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풀리는 집
새벽녘 걸려 온 전화에서 남편은 울고 있었다.
늦은 시간 걸려 오는 전화는 대게 술주정이었다. 그날도 자는 척 넘기려는데 출처를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남편이 내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다. 목소리가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여... 영해야... 흑흑...”
“왜? 왜? 무슨 일이야?!”
“나... 물에 빠졌어...”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밤중에 작업을 하다 물에 빠졌나? 이 늦은 시간까지 일을 시켰단 말이야? 크게 다쳤나? 뭍까지는 어떻게 빠져나왔지? 얘가 수영을 할 줄 알았나? 쏟아지는 질문을 삼켰다. 괜찮냐는 질문만 되풀이했다. 남편은 횡설수설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내내 입가가 바싹바싹 말랐다.
“그게... 오늘 일 마치고 회식을 했거든.”
“어, 어.”
“내가 술을 좀 많이 마셨는데... 갑판에 담배 피우러 갔다가 속이 너무 안 좋은 거야.”
“어.....”
“바다로 토한다고 몸을 굽혔는데 그대로 떨어졌나 봐. 나 너무 놀라가지고...”
“......”
이 상놈의 새ㄲ.
간 수치를 낮추려던 그간의 노력은 온데간데없었다. 도대체 술의 무엇이 너를 그리 집어삼킨단 말이냐. 열어둔 창문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험한 말 말고는 이을 말을 찾지 못해 입술만 떡 벌렸다. 연이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팔도 부러졌어. 119에 실려 왔는데 너무 춥고 아파... 어흐엉헝헝”
이런 바보 같은 놈을 서방으로 두고 살아야 한다니,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항상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배를 타면 유일한 낙이 술과 담배라고 했다. 더운 기관실에서 나와 마시는 맥주 한 잔은 천상의 맛이란다. 어지러웠던 마음도 폐 속 깊이 빨아들인 연기로 한 방에 정리가 된다고. 바다 위 몇 개 없는 기호품이었다. 늘상 끊으라고 재촉했지만, 속마음은 갈팡지팡했다. 스트레스를 풀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인다고? 나중에 만나서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조류가 육지 쪽으로 흘러서 망정이지, 방향이 달랐으면 난 죽었을 거야. 너 진짜 과부 될 뻔했다니까!”
검은과부거미가 되어 철없는 목덜미를 깨물고 싶었다.
철판으로 만든 배에서는 자주 사고가 났다. 계단에서 조금만 헛발질해도 중상이고 부딪히면 최소 멍이다. 기계실과 갑판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에는 보기에도 무서운 그림이 손가락 잘림을 경고한다. 일하다 다쳤다고 하면 맘속 깊이 쓰릴 일도 술 마시고라는 전제가 붙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이는 내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애주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훈장처럼 깁스를 하고도 남편은 여전히 배를 탔다. 직장을 구하면서 받은 대출로 다대포 해수욕장 근처에 전셋집을 구했다. 처음으로 생긴 우리 집이었다. 거실 한쪽을 장식한 목화꽃 벽지도 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 필요한 세간을 검색하고 최저가로 정렬했다. 좋은 품질은 아닐지라도 집에 있는 물건은 모두 우리 손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이날을 위해 일본과 호주에서 조금씩 구매한 장식품도 캐리어에서 나와 자리를 잡았다.
남편의 출항 직전에 친구들을 불러 조그맣게 집들이를 했다. 스테이크를 굽고 샐러드를 준비하고 피클을 담았다. 식탁 중앙을 장식한 투명한 물병에는 오렌지 주스와 샹그리아가 담겨 대조를 이뤘다. 짙은 청색의 테이블 매트는 바다를 닮았다. 하얀 접시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요트처럼 보였다. 선물로 받은 휴지에는 ‘잘 풀리는 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집에서 좋은 추억을 잔뜩 만들어야지.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그렇게 다짐했다.
남편이 없는 빈집에서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다. 이제는 돌아올 집이 생겼으니까, 헤매지 않고 만날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는 삶은 자유로웠다. 혼자서 백사장을 산책할 때는 유독 남편 생각이 났다. 검은 바다로 떨어지는 달그림자 너머로 그가 있을 배를 그리곤 했다.
-...
-내가 ‘...’ 보내지 말랬지? 삐진 것 같잖아.
-삐져서 보낸 거 맞거든?
-아, 미안.
메시지로 주고받는 일상은 평이했다. ‘...’를 보내면 감정이 상했다는 거였고, ‘ㅋㅋㅋ’가 붙으면 재밌다는 거였다. 그 이상의 추리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오해가 쌓이기 십상이었지만, 오해가 쌓일 만큼의 이야기도 주고받지 못했다. 나는 단순히 그가 바쁘다고만 생각했다. 육지에 들어온 남편을 잠시 만났을 때, 눈 밑의 검은 그늘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영해야, 나 한쪽 귀가 좀 이상해. 병원에 가봐야겠어.”
남편을 데리고 집 근처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때만 해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는 남편의 얼굴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돌발성 난청이에요. 소견서 써 드릴 테니까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늦으면 청력 잃습니다.”
부산대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돌발성 난청에 대해 검색했다. 골든 타임은 발병 후 3일 이내였다. 한국에 정박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차가 신호에 걸리면 가슴에 폭탄이 떨어진 듯 두근거렸다. 힘없이 놓여 있는 남편의 손을 붙잡았다. 내가 있으니 괜찮아. 그렇게 두려운 마음을 위로했다.
처방받은 스테로이드 덕분에 청력의 80퍼센트가 돌아왔다. 부작용으로 피부가 울룩불룩 뒤집혔지만, 귀가 먹는 것보단 나았다. 진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걸로 괜찮아지겠지. 물에 빠진 것도, 귀가 아팠던 것도 다 지나가는 액땜인 줄 알았다.
“영해야. 나 배 타는 거 한 달 정도만 쉬고 싶어. 새로 온 기관장이랑 안 맞아서 너무 힘드네.”
남편이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웬만해선 선상생활의 힘듦을 토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말까지 하나 싶었다.
“차라리 그만두고 다른 회사 가면 안 돼?”
“조금만 있으면 회사에서 1기관사로 진급시켜 준다고 했거든. 지금까지 버틴 것도 아깝고 해서 그만두고 싶진 않아. 그래서 말인데...”
푹 숙인 고개가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뜸을 들이던 남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영해야, 진짜 미안한데... 네가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하면 안 될까? 수술하고 회복할 때까지만 내가 옆에서 돌봐줘야 한다고... 그렇게 말할까 싶은데...”
가족이 아프다는 핑계는 꽤 쓸모가 있었다.
남이 거절할 수 없는 이유였다. 동시에 ‘어쩔 수 없다.’라는 만들어진 이유로 자신을 지킬 수도 있었다.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나, 나는 남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배 안에서 겪었을 그간의 고통과 고민, 딜레마. 유리창을 통과한 햇살처럼, 그의 속마음이 훤히 비쳐 보였다.
“알았어.”
“진짜...? 괜찮겠어...?”
“부모님이 아픈 것보단 아내가 아픈 게 낫지.”
“고마워, 영해야... 고마워.”
당황한 감정이 전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걸로 남편의 마음이 호전된다면야. 가짜 암쯤이야 얼마든지 걸려줄 수 있었다. 갑상선암이면 다른 병에 비해 예후가 좋았다. 나중에 동료를 만나더라도 변명을 대기 쉬웠다. 나는 남편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다고, 마음껏 써먹으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나한테 하나 빚 진 거다.”
침울했던 남편 표정이 조금 밝아져서 나는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말았다.
짐을 가져오려고 항구를 방문했다. 배 안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딱딱한 계단을 내려가면서 몇 번이나 굴러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면서 생각했다. 내가 너무 건강해 보이면 어쩌지. 목을 감싸고 기운 없는 사람을 연기했다. 통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남편의 방은 꾀죄죄했다. 야식으로 먹은 닭다리가 뼈째로 그릇에 말라붙어 있었다. 방 한구석에는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과 양말이, 열린 옷장에는 개지 않은 옷들이 대충 쌓여있었다. 가장 충격을 준 곳은 화장실이었다. 담배꽁초를 모아놓은 그릇에서 해로운 공기가 뿜어 나왔다. 찌든 때로 뿌옇게 변한 세면대와 변기에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기관장을 보러 간 남편을 대신해서 수세미를 들었다. 언젠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남편에게 덜 고약한 화장실을 내주고 싶었다. 상사에게 들었다는 온갖 모욕을 상상하며 누런 도기를 박박 닦았다. 매끈해진 표면에도 색은 남아 있었다. 네가 겪은 고통도 마음 한편에 남아버리겠지. 훗날 내가 진짜 암에 걸리더라도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