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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Nov 25. 2024

연애하는 배짱

연재소설 : 러브 코딩 38화 - 연애하는 배짱

민속촌 촌락을 채우고 있는 한낮의 햇볕이 아득한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주막 식당을 나서는 재희는 손으로 햇볕을 가린다. 

재희의 그런 모습을 본 민수는 어디 그늘진 장소가 없을 주위를 둘러본다. 민수 허리춤의 삐삐가 진동하자 민수는 삐삐에 찍힌 번호를 본다. 그것을 본 재희가 민수에게 묻는다.

“어디서 온 삐삐야?”

“응, 회사 같은데.”

민수는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본다. 조금 떨어진 곳 담벼락에 간이 공중전화가 설치된 것을 본다.

“전화 좀 하고 올게.”

“응, 하고 와, 여기 있을게.”

민수는 공중전화가 놓인 곳으로 다가간다.


민수가 공중전화기의 전화 버튼을 누른다. 신호가 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예, 기계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신계약팀 이민수입니다. SNB 쪽의 작업 뭐 잘못된 것 있나요.”

“예, 있어요, 잠시만요.”

민수는 오퍼레이터의 응답을 기다리며 재희 쪽을 바라본다.

재희는 그늘진 돌담에 두 손을 뒤로하여 기대고 서 있다. 민수는 재희의 편안한 모습을 지켜본다. 이윽고 들리는 오퍼레이터 목소리.

“예, SNBPSTP3에서 에러가 났어요. B37인데요.”

“아, 데이터 저장 용량이 부족하네요. B37 에러 코드가 뜬 부분의 JCL (Job Control Language)의 스페이스가 어떻게 잡혀 있어요?”

“예, 30에 3으로 잡혀 있어요.”

민수는 잠시 머릿속으로 스페이스 용량을 가늠하고는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 70에 3으로 고쳐서 다시 작업 부탁드릴게요.”

“잠시만요.”

오퍼레이터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진다. 

민수는 화사한 원피스 차림의 재희가 돌담에 다소곳이 기댄 채 허공을 주시하며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민수의 눈에 재희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고민하는 듯한 재희의 모습에 깊은 연민도 느낀다.

민수의 요청대로 문구 변경을 처리한 오퍼레이터가 말한다.

“예, 작업 들어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민수는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민수는 담벼락에 뒷손을 짚고 서 있는 재희를 바라보며 다가간다. 민수가 다가서자 재희는 민수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민수도 재희의 눈길을 피하지 않으며 말한다.

“많이 기다렸지?”

“아냐,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해?”

재희는 힘없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피곤해 보인다.”

민수는 재희가 염려스러운 듯 말하자 재희가 웃으며 말한다.

“동동주를 마셔서 그러는가 봐.”

둘은 늦은 오후의 햇살 속을 걷는다.


민수와 재희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어느 민가 앞에 이른다.

민수와 재희는 무엇인가 싶어 대문을 통해 마당 안쪽을 쳐다본다. 마당에서 전통 혼례 복장을 한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여기 구경 좀 할까?”

“응, 그래.”

민수와 재희가 집안 마당으로 들어선다.

마당에 큰 교자 탁자 좌우로 신랑과 각시가 있고, 그 중앙에 주례를 보는 듯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한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구경하며 주례가 하는 말에 일순 왁자지껄하게 웃는다.

민수와 재희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한동안 혼례 과정을 살펴본다. 민수는 주례가 신랑에게 핀잔을 주는 모습을 보며 웃다가 재희를 바라본다.

재희는 얼굴로 내리쬐는 햇살을 한 손으로 가린 채 혼례식을 보고 있다. 

민수는 재희가 쉴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그들 뒤쪽에 사랑채와 맞붙은 대청마루가 있는 것을 본다. 대청마루에 그늘이 져서 시원해 보인다.

“저기에 좀 앉을까?”

“응, 그래.”

대청마루 한쪽 끝에 마당쇠 차림을 한 행사 출연자가 다리 한쪽을 대청에 걸친 채 졸고 있다. 민수와 재희는 그 마당쇠 반대쪽 모퉁이에 걸터앉는다. 

전통 혼례가 계속 이어진다. 이윽고 신부가 좌우로 시중드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절을 하고, 신랑도 맞절한다.

민수는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마당쇠 복장의 사람을 힐끗 보고는 재희의 귀에 입을 바짝 붙여 나직이 속삭인다.

“옆에 있는 마당쇠 있잖아, 오늘 시집가는 아씨를 사랑했었나 봐, 아씨가 시집을 간다니까 속이 상해서 저러고 있나 봐.”

재희는 마당쇠를 슬쩍 보고서는 웃는다. 마당쇠가 들으면 어쩌냐는 듯 민수의 팔을 툭 치며 말한다.

“너도 마당쇠 같아.”

“아냐, 나는 저기 신랑이야, 너는 저기 각시.”

“어쭈, 누구 마음대로.”

민수는 웃으며 혼례 행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일어서서 앞쪽으로 나간다. 그러고는 재희가 앉은 쪽을 뒤돌아본다.

재희는 대청마루에 앉아 땅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모아 천연덕스럽게 앞뒤로 흔들고 있다. 민수는 재희가 무척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그 모습을 몰래 훔쳐본다.


어느덧 전통 혼례 행사가 마쳐지고 사람들이 혼례를 치르던 집에서 빠져나간다.

재희가 대청마루에서 일어서고 민수와 함께 길로 나선다.


민수와 재희는 걷다가 연못에 다다른다. 연못 안에 놓인 그릇에 동전이 쌓여 있고 몇몇 사람이 그 그릇에 던져 넣는다.

민수도 주머니에서 동전을 빼내서 차례를 기다려 연못 안으로 던진다. 재희는 그것을 보고 웃는다. 민수는 웃고 있는 재희를 보며 말한다.

“여기 또 와야지.”

“누구하고?”

민수는 대답 대신 재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재희는 민수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자 깔깔거리며 웃으며 말한다.

“얘는… 꿈도 야무져.”


민수는 버스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구매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재희에게 돌아온다.

“민수야, 나 전화 좀 하고 올게.”


재희는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한 후 돌아온다.

“선영이에게 전화했어,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만나기로 했어.”

“응, 그래? 선영이가 집에 있는 거야? 같이 오자고 할 걸 그랬다.”

재희가 민수를 흘겨보며 말한다.

“칫, 거짓말!”

민수는 재희의 말에 웃으며 재희를 쳐다본다.


둘은 버스에 올라 재희는 차창 쪽 자리에 앉고 그 옆에 민수가 앉는다.

재희가 버스 의자에 몸을 깊이 묻으며 말한다.

“많이 피곤한 것 같아.”

“동동주를 마셔서 그럴 거야.”

민수가 하는 말에 재희가 민수의 무릎을 치면서 나직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듣잖아.”

민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한다.

“뭐, 어때서?”

재희는 그런 민수를 나무라는 듯 흘겨본다. 그러나 민수는 버스의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곳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운다.

“아, 시원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재희는 피곤한지 머리를 차창에 대고 이내 잠이 든다.

민수도 잠든 재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잠에 빠져든다.


시간이 지나고 민수가 잠에서 깨어난다. 재희가 민수의 어깨에 기대어 코를 쌔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다. 민수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는 재희를 바라본다. 민수는 그의 어깨에 아리따운 천사가 기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구름처럼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민수는 재희가 깨지 않게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버스는 한강 다리를 건너고 남산 터널을 지난다.     

어느덧 차창 밖으로 종로 거리가 보인다. 재희가 잠에서 깨어나며 민수에게 묻는다.

“여기 어디야?”

“응, 종로, 거의 다 왔어.”

“어머, 내가 잠이 깊이 들었나 봐.”

“응, 예쁘게 자던데, 아기처럼 코를 새근거리면서 골던데.”

“어머, 내가? 거짓말!”

재희의 말에 민수가 웃는다.


버스가 어느덧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하고 민수와 재희가 버스에서 내린다. 민수는 이대로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민수야, 오늘 즐거웠어.”

“내가 즐거웠지.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와 줘서 고마웠어.”

재희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한다.

“그러지 마.”

민수는 아쉽다는 듯이 재희에게 묻는다.

“집으로 갈 거야?”

“아니, 선영이를 밖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리로 갈려고.”

민수는 순간적으로 갈등을 느낀다. 이대로 집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무엇보다도 재희와 지금 헤어진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민수는 '애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재희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바꾼다.

“나도 같이 갈까?”

“이삿짐 싸야 한다면서?”

“밤늦게라도 이삿짐 싸면 되지.”

배짱 좋게 말하는 민수,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엄마한테 죽었다’하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런 민수의 마음을 굳혀주는 재희의 한마디.

“너 마음대로 해.”

이왕 이렇게 된 거, 민수는 막 나가기로 한다.

“음... 택시 타고 가자.”

재희는 웃으며 말한다.

“그럴까?”


민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먼저 택시에 타자 뒤이어 재희도 뒤따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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