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러브 코딩 35화 - 90년대 토요일 사무실 풍경
좁은 화장실 창문을 비추는 햇살만으로도 화창함을 느낄 수 있는 토요일 아침, 민수는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온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민수를 보며 말한다.
“웬일이고? 안 깨워도 일어났네? “
민수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웃는다. 그리고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앞으로 다가가 앉아 식사한다.
어머니는 식사하는 민수를 보며 묻는다.
“어젯밤에는 전화 오지 않았더냐?”
“예, 안 왔어요.”
“무슨 회사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서 사람을 못살게 구는지….”
지방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가 이번 주말에 올라오시는지 민수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내일 아버지 오시나요?”
“이사 때문에라도 올라와야지.”
민수는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오늘 일정을 생각하며 식사한다.
식사를 마친 민수는 자기 방에서 장롱을 열어 옷을 고른다. 청바지, 회색 티셔츠, 푸른색 점퍼를 입고는 장롱문 안쪽의 거울을 본다. 그러다가 민수는 다시 장롱을 뒤진다. 장롱에서 카키색 바지를 꺼내서 갈아입는다.
민수는 방에서 나와 거실의 큰 거울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어머니는 민수의 그런 모습을 보며 신기한 듯 말을 한다.
“네가 옷을 다 골라서 입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나?”
거울 앞에 서 있는 민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핑계를 댄다.
“토요일은 사복을 입고 출근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은근히 신경 쓰이네요.”
그 말에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양복은 아무렇게나 입더니, 사복은 바지런히 골라서 입네.”
“그래도 양복 입고 다니는 게 더 편해요, 옷에 신경 안 쓰고 매일 그냥 입기만 하면 되니….”
어머니는 현관을 나서는 민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내일 이사하는 거 알제?”
민수는 운동화를 신으며 투덜거린다.
“이럴 때 민영이가 있어야 되는데. 하필 왜 이때 출장을 갔는지….”
“그러게 말이다. 오늘 집에 일찍 들어오도록 해라.”
“오늘 회사 일이 있어서 6시 정도의 집에 올 것 같아요.”
“내가 작은 짐부터 정리해 놓을 테니, 너가 오면 같이 큰 짐을 같이 꾸리자꾸나.”
“예.”
민수는 어머니의 당부를 들으며 출근길을 나선다.
회사에 출근한 민수는 모니터를 통해 일일마감작업 결과를 점검하며 작업일지를 작성하고 있다.
사복 차림의 소라가 출근하면서 민수를 쳐다본다.
“일찍 출근하셨네요?”
“예, 안녕하세요.”
소라는 민수의 복장을 쳐다보며 말한다.
“산뜻해 보이네요, 오늘 혹시 데이트하세요?”
정확히 짚은 소라의 말을 민수는 쑥스러워하며 얼버무린다.
“그래요? 괜찮아 보여요?”
“그래도 선생님은 양복이 더 잘 어울려요.”
민수에게 은근히 관심을 보이는 소라, 그 말을 들은 민수는 소라를 추켜세운다.
“소라씨는 사복 입으니까 더 어려 보이는데요?”
소라는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자기 자리로 간다.
재현이 큰 가방을 들고 출근하며 민수에게 인사한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응, 안녕. 그 가방은 뭐야?”
“오늘 회사 낚시 동호회에서 낚시하러 갑니다.”
민수는 부러운 듯 묻는다.
“어디로 가는데?”
“춘천 소양호요, 밤낚시합니다.”
“밤낚시? 몇 시에 출발하는데?”
“점심 먹고 1시에 회사버스로 출발해요. 그런데 선배님도 어디 가세요?”
“어떻게 알았어?”
“소풍 가는 복장인데요.”
민수는 겸연쩍은 듯 웃는다.
재현은 모니터를 켜고 일일마감작업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일일마감작업을 점검하던 재현은 심각하게 모니터를 응시하며 혼잣말한다.
“이게 왜 아직 끝나지 않았지? 이상하네.”
걱정스러운 표정의 재현이 민수를 보며 말한다.
“선배님, 야간작업이 지금까지 계속 돌고 있어요.”
“몇 분짜리 작업인데?”
“보통 20분이면 마치는데 오늘은 5시간째 돌고 있어요.”
“input 데이터가 몇 건이야?”
“보통 삼만 건 내외입니다. 오늘은 그것보다 조금 더 많거든요.”
“루핑(looping:무한반복)인 것 같은데….”
“루핑요?”
“응, 처리를 무한 반복하는 거….”
“아, 맞아요. 루핑! 작업을 중지시켜야겠네요?”
“작업을 중지시켜야 하는데, 여기서는 중지시킬 수가 없어.”
재현이 초조한 듯 묻는다.
“어떻게 해야 하죠?”
“운영 환경에서 도는 작업은 기계실에 전화를 걸어서 퍼지 (purge:강제 종료) 시켜 달라고 해야 해.”
“퍼지요?“
“응, 강제 종료, 퍼지.“
재현은 어떻게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민수가 다시 나선다.
“이 작업 뒤로 이어지는 작업이 몇 개 있어?”
“없어요, 이 작업은 그냥 리스팅 작업입니다.”
“그러면 퍼지시켰다가 에러 고쳐서 재작업하면 되겠네.”
마침 신규가 출근하여 자리로 다가오자 재현은 신규를 보며 말한다.
“선배님, SGNMLIST 마지막 스텝이 5시간째 계속 돌고 있어요.”
“그게 지금까지 돌아? 인풋(input) 파일은 몇 건이야?”
“삼만 오천 건 정도 됩니다.”
“루핑이네. 기계실로 전화를 걸어서 작업을 중지시켜 달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재현 전화 수화기를 들어 전화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여기 신계약팀인데요, 아직 돌고 있는 일일마감작업을 중단시키려고 합니다, …, 예, 그 작업 맞아요. …, 예, 퍼지 시켜 주세요, …, 감사합니다.”
재현은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고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사복을 입은 신계약 팀원들이 토요일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커피 자판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만은 민수의 산뜻한 아웃도어 차림을 보며 말한다.
“민수씨,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예, 오늘 교외에 한 번 나가보려고요.”
중만은 민수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들어 까딱거린다.
민수는 민망한 듯 웃으며 재현의 낚시 이야기로 은근슬쩍 말을 돌린다.
“재현 씨도 오늘 회사 동호회 밤낚시 간대요.”
중만은 박재현을 바라보며 묻는다.
“낚시 좋아해?”
“회사 동호회에서 가는 건데 한 번 따라가 보는 거예요.”
그때 신규가 웃으면서 끼어든다.
“글쎄, 갈 수 있을까?”
신규의 말에 중만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왜?”
“일일마감작업이 에러에 걸렸잖아요.”
에러라는 말에 중만이 귀를 쫑긋 세운다.
“무슨 에러?”
“작업 하나가 오늘 아침까지 안 끝나고 계속 looping 돌았어요.”
“심각한 거야?”
신규는 중만에게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듯 가벼운 투로 말한다.
“아뇨, 리스트 찍는 마지막 스텝에서 오늘 아침까지 5시간째 돌고 있었어요.”
그 말은 들은 중만은 웃으면서 재현을 놀리듯이 말한다.
“재현씨, 돌아버리겠지?”
재현이 중만에게 하소연하듯 말한다.
“로직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루핑이 도니 정말 돌아버리겠어요.”
“토요일이라 오전 중에 완료시켜야 되겠네, 잘 안되면 여기 선배들에게 말해.”
“예.”
신계약 팀원들이 자리로 돌아간다.
오전 근무만 하는 토요일이라 사무실 분위기가 가볍다. 그러나 재현은 에러를 찾기 위해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치고 있다.
영업관리부 박혜영이 사무실로 들어서서 신계약팀으로 다가온다. 평소 입던 회사 유니폼과 달리 화사한 색상의 외출복을 입은 혜영은 성숙한 티가 물씬 묻어난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
중만은 건성으로 인사한 후 혜영의 세련된 모습에 다시 한번 더 쳐다본다. 혜영은 그런 중만의 반응을 모르는 척하며 재현을 향해 말한다.
“안녕하세요, 리스트 가지러 왔어요.”
재현은 빚쟁이 대하듯 우물거리며 말한다.
“에러가 나서 아직 안 나왔어요.”
혜영은 호의를 베풀 듯이 재현을 쪼아댄다.
“그러세요? 오늘 토요일이기 때문에 오전 중에는 나와야 하는데….”
“리스트가 나오는 대로 연락을 드릴게요.”
민수는 쪼이는 재현 쪽을 바라보다가 혜영과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 혜영은 민수를 향해 반갑게 인사한다.
“어머, 안녕하세요.”
민수는 예상치 못한 혜영의 반가운 인사에 순간 당황한다. 혜영의 성숙한 아름다움에 더욱 어쩔 줄 몰라하며 혜영을 대한다.
“아... 예.”
중만은 그런 민수를 보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혜영씨인데 왜 그래?”
민망한 민수는 모니터에 눈길을 둔 채 웃는다. 그러나 혜영은 중만의 장난기에 당돌하게 맞선다.
“대리님, 언제 적 이야기인데 아직 울궈먹는 거예요. 나빠요!”
중만이 혜영의 말에 웃으며 민수에게 말한다.
“민수씨, 처갓집 일인데 좀 도와줘야지?”
민수는 여전히 모니터에 눈을 꽂은 채 대답한다.
“예.”
“일 끝나면 연락 주세요.”
혜영은 재현에게 당부한 후 돌아선다.
재현은 모니터에 뜬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자판을 두드리다가 벽시계를 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재현의 그런 모습을 본 민수가 나선다.
“소스 프로그램 이름이 어떻게 되어요?”
“SGNMLIS5입니다.”
“내가 좀 봐도 되겠지요?”
민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리고 소스 코드 화면을 올리고 내리면서 심각하게 바라본다. 앞자리의 재현도 나름대로 소스 코드를 살펴보며 연신 벽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벽시계가 어느덧 11시를 넘어선다.
민수 역시 초조하게 소스 코드를 바라보며 혼잣말한다.
“에러 찾기가 쉽지 않네.”
책상 위의 전화가 울리자 민수는 모니터에 눈을 꽂은 채 수화기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