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외동아들 방문을 앞두고..
시어머니 되시는 분들에겐 다소 불편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내일 제이의 엄마가 정오즈음에 들른다고
어제 문자를 보내왔다.
그저께 제이가 얘기해서 알고는 있었다.
저번에는 띵동 소리에 그녀의 방문을 알았다.
제이도, 그녀도 얘기하지 않았다.
손녀에게 줄 자잘한 것들과 제이의 셔츠가 있었다.
아이 월간만화잡지를 가지고 오는 것은 월간행사다.
그냥 이쪽으로 주소를 해 주면 될 텐데
아이는 월간잡지를 기다리고 되고
할머니는 그 월간잡지를 들고 온다.
Je vs amène de la soupe au butternut, des pommes et clémentines corses. Bonne journée, bisous
버터넛수프 조금과 사과와 귤 조금 가져온다고 한다.
나는 도시 출신이지만 촌 같은 분위기에서
농사도 짓고, 동네방네 사람들과 풍성하게 과일 채소 반찬 국 등을 양껏 나누고..
문지방을 정으로 도배하던 부모를 두어서인지,
시엄니라는 이의 ‘de la’ ‘des’ 이 ‘몇 개’의 실사용법을 보고, 처음에는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기대도 않지만, 적어도 저렇게 문자 보낼 정도면 적어도 두어 번 데워먹을 정도는 돼야 좋은데 500미리 정도 우유곽 정도 되는 양을 보면 괜스레 속상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수프를 에피타이저로 봤을 때, 점심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수 밖에 없음에 감사하다. 뭔 복에..
마흔에 아이를 품고 뭘 잘 먹지 못할 때, 그녀의 수프 따위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순주에 대한 감각도 없었으며, 아빠가 되는 부담감에 힘들어할 아들 걱정뿐이었던 그녀, 그래도 버터넛 수프를 해 온다니 그래도 십 년간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고 봐야겠다.
입만 떼면 남편욕하던 년이 오늘은 또 내일 오는 제이엄마욕을 하는 꼴이.. 참 하수상하지만, 사과 서너 개에 귤 몇 개 가져오면서 생색을 내는 건 변함이 없다.
지 아들이 이쁘면 당신도 이쁘겠지만,
그 아들 키운 거 당신이니
책임도 못 지면서 괜히 아들 있는 티 좀 그만 내시길.
당신 머리가 나빠서,
덕이 부족해서,
밑 세대까지 고생시키는 거 모르시냐
욕하진 못하겠소.
당신 모습에서 내 모습이 심히 어른거리기에
박복한 년들끼리 가족이 되어서
그런 조합으로도 그냥저냥 살면 살지만,
웬만하면 이 인연, 끊어내고 싶소
지난 세월은 엉엉 울음으로 다 토해내버리고
당신들과 엮인 이 내 팔자를 이제는 걷어내고 싶다.
이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오.
그래도 내일이 되면
웃으며 그녀를 반길 것이다.
아이의 할머니,
아이를 또 걸치고 있는
가족이라서..
이 지긋지긋한 가족이라는 넝쿨
걷어내고 또 걷어내도 질기게 나오고 또 나온다.
어느 집에서는 예쁘게 관리되어 화초로 대접받고,
또 어떤 집에서는 미련 없이 마구잡이로 걷어내며
지긋지긋하다 하며 가위로 삭뚝 잘라내 버린다.
어쩌면,
똘똘뭉치는 가족이 내 눈에만 띄지 않았더라고
이런 악담은 하지 않았고
내 복주머니, 작은 그것마저 걷어차버리는
싸가지없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인데..
오늘 오전,
아이의 볼룸댄스 수업에서 본
그 아이의 할아버지와 그 아이의 여동생.
오빠-그 아이-여동생-남동생 (11살-8살-4살-1살)
돌아가며 와서 아이의 높은 자존감에
지분에 지분, 복리에 복리를 얹어주는
할머니-할아버지-엄마-아빠
이렇게, 가족 찬스의 새로운 유형도 접하면서
스포츠는 경쟁이라는데.. 어떻게 이기지? 싶고,
모든 이들이 너무 멀쩡하게 가족의 의미를 보여주는
그 아이의 ‘가족’이 서로 끈끈하게 연대히는 모습에서
자존심이 갑자기 픽 상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볼룸수업시간에 여과없이 공생하는
교집합 공집합 합집합의 생생한 실사화가
날 잠시 슬프게 한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어쩌면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가감없이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음에
오히려 담백하게 먹고 가볍게 소화시켰다.
그래서 이 정도는
나를 깊은 슬픔으로 몰고가지 않는다.
난 지금 이 순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여전히 장착하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아이를 먹였고,
저녁의 각종 채소 카레라이스와 수제소시스와 계란은
아이가 한 접시 싹 다 비워냈다.
책임감과 감사함이 있다면,
두개의 든든한 노가 있다면,
습하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이 겨울의 강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곱게 써야 복을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나댈 때가 있어요
그땐 잠시 그냥 두려구요.. 이제는.
그리고
이런 내 모습에 내 속이 좀 상하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 눈이 뜨이면
그건
오늘 하루도 살아내라는
또 하루치 숙제를 받은 것이니
그러니
숙제가 있으면 숙제를 잘 해내야 하니깐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먹먹해도
가족의 의미 따위 고만 생각하고
거기서 내 역할을 얼마나 해내야하나 생각말고
그냥..
‘그래도 오늘 추운데 얼어 죽지 않았다’는 것,
딱 요정도만 인지하고.. 감사하고..
나보다 더 추울 사람과 동식물들 오늘 밤 잘 버티는 것,
딱 요정도만 간절히 기원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오늘 하루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도 인생.
생각먹은 대로 돌아가는 것도 인생..
그냥..
흘러가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