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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1. 2024

꾀병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11화 - 꾀병

혜진은 크레파스로 안방 벽에 낙서하고 있고,

인주도 혜진 옆에서 빨간 사인펜으로 낙서한다.

벽에는 동물 그림과 자동차 그림이 그려져 있고 한주의 한쪽 볼도 사인펜으로 빨갛게 칠해져 있다.

집안일을 마친 미라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아이들을 보며 말한다.

“벽에 낙서하면 안 돼. 그런데 누가 한주 얼굴에 이렇게 했어?”

혜진이 서슴없이 말한다.

“인주가 그랬어.”

“아이고, 이 개구쟁이들...”


미라는 한주를 씻기기 위해 한주의 손을 잡고 방에서 나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주가 미라의 손에 잡혀 뒤뚱거리며 나간다.


밖으로 나간 미라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린이들, 이제 낙서 그만하고 아빠 만나러 갑시다.”

“아빠 만나러?” 


혜진은 낙서하던 크레파스를 던지고 방 밖으로 나가자, 인주도 따라 나간다.


 

도서관 학습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현수는 진동음이 나는 핸드폰을 들어서 본다. 

‘아이들하고 도서관으로 가고 있어요’라고 핸드폰에 적힌 문자.

현수는 핸드폰에 뜬 문자를 확인한 후 웃으며 도서관 학습실에서 나간다.

 


 

현수는 도서관 앞 인도로 나와서 아이들이 오는 방향을 바라본다.

사거리의 큰길 모퉁이를 돌면서 나타나는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혜진은 싱싱카, 인주는 붕붕차, 미라가 미는 유모차에 탄 한주의 모습이 차례로 나타난다.

현수를 보고 경쟁적으로 속도를 내는 혜진과 인주.

그 뒤를 따르는 미라가 소리친다.


“인주야, 천천히 가, 그러다 다친다!”

아이들이 자기에게 쫓아오는 모습을 보는 현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현수 앞으로 다가온 혜진과 인주. 인주는 깜찍한 아동 장화를 신고 있다.


현수는 먼저 도착한 혜진에게 묻는다.

“아빠 보고 싶어서 왔어요?”

“아니, 엄마가 가자고 해서 왔어.”

혜진의 말에 머쓱해진 현수, 그렇지만 뒤따라온 인주에게 다시 묻는다.

“인주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응.”

아무 생각 없이 말한 인주의 대답에 현수는 쾌재를 부른다.

“그렇지! 요 아빠 똥강아지!”

혜진도 질 수 없다는 듯 나선다. 

“아빠, 나는 아빠 짝꿍,”

밉도록 이쁜 짓을 하는 혜진을 보며 웃는 현수,

“요, 여우딱지.”

그러자 혜진이 정말 여우짓을 한다.

“아빠, 맛있는 거 먹자.”


유모차를 밀며 오는 미라에게 현수가 묻는다.

“인주가 장화를 신고 있네.”

“말도 말아요, 인주하고 한주가 요즘 장화를 서로 신겠다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 말에 현수는 유모차에 앉은 한주를 보며 말한다.

“한주가 벌써 이렇게 컸나?”


“저기 공원에 가면 아이들 놀기 좋은 곳이 있어.”

가족들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공원으로 이동한다.



담쟁이덩굴 그늘막 안에 시멘트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있다.

현수와 유모차를 밀고 온 미라가 벤치에 앉고, 혜진과 인주는 공터로 향한다.

현수와 미라는 공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말한다.

“아이들, 피자 좋아해?”

“저번에 보니 잘 먹더라고요.”

“그럼 피자 시킬게.”


현수는 핸드폰으로 피자 주문한다.

“피자에 치즈스틱, 그리고 치킨너겟도요. (...). 예, 물론 콜라도요. (...). 예. 구립도서관 옆 공원으로 배달해 주세요. (...), 예 맞습니다.”


통화를 마친 현수는 유모차에 앉아있는 한주를 들어서 안는다.

“영어 자격증 시험이 언제라 그랬어요?”

“2주 남았어.”

“고생이 많네요.”

현수는 웃으며 말한다. 

“고생? 얘들에게 시달리는 게 고생이지.”

그 말에 미라가 말머리를 돌린다.

“참, 이번 주 금요일에 아이들 데리고 청주에 다녀올게요.”

“무슨 일로?”

“아버지 생신이라 가족들이 다 모이기로 했어요.”

현수가 의례상 물어본다.

“내가 데려다줄까?”

“무엇하러요, 시험공부해야 하는데… 그리고 주말에는 차가 막혀서 얘들이 고생하던데 평일에 고속버스로 다녀오려고요.”

“세 녀석을 데리고 다니기가 쉽지 않을 텐데…”

미라가 웃으며 말한다.

“밥주걱을 들고 가야지요.”

그 말에 현수도 따라 웃는다.


현수가 안고 있는 한주를 내려놓자 한주도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터로 간다.

현수는 뒤뚱거리며 걷는 한주를 뒤따라 다닌다. 


잠시 후, 피자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

현수가 카드로 음식값을 지불하고, 미라는 주문한 음식들을 보며 말한다.

“뭐 이렇게 많이 시켰어요?”

현수는 미라의 눈치를 보며 변명하듯 말한다.   

“몰라, 그냥 이것저것 주문했는데 많네. 내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건데 아까울 건 없잖아?”

“하기야 술값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이런 것을 아끼면 안 되지.”

현수가 멋쩍게 웃는다. 


그늘막에서 음식을 먹는 가족. 

큰 피자 조각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 한쪽 귀퉁이를 파먹는 혜진, 현수는 혜진이 불안하게 들고 있는 피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인주는 양손에 든 치킨너겟과 치즈스틱을 번갈아 가며 먹는다, 

손으로 피자를 작게 잘라 한주의 입에 넣어주는 미라, 간간이 젖병 뚜껑에 콜라를 부어서 아이들에게 먹인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먹다가 남긴 음식을 현수와 미라가 먹는다. 그래도 피자 상자 안에 피자가 반이나 남아 있다.

미라가 남아있는 피자를 보며 말한다.

“피자가 많이 남았네. 이거 집에 들고 가야겠다.”

그 말에 혜진이 신이 난다.

“엄마, 저녁때도 피자 먹자.”

“자, 어린이들, 아빠는 공부하라고 남겨두고 우리는 집에 갑시다.”

혜진이 아쉬운 듯 말한다.

“으응~ 엄마, 여기서 더 놀래.”

미라가 피자 상자를 들고 가기 위해 끈으로 묶으며 말한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 가서 놀자.”


혜진의 삐쭉 나온 입을 보며 현수가 웃는다.



공원에서 빠져나와 큰길 옆의 인도를 함께 걷는 가족.

미라는 유모차를 밀고, 현수는 줄로 묶은 피자 상자를 손에 들고 걷는다.

도서관 앞에 다다르자, 현수는 들고 있던 피자 상자를 미라에게 넘긴다. 

“혜진이 잘 가, 저녁때 아빠가 놀아줄게.”

“응, 아빠, 집에 빨리 와.”


한쪽 손에 피자 상자 들고 한쪽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미라의 불편한 모습.

현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소리친다.

“거기 잠깐만 있어봐, 짐 챙겨서 나올게.”


앞서가던 가족이 발걸음을 멈추고, 현수는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현수가 가방을 들고 도서관에서 나와서 미라의 손에 있는 피자 상자를 뺏어 든다. 

미라가 의아한 듯 현수에게 묻는다.

“공부 안 해도 돼요?”

“할 만큼 했어.”


혜진과 인주는 씽씽카와 붕붕카를 타고 저 멀리 앞서 간다.

그 뒤를 미라와 현수가 이야기하며 걷는다.     


한주는 누워서 젖병을 빨고 있고 인주는 동요가 나오는 TV를 보며 앉아 있다.

학습서를 펼쳐놓은 교자상 앞에 미라와 혜진이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자동차, 자동차를 적으세요.”

혜진은 자동차가 그러진 학습서에 연필로 또박또박 적으며 입으로 되뇌인다.

“자, 동, 차.”

“이번에는 숨바꼭질.”

“숨, 바, 꼭... 질.”

미라는 혜진이 적은 ‘곡’ 이라는 글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숨바‘곡’질이 아니고 숨바‘꼭’질.”

혜진은 자기가 틀린 것을 겸손하게 인정한다. 

“아, 맞다.”

혜진은 지우개로 ‘곡’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쓴다.

“‘꼭’, 다 썼어.”

“이번에는 혜진이가 좋아하는 백설공주.”

혜진이 글자를 쓰는 대신 미라를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 머리 아파.”

“머리가 많이 아파?”

“응.”


미라는 심각한 얼굴로 혜진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방으로 간다. 


 

현수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작은방 방문이 열리고 미라가 방문 앞에서 현수에게 말한다.

“혜진이가 머리가 아프다는데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현수는 방문 앞에 서있는 미라를 쳐다보며 묻는다.

“머리가 어떻게 아픈데?”

“공부하면 머리가 아프다는데 병원에 가서 뇌 CT라도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자 현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뇌 CT?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서 뇌 CT를 찍었는데 그거 굉장히 위험한 거야. 허벅지에 있는 관상동맥에 관을 넣어서 두뇌까지 도달하게 한 다음 거기서 조형 물질을 넣어 뇌에 피가 흘러가는 것을 CT로 찍는 것인데… 아주 위험해.”

미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현수에게 묻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죠? 얘가 머리가 저렇게 아프다는데…”

현수가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꾀병 같은데.”

웃는 현수와는 달리 미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꾀병이 아닌 것 같으니까 이러죠,”

현수는 문제의 핵심을 냉정하게 말한다. 

“머리 아프게 하면서까지 공부를 아이에게 강요한다는 것이 문제지.”

미라는 이렇게 말하는 야속한 현수를 쏘아붙인다.

“얘들 공부하는 것을 너무 사소하게 보는 것 아니에요?”


미라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현수는 의자를 돌려 앉으며 말한다.

“지금 혜진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공부시킨다고 해서 나중에 공부 잘하는 것 아니잖아.”

“지금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놔야죠.”

현수는 격해진 감정으로 높은 목소리로 말한다.

“공부하는”

안방에 있는 아이들이 놀랄까 봐 음성을 다시 낮춘다. 

“습관은 중학교 가서 들여도 돼. 왜 이렇게 어린애를 공부하는 걸로 닦달하는데?”

감정이 격해진 현수가 적극적으로 말하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 모습을 본 미라는 안방의 아이들이 놀랄까 봐 현수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먼저 바닥에 앉자 현수도 바닥에 따라 앉는다. 

문지방 사이로 마주 앉은 현수와 미라는 낮은 목소리로 언쟁을 이어간다. 

“기초를 안 쌓아 놓으면 어떻게 중학교에서 다른 얘들 따라가겠어요?”

“중고등학교 교육을 독학으로 한 사람도 많잖아. 뭐가 급해서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데?”

미라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한다. 

“극성을 부린다고요! 내가?”


미라가 말하는 것을 멈추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현수는 미라가 울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는다.


혜진이 안방에서 나오면서 엄마가 울고 있는 것을 본다.

“엄마... 울어?”

혜진이 울고 있는 미라 옆에 앉아 미라를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한다.

뒤이어 인주와 한주도 방 안에서 나와 울고 있는 엄마 품에 안겨서 아빠를 바라본다.

현수는 의자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미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혜진이 현수 방 앞에 서서 말한다.

“아빠 미워!”


현수는 안방으로 가는 혜진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그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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