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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Nov 15. 2024

엉큼한 화해

연재소설 : 러브 코딩 34화 - 엉큼한 화해

남준은 일하고 있는 민수에게 다가와 바깥으로 나가자고 손짓한다.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준의 뒤를 따라 나간다.


“이야기 들었어?”

남준이 비상계단으로 들어서며 민수에게 말한다.

“무슨 이야기?”

“연형이가 회사 그만둔다는데.”

“왜?”

“왜 그만두는지는 모르겠어.”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는 민수는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아마 그때 일 때문인가?”

“뭐 아는 것 있어?”

“얼마 전에 일일마감작업 때문에 연형이가 좀 곤란했었잖아.”

“그때 잘 마무리되었던 걸로 아는데, 에이, 설마 그것 때문이겠어?”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남준, 그러나 민수는 어설픈 추측을 다시 말한다.

“아마도 그 일 때문이 아닌가 싶어.”

남준이 민수의 말을 ‘설마?’ 하듯 웃으며 말한다.

“내일 저녁에 시간 돼?”

“되지, 왜?”

“연형이 환송 모임.”

“이렇게나 빨리? 곧 그만두는 거야?”

“이번 달 말까지만 회사 나온대. 모임 장소는 내가 나중에 알려줄게.”

“그래….”

연형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민수는 못내 찝찝하다.



재희는 방에 누워서 소설책을 읽다가 방바닥에 책을 내려놓고서 천정을 바라본다. 전화가 울리자 재희는 책상 곁으로 기어가 수화기를 들고 벽에 기대어 앉는다. 

“여보세요.”

“아직도 몸져누워 있는 거야?”

“응, 선영이구나, 그냥 책 읽고 있었어.”

“이제 기운 차려야지, 오늘 저녁에 밥이나 같이 먹을까?”

“나가긴 싫고, 너가 우리 집에 와, 집에서 저녁 먹자.”

“이럴 때는 밖에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툭 털어야지, 그러니 나와.”

선영의 어르는 말에 무심하게 대답하는 재희.

“아니, 생각 없어.”

“민수 그 자식 아직도 연락 안 와?”

“단단히 삐졌나 봐.”

“그러면 민수는 아직도 모르고 있겠구나.”

“뭐 자랑이라고 내가 말하겠니.”

“이럴 때 민수랑 술 한잔 하면 좀 나을 텐데….”

선영의 말에 새침하게 자기 심정을 밝히는 재희.

“유학 못 가게 됐다고 말하면 걔 엄청 좋아할 거야, 하하하, 그래서 말하기 더 싫어."

“유학 포기할 거니? 내년에 다시 신청한다고 했잖아?”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 그러면 시집이나 가, 목 빼고 기다리는 놈도 있잖아, 하하하.”

“얘는…, 민수 단단히 삐졌다니까.”

“언제 그 녀석 불러내서 한잔해야겠구먼, 오해는 풀어야지.”

선영의 제안에 재희가 마지못해 호응한다.

“그래, 내가 정리되면 그때 한번 보자.”

“내가 저녁때 떡볶이 사 갈게, 떡볶이나 먹자.”

“응,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재희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방바닥에 드러누우며 소설책을 집어 든다.



민수 책상에 놓인 전화가 울린다.

“예, 정보시스템실 신계약팀….”

민수의 말 중간에 남준이 끼어든다.

“그래 알았고, 오늘 오복삼겹살집, 7시까지 와.”

남준은 이렇게 간단히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민수는 현업에서 올라온 시스템 변경 요청 문서를 다시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키보드를 쳐서 변경 요청과 관련된 소스 프로그램 코드를 모니터에 띄운다. 그리고 프로그램 코드를 아래위로 살피며 변경할 항목명(field) 을 찾아본다. 찾으려는 항목명이 프로그램에 없다. 다시 키보드를 쳐서 또 다른 소스 코드를 띄워서 살펴보기를 반복한다. 

민수는 뜻대로 잘 안되는지 몸을 뒤로 젖혀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들어서 다시 살펴본다. 그러다가 옆자리 중만에게 묻는다.

“팀장님, 특이하게 진단 청약건 가입 금액 제한을 체크하는 변경 요청을 진단 심사 어느 프로그램에 있는지 아세요?”

“글쎄… 진단 심사 부분보다는 가입 한도 심사 부분에 있을 거야, 아마 그쪽 프로그램에서 찾아보면 될 거야.”

“아, 그렇겠네요, 그쪽을 한 번 살펴볼게요."

중만의 도움말에 민수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친다.


잠시 후 민수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삐삐가 울리자 민수는 삐삐를 들여다본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들어 삐삐를 쳐다보며 전화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선영의 목소리, 재희 때문에 연락한 것이라 짐작하는 민수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선영이구나.”

“바쁜데 내가 연락한 것 아니니?”

“아니 괜찮아, 잘 지냈어?”

민수는 재희에 관한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안부를 묻는다.

“그냥 지내, 그런데 너 요즘 재희하고 연락 안 해?”

너무나 듣고 싶은 재희 소식, 그러나 민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저번 주에 연락했었어.”

“그때 무슨 이야기 못 들었니?”

“무슨 이야기?”

재의의 소식이 궁금한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간다.

“재희 유학 신청한 것 떨어졌잖아.”

“아, 그래?”

“정말 몰랐어?”

의외의 소식에 민수는 후회하듯 말을 잇는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재희가 많이 힘들었겠네.”

“그러니까 재희에게 연락해 봐.”

“오늘 재희랑 같이 볼까?”

재희와의 관계가 서먹한 민수는 선영을 끌어들인다.

“그게 좋겠지? 그런데 너 시간 돼?"

민수는 연형의 환송 술자리 약속이 생각난다.

“아, 참, 오늘 입사 동기 환송회가 있어서 그런데…, 어떻게 하지?"

“일단 재희에게 전화 한 번 해봐.”

“응, 그럴게, 알려줘서 고마워”


민수는 선영과의 통화를 마치고 전화기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전화기로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거둬들이며 주저한다. 

민수는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꽃 배달 서비스 팸플릿을 바라본다. 민수는 그 팸플릿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며 전화 버튼을 누른다.



좌식 삼겹살 음식점, 음식과 소주를 앞에 두고 민수의 동기들이 앉아 있다.

민수 방으로 들어서며 미리 와 있던 동기들에게 말한다.

“벌써 와 있었네?”

미리 와 있던 동기들이 민수에게 핀잔을 준다.

“민수가 회사에서 제일 바쁜 것 같네.”

민수 자리에 앉자 연형이 민수에게 소주병을 내민다.

“자, 받아.”

“민수는 소주를 받으며 묻는다.

“괜찮아?”

“뭐가?”

“회사 그만두는 거.”

연형은 대답 대신 웃는다.

민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조금만 참지 그랬어?

그곳에 있는 동기들이 소리 내 웃는다.

민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남준이 민수에게 말한다.

“연형이가 IDS로 간대.”

민수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그래? 진짜 그 IDS로 간다고?”

연형은 기분 좋은 듯이 웃는다.

민수는 연형의 잔을 채우기 위해 소주병을 내밀며 말한다.

“잘됐네, 축하해, 그런데 거기서 어떤 일 해?”

“응, 박스 장사하러 가.”

그 말에 민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연형이 다시 말한다.

“시스템 하드웨어를 박스에 넣어서 파는 영업하러 가.”

“거기서 프로그램 안 짜고?”

“내가 돌았냐? 프로그램 짜게. 프로그램은 내 적성에 안 맞아.”

민수는 연형의 말에 웃는다.

일행은 떠들며 술을 마시면서 시간이 흐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연형이 2차를 사겠다며 일어서고 동기들도 함께 일어서서 호프집으로 향한다.


동기 일행은 500CC 생맥주잔을 앞에 두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형이 민수에게 말한다.

“김중만 팀장 대단하던데, 카리스마가 완전 쩔드라고.”

민수 웃으며 말한다.

“그게 다 짬밥 아니겠어?”

“저번에 너희 팀장이 우리 팀에 왔었잖아, 그때 참 고마웠다.”

“우리 팀장은 아랫것들을 잘 챙겨주는 편이지.”

“맞아, '아랫것들' 그 말 듣고 그때 우스워서 참느라 혼났다.”

민수의 허리춤에 삐삐가 진동하자 민수는 발신 번호를 확인한다.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민수는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로 왁자지껄한 생맥주 홀 안의 공중전화로 재희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신호음이 가고 재희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술이 얼콰하게 취한 민수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한다.

“민수야.”

그런 민수를 재희가 다짜고짜 쏘아붙인다.

“뭐니?”

“민수는 당황하며 묻는다.

“뭐가?”

“장미꽃.”

“응, 내가 미안해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니?”

“그때 너가 힘든지도 모르고 내가 화를 냈던 게.”

그러자 재희가 다른 꼬투리를 잡고 늘어진다.

“아무튼 장미 고마워, 그런데 카드에 '힘내'가 뭐니? '힘내'가?, 내가 운동선수니?”

“힘내서 다시 공부하라고, 그래서 꼭 유학 가라고, 그런 뜻이야.”

장난치듯 따지던 재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변한다.

“너는 내가 유학 가는 것이 좋겠니?”

“너가 원하는 거잖아.”

“그럼 너는?”

갑자기 분위를 바꾸어서 심각하게 묻는 재희.

“나는 너가 좋아하는 것을 하길 바라.”

“너는 내가 곁에 있기를 원하는 것 아니었어?”

현수도 심각하게 말한다.

“오늘 낮에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 유학 못 간다면 너가 얼마나 힘들까 하고, 그래서 너는 유학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

“내가 유학 가면 너가 힘들잖아, 괜찮겠어?”

“응, 여자 친구가 군대 갔다고 생각할 거야.”

“여자 친구? 나는 여자로서 너에게 해주는 것도 없는데?”

농담처럼 말하는 현수에게 심각하게 대답하는 재희, 현수가 묻는다.

“무슨 뜻이야?

“남자들이 바라는 그런 거 있잖아, 내가 굳이 말해야 하겠니?”

민수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아, 그거? 너는 내가 남자로 안 보이듯이 나도 너가 여자로 안 보여.”

통쾌하게 복수하듯 말하는 민수, 그러나 민수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재희는 다시 쾌활한 목소리로 바꾸어서 말한다.

“어머, 그렇니? 다행이다, 이 바보야, 그런데 왜 나에게 동그랑땡이나 애플 히프 그런 야한 말을 해?”

“사실 너에 대한 그런 상상을 해 봤어, 그런데 그다음이 감당이 안 돼, 너와 나 사이가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수하듯 말하는 민수에게 재희는 다시 장난치듯 말한다.

“그거 봐, 이 엉큼한….”

술을 마신 민수가 거리낌 없이 말한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너의 모습이 달라져 보일 것 같아서 그게 좀 두려워, 나는 너가 그냥 좋아.”

민수의 말에 재희가 그냥 가만있다. 어색한 침묵, 그래서 민수가 다시 말을 잇는다.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지금이 좋잖아?”

“칫, 바보!”

“우리는 바뀐 거 없어, 그러니 하던 거 계속해, 너가 바라는 유학.”

“민수야….”

재희가 낮고 진지하게 민수의 이름을 부르자 민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른다.

그때 마침 공중전화의 금액 표시가 깜빡인다.

“공중전화 시간이 다 된 것 같아, 나중에 전화할게.”

“응, 민수야, 고마워.”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동료들이 있는 테이블로 간다.



민수는 재희와의 통화를 마치고 돌아와 앉는다.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 민수, 생맥주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다. 


호프집의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동기 한 명이 높은 목소리로 말한다.

“기계가 우리 같은 사람을 이렇게 못살게 굴지 몰랐어!”

또 한 명의 동기가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우리는 기계 노예야, 밤에도 기계가 부르면 불려 가야 하잖아?”

회사를 그만두는 연형이 부러운 듯 소리치는 동기들.

“그러니까 이제 연형이 너는 그런 기계를 팔러 다니는 나쁜 놈이고….”

“너는 선택을 잘한 거요. 허구한 날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일하는 것도 지겨워.”


재희 생각에 잠겨 있는 민수, 동기들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허공을 주시한 채 혼자서 실실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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