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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Nov 20. 2024

어색한 데이트

연재소설 : 러브 코딩 36화 - 어색한 데이트

책상 위의 전화가 울리자 민수는 모니터에 눈을 꽂은 채 수화기를 든다.

“정보시스템실 신계약팀 이민수입니다.”

“나 재희야, 조금 있다가 집에서 출발할 건데 내가 준비할 것은 없어?”

재희의 전화에 모니터를 바라보는 민수 얼굴에 웃음이 감돈다.

“응, 없어. 그냥 오면 될 것 같아.”

“열두 시 반 아니면 한시, 너는 언제가 편해? 내가 시간 맞추어서 갈게.”

민수는 재희의 말을 들으며 혼잣말한다.

“열두 시? 한시? 열두 시에서 한 시?”

민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재희가 다시 말한다.

“열두 시 반이야? 한시야?”

민수는 혼자의 생각에서 깨어나 말한다.

“아, 그래, 열두 시 반.”

“너 지금 많이 바쁘구나.”

“아, 그런 게 아니고, 무엇 좀 생각하느라고. 중요한 것이거든.”

“그게 뭔데?"

“나중에 설명해 줄게, 우리 열두 시 반에 덕수궁 정문 앞에서 보기로 했지?"

“응, 그런데 다른 일 없지? 바쁘면 내가 조금 늦게 가고.”

“아니야, 그때 봐.”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급하게 키보드를 쳐서 소스 코드의 윗부분으로 이동하여 살펴본다. 

“아, 이거네.”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현의 자리로 다가간다. 그리고 일하고 있는 재현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말한다.

“어레이 (array:배열) 처리하는 코드 쪽 한번 봐.”

재현은 키보드를 급하게 쳐서 배열 처리하는 코드 쪽으로 프로그램을 옮긴다.

“그래, 거기.”

민수는 모니터에 나타난 프로그램 소스 코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이 배열 처리를 카운트하는 변수지? 이거 몇 바이트로 잡혔는지 데이터 디피니션(definition:정의)을 좀 볼 수 있어?”

재현은 키보드에서 위로 올라가는 가는 키를 연달아 눌러 프로그램 소스 코드 위쪽으로 움직인다.

“그래, 여기 있네,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필드가 숫자 (numeric:숫자) 두 자리로 잡혀 있잖아, 이것을 세 자리로 바꿔봐. “

재현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나타난 데이터 바이트 크기를 정의하는 부분이 ‘9(2)’에서 ‘9(3)’로 바뀐다.

민수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변수를 1씩 더해서 세 100에 도달하잖아, 그런데 이 변수 바이트가 두 자리이니까 100이 아니라 앞자리 1이 사라지고 00으로 바뀌는 거야, 0이 되니까 다시 시작하면서 프로세스가 계속 반복되는 거지.”

재현은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한다.

“아, 맞아요. 그거였네요. 이번에 입력 데이터가 많아져서 구분 항목이 100개를 넘어서니 이런 일이 생겼나 봐요.”

“이렇게 해서 작업 돌려 봐.”

“네, 알겠습니다.”

재현은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자 민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앉는다.

벽시계는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재현은 모니터를 보며 일하고 있는 민수를 부른다.

“선배님.” 

민수가 재현을 바라보자 재현은 손으로 OK 사인을 보낸다. 그 모습을 보며 민수가 웃는다.

그리고 재현은 옆자리의 신규에게 뿌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마감 작업 다 마쳤습니다.”

“아, 그래, 수고했어.”

재현은 전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른다.

“신계약팀 박재현입니다. …, 예, 작업 다 마쳤어요. …, 예, 지금 올라오시면 됩니다.”

재현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민수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한다.

“선배님, 오늘 낚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수도 재현에게 웃어 보이며 벽시계를 바라본다. 벽시계가 12시를 가리킨다.

민수는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팀원들에게 인사한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덕수궁 앞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민수는 재희를 기다린다.

재희가 저 멀리서 총총걸음으로 걸어온다. 우아한 푸른색 프릴 원피스에 핸드백을 어깨에 들여 맨 모습의 재희. 재희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민수에게 보이기가 어색한지 고개를 약간 삐뚜루 하게 숙여 땅을 보며 걸어온다.

민수는 그런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는 재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재희가 웃고 있는 민수에게 다가와서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한다.

“너, 웃지 마!”

민수는 그런 재희에게 능글맞게 대답한다.

“내가 웃는데, 왜?”

“지금 나 때문에 웃고 있잖아.”

“아냐, 웃음이 그냥 나오는 거야.”

능글스럽게 웃는 민수에게 약이 오른 재희가 민수를 한 번 더 다그친다.

“나 보고 웃고 있는데!”

민수는 재희의 억지에 고개를 돌려서 웃는다.

재희가 민망한 듯 묻는다.

“내가 그렇게 이상해?”

“아냐, 이렇게 이쁜지 몰랐어.”

재희는 입을 삐쭉거리며 말한다.

“미친놈.”

“아하하하.”

민수가 소리를 내서 웃자 재희는 민수의 웃는 모습을 흘겨본다.

민수는 준비해 온 종이봉투를 들어 보인다.

“식사 않았지?”

“그거 뭐니?”

“응, 빵 하고 주스.”

“나도 사 왔는데.”

“버스 안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그곳에 가서 점심 먹자.”

“거기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

“여기서 좀 더 가면 그곳 가는 버스가 있어.”


둘은 걸어가면서 서로에게 말하고, 또 말하는 상대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항상 티셔츠에 바지 입은 모습만 봤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 봐.”

재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외할머니 만나러 갈 때는 이렇게 입고 가.”

“아, 너가 어릴 때 함께 노름했다던 그 외할머니?”

“얘는, 노름이 뭐니? 그냥 고돌이야.”

“너 그럼 고돌이 잘 치겠다.”

“외할머니 말벗 삼아 고도가 쳤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

“외할머니가 너에게는 무척 특별한 사람이었나 봐? 옷도 이렇게 입고 갔으니까.”

“응, 그렇지. 어릴 적 나를 길러주신 분이니까.”

“그럼 나도 특별한 사람?”

재희는 고개를 돌리며 코웃음을 친다.

“흥!”


버스 매표소에 이르러 민수는 그곳까지 가는 버스표를 산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고 둘은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올라 재희는 창 쪽 그리고 민수는 복도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단둘이 나란히 앉은 민수와 재희는 한동안 말이 없다. 민수는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듯 들고 온 봉투에서 오렌지 주스별을 꺼내 재희에게 건넨다.

“주스 좀 마실래?”

재희도 핸드백을 열어서 밤과자가 담긴 봉투를 꺼낸다.

“여기 과자.”

재희의 밤과자를 본 민수는 들고 있는 주스별을 재희 앞 의자 등받이에 쳐진 그물망에 넣는다. 

“편할 때 마셔.”

그러면서 민수는 재희의 손에 쥔 과자 봉투를 건네받아 봉투를 뜯는다. 그리고 밤과자를 한 입 먹으며 고개를 돌려 재희의 얼굴을 바라본다.

민수는 비로소 재희의 입술에 립스틱이 옅게 발린 것을 본다. 재희의 속마음을 본 것 같아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는 민수 - 재희의 입술이 너무나 탐스러워서 물어버리고 싶다. 이런 황당한 생각에 민수는 혼자서 실실 웃는다.

재희는 웃고 있는 민수를 흘끔 쳐다본다.

“왜?”

“응, 아니야, 그냥.”

엉큼한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황급히 얼버무리는 민수. 재희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묻는다.

“전화할 때 너가 뭔가 생각났다고 말했잖아, 그게 뭐야?”

“아, 그거? 너가 중요한 말을 해줬어.”

“그게 뭔데?"

재희는 민수를 다시 쳐다본다. 민수는 재희의 앙큼한 입술을 다시 한번 흘끗 훔쳐본 후 말한다.

“프로그램 에러 원인을 찾고 있었거든. 너 덕분에 찾을 수 있었어."

“아, 난, 또….”

민수가 말한 중요한 것이 기껏 ‘에러’라니…. 재희는 약간 실망한다. 그것도 모르고 말을 잇는 민수.

“너가 열두 시 한 시 이렇게 말했잖아?”

“그래, 그게 왜?”

“열두 시 다음에 열세 시일까?”

“열세 시? 틀린 말도 아니잖아?”

민수의 뜬금없는 말에 재희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열두 시 다음에는 보통 한 시라고 하잖아?”

별 쓰잘데기 없는 말만 늘어놓는 민수를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듯 쳐다보는 재희.

“그래서?”

민수는 어려운 말로 재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재희는 민수에게 더욱 집중한다.

“그 에러가 99 다음에 100을 못 넘어서고 다시 0이 되는 논리적인 에러였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민수는 설명을 핑계로 재희의 입술을 훔쳐보며 말하기 시작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민수를 바라보는 재희.

“그 데이터의 값이 두 자리였거든, 구십구 다음에 백이라는 숫자 일공공(100)이 들어가야 하는 데 두 자리만 들어가다 보니 백의 마지막 두 자리 숫자 영영(00)만 들어갔어, 그래서 다음에 더해지는 데이터가 1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고 결국 그것 때문에 작업이 끝없이 도는 거였어.”

흑심을 가지고 재희를 보면서 길게 길게 말하는 민수. 그리고 그런 민수를 순진하게 바라보는 재희.

“그거참 재미있는 에러네.”

“뭐, 재미? 우리 팀은 그것 때문에 피를 말랐는데?”

“호호, 그래도 나 때문에 해결되었다며?”

“그래서 내가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흥.”

은근슬쩍 들이대는 민수에게 재희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뀐 후 다시 정면을 응시한다. 그래도 흐뭇해하는 민수의 표정.


재희가 다시 고개를 돌려 민수에게 묻는다.

“에러가 자주 나니? 나하고 전화할 때마다 에러 이야기를 하니까.”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잖아?”

“너는 회사에서 에러 고치는 일을 하는 거야?”

“응, 시스템 유지 (system maintenance)라고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것도 내 일이야. 그리고 밤에도 시스템이 돌다가 에러가 나면 복구해야 해.”

“그럼, 밤에도 회사에 나가야 해?”

“전화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전화로 고치고, 그것이 안 되면 밤에 회사로 나가야 해.”

“밤에 사무실에 혼자서 일하려면 무섭겠다.”

“그래서 밤에는 기계실로 가서 일을 해. 그곳에는 오퍼레이터들이 있거든.”

“밤에 전화가 오면 기분이 어때?”

“시간대마다 달라. 11시쯤에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만, 새벽 1시에 전화가 울리면 머리가 쭈뼛 서, 그리고 4시에 전화가 오면 다 포기하는 기분으로 출근 준비해서 기계실로 나가. 어차피 에러 고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잠잘 시간도 없으니까.”

“전산 일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 말에 민수는 빙그레 웃으며 재희를 다시 한번 더 쳐다본다.


어느덧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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