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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18. 2024

애국자의 행실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23화 - 애국자의 행실

거실, 혜진은 교자상 위에 그림책이 펼쳐놓고 열심히 재잘대고 있다.

“영희는 주스를 마셨어요, 꿀꺽꿀꺽.”

미라는 그 옆에서 열심히 부추긴다.

“아이 잘했어요.”

“철수는 국수를 먹었어요, 후루룩 짭짭.”

“옳지.”


현수가 캠코더를 들고 작은방에서 나온다.

“식사하셔야지요?”

혜진의 책 읽기를 부추기고 있던 미라가 현수를 보며 말한다.

“응.”

미라가 일어나서 주방 쪽으로 가자 미라의 짝꿍 혜진도 책을 던지고 따라간다.

혜진은 주방 조리대 위에 놓인 짧은 앞치마를 든다.

“엄마, 나도 앞치마 해볼래.”

미라는 웃으며 혜진의 반바지 허리춤 안으로 짧은 앞치마를 끼워준다.

“어머나, 혜진이 미니스커트 이쁘네.”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 같은 혜진의 깜찍한 모습을 보며 미라가 말한다.

“정말?”

신이 난 혜진이 앞치마를 걸친 채 깡총깡총 뛰다가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나 춤추는 것 찍어줘.”

“응, 그래. 시작해, 찍어줄게.”

“아빠, 지금부터 시작할게, 시, 시, 시작.”

어떤 노래를 부를까 생각하는 혜진, 머뭇거리다가 결국 춤추는 타임을 놓친다.

그 모습을 보고 현수가 말한다.

“그럼, 아빠가 시작할게, 시, 시, 시작!”

앞치마를 미니스커트처럼 걸친 혜진은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노래를 부르며 팔놀림을 시작한다.

“♪손뼉을 치고 가슴을 펴고 ♬예쁘게 예쁘게 앉아 봅시다.”

혜진은 노래가사에 맞춰 춤을 춘다. 배운 지 얼마 안 되는지 춤이라 자신이 없다. 혜진 자신도 어색함을 느끼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눈은 동그랗게 귀는 활짝 입은 콕! ♬움직이며 움직이며 술래합니다~, 끝!”

쑥스럽게 춤을 추던 혜진이 ‘끝’이라는 말과 함께 춤을 멈춘다.

바라보던 미라가 혜진에게 웃으며 말한다.

“혜진아, 좀 더 당당하게 춤을 춰야지, 어쨌든 잘했어요.”

오기가 발동하는 혜진.

“다시 할게.”

혜진이 다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손뼉을 치고 가슴을 펴고 ♬예쁘게 예쁘게….”

현관의 초인종이 울린다. 혜진은 춤을 멈춘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현수가 현관 쪽으로 가며 묻는다.

“누구세요.”

“아래층 사는 사람인데요.”


현수가 현관문을 열자 굳은 표정의 장년 남자가 문밖에 서 있다.


아래층 남자가 딱딱한 어투로 현수에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래층 303호에서 올라왔습니다.”

현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래층 사람을 맞이한다.

“아, 그러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오셨나 봅니다.”

“예, 며칠 되었습니다. 들어오시죠.”

아래층 남자가 표정 없는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뭐 간단하게 말만 하면 되니까, 여기 서서 말하지요.”

현수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혹시 층간 소음 때문에 그러신가요?”

퉁명스럽게 말하는 남자.

“잘 아시네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방음 장판으로 시공하긴 했는데 효과가 없나 봅니다.”

아래층 남자가 비웃듯이 말한다.

“허, 그런 장판이 있으면 아마 대박 났게요?”


작은방 방문이 열리며 인주와 한주가 나온다.

아이들이 현수 뒤에서 아래층 남자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래층 남자도 아이들을 바라본다.

내복 차림의 천진난만한 인주와 한주 그리고 앞치마를 미니스커트처럼 걸치고 있는 혜진.

아래층 남자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모습에 굳은 표정이 풀린다.

“아이가 세 명입니까?”

“아, 예.” 

현수가 아이들을 향해 뒤돌아보며 말한다.

“아저씨께 인사드려야지.”

먼저 혜진이 쭈뼛거리며 낮은 톤의 목소리로 아래층 ‘무서운’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경계의 눈빛을 하며 역시 낮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인주.

“안녕하세요.”

한주, 당당하고 크게 인사한다. 역시 한주.

“아뚜뚜뚜 아따.”

아래층 남자는 천진난만한 모습의 아이들을 보며 웃으며 인사한다.

“하이구, 귀엽구나.”

“귀엽기는요, 개구쟁이들이라서 정신없습니다.”

“아이들이….”

아래층 남자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간다.

“아이들이 원래 그렇죠.”

한풀 꺾인 듯한 남자에게 현수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한다.

“불편 끼치지 않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예….”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머뭇거리다가 말을 잇는다.

“내려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현수는 남자의 인사말에 얼떨결에 같이 인사한다.

“예….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는 현수는 속으로 ‘뭐가 이렇게 쉽게 끝나’ 하며 뭔가 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층 남자가 가려고 하다가 다시 현수를 향해 돌아선다. 그리고 웃으며 말한다.

“아이들이 셋이라… 애국자이십니다.”

그 말을 들은 현수는 당황한 듯 대답한다.

“아, 예….”


남자가 가는 것을 보고 현수가 현관문을 닫고 돌아선다.

혜진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아빠, 애국자가 뭐야?”

그 말에 미라가 소리 내서 웃는다.



아침, 잠자고 있는 현수.

인주와 한주가 이부자리 한 모퉁이에 앉아 TV에서 나오는 만화 영화에 정신이 빠져있다.

잠자던 현수가 TV 소리에 잠이 깬다. 한동안 TV를 보는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한주를 붙잡아 이불 속에 끌어들인다.

TV를 잘 보다가 현수에게 느닷없이 이불 속으로 끌려 들어간 한주. 반항하듯 소리친다.

“아따따 우따파타야!”

한주는 발버둥 치며 현수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앉아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TV에 눈을 꽂는다.

현수는 TV에 나오는 만화 영화에 푹 빠져있는 인주와 한주를 웃으며 바라본다.

현수는 아이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인주, 만화 영화 재미있어?”

“…”

대답이 없자 이어지는 애국자 현수의 야비한 협박.

“대답 안 하면 TV 끈다.”

인주는 TV에 눈을 꽂은 채 무심하게 대답한다.

“재미있어.”

현수는 인주의 볼을 꼬집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간다.


거실로 들어서는 현수.

거실 한가운데 두꺼운 요가 깔려있다.

미라는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고, 혜진이 1인용 좁은 소파에 몸을 접어서 가로로 누워 아동 프로그램이 나오는 TV를 보고 있다.

현수가 혜진을 소파 안쪽으로 밀치고 소파에 앉으려 하지만 혜진이 버티며 소리 지른다.

“아, 왜~.”

밀려난 현수는 할 수 없이 두꺼운 요가 깔린 바닥에 앉아 소파에 기댄다. 불쌍한 애국자 현수.

주방의 미라를 향해 현수가 말한다.

“요가 깔려있네?”

“아이들이 요 위에서 놀게 하려고요, 그러면 바닥 울리는 소리도 안 날 거고요.”

“그거 좋겠네.”

그렇게 말한 현수는 앉은 채 발로 요를 두드려본다.


현수는 TV 모서리 위쪽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본다. '텔레비' 삐뚤삐뚤하게 쓴 혜진의 글씨.

그 외에도 '컴퓨터', '책장', '냉장고'라고 적힌 이름표를 차례로 본다.

현수가 이름표를 가리키며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가 쓴 거야?”

“응.”

현수는 웃으며 바닥에 놓인 TV 리모컨을 집어 들고 채널을 돌린다.

혜진이 보고 있던 프로그램 채널에서 다른 채널로 바뀌자 혜진이 짜증을 낸다.

“아, 왜~!.”

“아빠 뉴스 조금만 볼게.”

갑자기 나타나 훼방을 놓는 현수에게 혜진이 귀찮다는 듯 묻는다.

“아빠, 오늘 회사 안 가?”

“토요일이라 회사 안 가.”

현수의 말에 표정이 당장 바뀌는 혜진.

“아빠, 그럼, 오늘 밖에 나가자.”

혜진의 깍쟁이 같은 짓에 현수가 웃으며 말한다.

“글쎄.”

현수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검색하다가 원하는 뉴스 채널이 없자 리모컨을 혜진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미라는 작은방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짜증 내듯이 말하는 인주의 목소리.

“아, 아빠~.”

그리고 함께 소리 지르는 한주 목소리

“아따다 우따우따!”

미라가 그 소리를 들으며 웃는다. 그리고 작은방을 향해 소리친다.

“자, 아침 먹읍시다.”

작은방에서 들리는 현수의 목소리.

“어, 밥 먹으러 나가자.”

이어지는 인주의 조급한 목소리.

“아빠, 이거 조금만 더 보고.”

이 상황에서 빠질 수 없는 한주의 목소리.

“아따다 우따우따!”


잠시 후, 작은방에서 애국자 현수가 아이들을 몰고 거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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