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37화 - 우정에서 헤매이는 연애
초여름의 햇살로 가득한 화창한 한낮의 민속촌.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느긋하게 길을 걸으며 촌락의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린다.
민수와 재희는 민속촌 동네를 가로지르는 개울 옆 황톳길을 걷는다.
민수는 걸어가면서 재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그리고 민수를 항상 편한 친구로만 대했던 재희 역시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운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민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날씨가 참 좋네.”
그러면서 민수는 재희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러나 민수는 재희의 어깨에 손을 올린 것을 곧 후회하며 재희의 눈치를 살핀다.
재희는 자기 어깨에 올린 민수의 손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재희는 민수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말한다.
“날씨가 좀 덥다.”
재희의 말뜻을 알아차린 민수는 날씨가 좋다는 말에서 덥다는 말로 바꾸며 자연스럽게 손을 내린다.
“그래, 좀 덥긴 하다.”
재희는 둘 사이의 어색함에서 벗어나듯 앞서서 걷는다. 민수는 뒤따라가며 말한다.
“시원한 동동주 마실까?”
앞서서 걷다가 뒤돌아보며 민수에게 핀잔을 주는 재희.
“대낮부터 무슨 술이니?”
쓸데없는 말을 한 민수는 또 실실 웃는다.
민수와 재희는 촌락의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무료한 표정으로 집 안을 살펴본다.
민수와 재희가 촌락의 한 민가로 들어선다. ㅁ자 구조의 작은 시골 민가에 사람이 없어 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진다. 부엌이며 툇마루를 둘러보는 민수와 재희. 그때 바깥에서 '덩더쿵 덩더쿵'하는 자진타령장단이 들려오자 민수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추임새가 나온다.
“얼쑤!”
재희가 민수의 추임새를 듣고 묻는다.
“그게 뭐야?”
“봉산탈춤의 자진타령장단 추임새.”
“그래? 그것도 알아?”
민수는 제법 그럴싸하게 장단을 붙여 낮게 외친다.
“낙양~동천~ 이화~정!”
“그건 또 뭐야?”
재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민수를 쳐다보며 묻는다. 좀 안다고 뻐기는 듯 말하는 민수.
“응, 봉산탈춤 시작할 때 외치는 거야.”
“그래? 봉산탈춤 할 줄 알아?”
재희는 민수를 추켜세우듯이 말한다.
“군대 있을 때 내 졸병한테서 좀 배웠어.”
멋모르고 자랑하는 민수. 재희는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춰 봐.”
단호하게 명령조로 말하는 재희. 민수는 재희의 당돌함이 좀 당황스럽다.
“뭘?”
“봉산탈춤.”
재희의 황당한 요구에 민수는 무심한 표정으로 거부한다. 재희가 그런 민수의 모습을 바라본다. 재희의 눈길을 피해 민가의 안방으로 눈을 돌리며 딴전을 피우는 민수. 재희의 눈길은 그런 민수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현수는 말이 없는 재희의 눈치를 살피려고 재희 쪽을 흘끔 쳐다보다가... 결국 민수의 눈길이 재희의 눈길에 잡혀버린다. 재희의 요구를 더는 피할 수 없게 된 민수, 할 수 없다는 듯 자리를 잡고 서서 봉산탈춤의 불림 동작을 시작한다.
“낙양~ 동천~ 이화~정!”
민수는 큰 동작으로 봉산탈춤을 시작하자 재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민수의 춤을 바라본다.
민수는 봉산탈춤 불림 동작을 마치면서 추임새를 집어넣는다.
“얼쑤!”
민수가 춤 동작을 마치자 재희는 웃으면서 민수를 보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민수의 춤 동작을 보겠다는 듯 장독대에 걸터앉는다.
“잘하는데, 더 해 봐.”
“또?”
재희는 당연히 봐야겠다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응!”
민수는 재희의 명령하는 듯한 표정에 할 수 없다는 듯 다음 춤 동작을 이어서 한다. 자기 입으로 ‘덩더쿵 덩더쿵’을 낮게 외치며 고개잡이, 다리들기를 재희에게 보여주는 민수. 재희는 민수가 하던 ‘얼쑤’ 추임새를 따라 하며 민수의 춤 동작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재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민수가 황소걸음 동작으로 들어가자 재희는 허리를 굽혀가며 웃는다. 민수는 재희의 그런 모습을 보자 신이 난다.
민수가 봉산탈춤 외사위 동작을 마칠 때쯤 서양 외국인 중년 부부가 민수와 재희가 있는 집 마당에 들어선다.
민수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외국인을 보며 동작을 머뭇거리자 재희는 재미있다는 듯 추임새를 집어넣으며 춤추는 민수를 보챈다.
“얼쑤!”
민수는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춤 동작을 이어간다.
외국인이 민수의 춤 동작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리고 재희는 민수의 춤 동작을 더욱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민수는 겹사위와 연풍대를 끝으로 봉산탈춤을 멈춘다. 그리고 더운 듯 입고 있던 잠바를 벗는다.
민수의 춤 동작을 본 외국인이 박수를 치자 민수는 그들에게 싱긋이 웃은 후 대청마루로 가서 걸터앉는다.
“왓이스 더 네임오브더 댄스?”
외국인의 느닷없는 질문에 민수가 머뭇거리자 재희가 나서서 대답한다.
“마스크 댄싱, 봉산 마스크 댄싱.”
“봉산 마스크 댄싱? 왓어 원더풀!”
재희가 덧붙여서 말한다.
“앤드 다이나믹.”
외국인 부인도 웃으며 말한다.
“유 롸이트.”
그리고는 민수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즈 히 어 댄서?”
“노, 히이즈 마이 프랜드.”
“오우, 유어 보이 프랜드?”
재희가 웃으며 대답한다.
“노, 메일 프랜드(male friend).”
외국인 부부가 웃으며 민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민수가 웃으며 말한다.
“생큐!”
외국인이 떠나자 민수가 재희에게 묻는다.
“메일 프랜드? 그게 뭐야?”
재희가 웃으면 설명한다.
“메일 프랜드는 엠, 에이, 엘, 이 (male) 수컷, 그냥 남자 사람 친구라는 뜻이야, 보이 프랜드는 그렇고 그런 관계가 있는 남자 친구고.”
“아, 그래? 보이 프랜드가 더 좋은 거네."
재희는 민수는 눈을 훑기며 본다. 민수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나는 너의 진정한 보이 프랜드가 되고 싶어, 우리 저기 물레방앗간에 좀 갈까?”
재희는 민수의 말을 무시하며 말한다.
“흥, 웃기시네, 주막에 가서 밥이나 먹자.”
“주막?, 좋지.”
재희가 앞장서서 민가에서 나가자 민수도 따라나선다.
민수와 재희가 민가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뒤이어 농악대가 그들의 뒤에서 따라온다. 민수와 재희는 길 한쪽으로 물러서서 지나가는 농악대를 바라본다.
농악대와 뒤따르던 관광객들이 지나가자 민수는 들고 있던 잠바를 재희에게 맡긴다. 그리고 봉산탈춤의 황소걸음 동작으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재희는 민수의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상체를 뒤로 재치면서 웃는다. 그렇게 춤추는 민수가 농악대를 따라가려 하자 재희는 뒤에서 민수의 옷깃을 잡으며 만류한다. 민수는 웃으며 뒤돌아서서 재희가 들고 있는 잠바를 건네받고는 재희의 손을 잡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재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민수에게 손을 내어주고는 다정하게 웃으며 민수와 함께 걷는다.
둘을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간간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렇게 둘은 야외 식당에 이른다.
너른 마당에 하얀 광목으로 그늘막이 쳐진 주막 형태의 식당, 그곳에 들어선 민수와 재희가 담벼락 옆 탁자에 앉는다. 민수는 식탁 위에 있는 메뉴판을 재희에게 건넨다. 재희는 메뉴판을 펼쳐서 보며 민수에게 묻는다.
“산채비빔밥 어떻니?”
“그래, 그걸로 하자.”
별생각 없이 대답한 민수는 그래도 뭔가 아쉽다는 듯 재희를 쳐다본다.
재희가 그런 민수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동동주도 주문해. 그 대신 나는 딱 두 잔만 할 거야.”
민수는 웃으면서 곁에 다가온 종업원에게 주문한다.
“산채비빔밥 두 개 하고 동동주 주세요, 그리고 파전도 하나 하고요.”
“다 먹을 수 있겠어? 너무 많이 시키는 것 아니니?”
“안주는 있어야지.”
안주까지 시켜가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려는 민수에게 재희는 옛날 일을 들춰낸다.
“예전에 너하고 같이 학사주점에서 동동주 마셨던 거 생각나니?”
재희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를 챈 민수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한다.
“그때 내가 좀 취했지.”
“취하기만 했니?”
민수는 내뱉듯이 말을 한다.
“그래, 내가 너한테 고백도 했었다, 됐어?”
“오늘은 그러지 말라고.”
“글쎄, 그건 내 마음이 시키는 짓이라서 나도 어쩔 수 없어."
재희는 반항하는 민수를 쏘아 보며 웃는다.
동동주가 큰 뚝배기에 담겨 나와 파전과 함께 식탁에 오른다. 민수는 바가지로 동동주를 떠서 재희의 잔에 채우고, 자신의 잔에도 채운다. 둘은 잔을 부딪친 후 동동주를 마신다. 재희는 반쯤 마신 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 시원해, 안 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켠 민수는 재희를 보며 웃는다. 재희는 민수의 빈 잔에 동동주를 채워준다.
“천천히 마셔, 그러다가 취하지 말고.”
민수는 웃으며 파전 접시를 재희 앞으로 내민다. 뒤이어 종업원이 가져온 산채비빔밥이 식탁에 오르고 둘은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늦은 점심을 즐긴다.
“민수야, 나는 다 못 먹을 것 같아, 내 것 좀 더 먹을래?”
민수는 재희가 남긴 산채비빔밥 그릇을 자기 쪽으로 당긴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서서 허리를 몇 번 굽혔다 편 후 다시 자리에 앉으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이밥은 너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해. 나는 다 먹을 거야.”
이런 민수에게 당연히 핀잔을 줘야 하는 재희, 이번에는 같잖다는 듯 그냥 ‘픽’하고 웃어넘긴다.
식사를 마친 민수는 밀려오는 포만감에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댄다. 그리고는 눈길을 주막 바깥으로 돌려 민속촌의 오후 서너 시의 햇살이 비치는 촌락 풍경을 바라본다. 스피커에서 회심곡이 구성지게 흘러나온다.
“편한 오후다.”
“그러게.”
민수를 따라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재희가 민수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민수는 바깥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다 말한다.
“나 어릴 적 바닷가에서 앉아서 바다를 보던 생각이 나. 매년 추석 때마다 바닷가에 있는 큰 집에 제사를 지내러 갔어. 돌아올 때 간이역 앞의 바닷가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바다를 바라볼 때도 이런 햇살이었는데….”
“바닷가에 있는 간이역? 그런 곳이 있어?”
신기한 듯이 묻는 재희에게 민수가 바깥 전경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한다.
“응, 바닷가에 있는 간이역, 바닷가 너른 모래밭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배 위에 가족들과 같이 앉아 바다를 바라봤지. 파란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고 저 말리 바다에는 황포 돛배가 떠 있었어. 지금 느껴지는 햇살이 꼭 그때 같아.”
“가족들이랑 같이? 좋았겠다. 나는 나중에 아이를 세 명 정도 낳고 살고 싶어, 그래서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그러고 싶어.”
“글쎄….”
민수 자신도 모르게 재희의 말에 의문을 나타낸다. 유학을 다녀와서 바쁘게 살아갈 재희가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고 민수는 생각한다. 민수 눈에는 재희가 왠지 쓸쓸하게 보인다.
민수는 재희의 반쯤 남아 있는 잔에 동동주를 마저 채워주고 자신의 잔에도 동동주를 채운다. 민수는 말없이 잔을 비운 후 재희에게 말한다.
“이제 일어설까?”
“그래.”
둘은 자리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