일과 운동 외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갈 즈음에 테일러 샾에 들렀다. 인생중대사를 앞두고 정장을 맞추기 위해 원단을 고르고 색상을 고민하고 구두까지 선택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단사는 익숙한 듯 친절하게 상담을 시작한다. 최신 트렌드부터 클래식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시안을 제시한다. 상담이라면 나도 뒤지지 않는 편이다. 점차 대화에 빠져든다. 장소, 계절 등을 상상해 보며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까를 막힘 없이 이야기하며 궁금한 질문들을 해가며 정장을 선택했다. 전체 치수를 재고 발 사이즈를 측정한 후 즐거웠던 시간을 마무리한다.
오후 시간 카페에 앉아 있다. 친구와 같이 러닝을 하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운동복과 신발 등을 주문한다. 꽤 큰 금액을 지불했다. 물론 일시불은 아니라서 당장은 부담이 덜 하다. 나는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빚졌다고 말이다.” 소비 패턴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 한동안 스피커를 바라봤고 또 어떤 시기에는 사진에 몰두해서 카메라와 각종 액세서리 장비들을 바라봤다. 이 외에도 시기마다 책, 음반, 운동복 등을 한참을 바라봤다. 언뜻 쇼핑 중독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시간으로 구입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1년 이상을 기다렸던 제품도 있었고 사진편집을 위해서 디스플레이를 공부해 가며 적정가의 노트북을 구입하기 까지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어쩌면 쇼핑은 꿈과 닮은 것은 아닐까? 너무 쉽게 이뤄진 꿈이라면 간절함과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 어느덧 나의 나이는 50대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다. 나의 꿈은 참 다양했다. 어떤 꿈도 이뤄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제2의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최근 구입한 물품 목록은 멀티 비타민, 프로틴음료 등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다음에는 어떤 꿈이 담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