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직장이 생겼다

프랑스. 학교. 그 심장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기

유튜브에 목숨줄을 잡혔었다.


밥하면서 본다.

빨래를 널면서도 본다.

장난감을 정리하면서도 본다.

밀대를 밀면서도 본다.

못 보는 경우엔 소리라도 크게 틀어놓는다.


점심때 아이를 찾으러 가면서도 본다.

아이가 집에서 쉬는 시간엔 참는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면서도 본다.

틈틈이 계속 본다.

장을 보고 오면서도 본다.

때를 밀면서도 보고 있다.


아이를 재워놓고 본다.

밤시간에 제일 많이 본다.

자정이 되었다.

자지 않고 본다.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절대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 몰아보기는 끝을 모르고 아침을 맞이한다.


피곤하다.


그냥 계속 본다.

아침을 점심을 저녁을 준비한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본다.

다시 또 밥을 하면서 보고

두통째 하는 빨래를 널면서 또 보고

다음 끼니 장을 보고 오면서도 계속 본다.


당근 한 개를 썰고

호박 한 개를 썰고

감자 두 개를 썰고

양파 두 개를 썰고

마늘 열 알을 까서 갈고


이 모두를 함께 넣고 볶으면서도


돼지고기 핏물을 빼고

돼지살과 뼈를 분리하고

깨끗이 헹궈 압력솥에 생수를 붓고

뼈를 고으면서 거품을 걷어내면서도


계속 드라마 몰아보기를 본다.


혹시라도 배터리가 나가면

너무 당황해하며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우당탕탕탕이층으로 올라간다.

급하게 충전기를 찾아 내려와

아주 조심스럽게 폰에 연결시킨다.


30분 정도 지나 돼지고기 뼈 육수가 준비되면

볶아놓은 야채들을 저 국물에 넣고 바글바글 끓여준다.


그러면서도 연신 드리마는 몰아보는 중이다.


거품이 뜨면 숟가락으로 걷어낸다.


계속 본다.


다시마도 두 장 찾아 넣는다.


그 사이 장면이 지나가면 다시 15초 버튼을 두 번 누른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미친듯이 잡으려한다.


30분 정도 지나 야채도 익은 후에 불을 줄인다.

다시마를 꺼내서 버린다.

돼지뼈도 건져내 버린다.

그러면서도 계속 보고있는 중이다. 당연하다.


냉장고에서 카레가루를 꺼낸다.

국자에 야채고기국물을 좀 담아 가루를 푼다.

전체적으로 골고루 휘휘 저어준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는다.


집중적으로 요리하고

집중적으로 유튜브를 본다.

아이가 있는 곳에서는 최대한 보지 않는다.


밥을 차리고

밥을 먹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방에서 나온다.


그때부터 새벽까지 계속 본다.

쉬지 않고 본다.


허리가 아프다

눈이 아프다

기침이 난다.

그래도 본다.


일층에 있는 화장실을 가면서도 폰을 들고 간다.

변기에 앉아서도 본다.

불필요하게 오래 앉아 있음을 자각한다.

휴지를 뜯으면서도 본다

물을 내리면서도 본다.

불을 끄고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본다.

계속 본다.


자지 않았는데 아침이 왔다.


아이를 깨운다.

아이의 옷을 챙겨준다.

아이의 머리를 빗긴다.

씻고 크림을 발랐는지 확인한다.

물을 챙겨 가방에 넣어준다.

크루와쌍, 우유, 사과주스 다 비웠는지 확인한다.

늦지 않게 나가자고 잔소리를 한다.

아기곰돌이 비타민젤리를 꺼내온다

한개 먹을래 두개 먹을래 물어본다

잘 다녀오라고 뽀뽀를 해 준다.

이때는 쪽-소리가 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신이 더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한 번씩 안아서 두어 번 돌려서 회전그네를 해주면 좋아한다.

문이 닫힌다. 엄마 놀이를 끝낸다.


이제 다시 틈틈이 유튜브 먹방을 본다.

그렇게 드라마를 몰아보고 먹방을 죽을 만큼 본다.


산 송장처럼 지낸다.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그 어느 날

몸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누워서도 봤다.


드라마몰아보기를 본다.

먹방을 본다.



뜨문뜨문 일이 들어올 때는 유튜브가 필요 없다.

일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불안감에 계속 드라마를 본다.


먹방을 본다.

드라마몰아보기를 본다.

일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 본다.



휴대폰 화면에 무기력한 늙은 여자 하나가 있다.

초점 없는 눈동자의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외면한다.


그렇게 살았었다.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었다.


아이가 없을 땐

엄마의 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를

학대한다


잊어야할 현실이란 게 무엇이었나

그렇게 가혹한 것이었나


답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돌연 결심한다.


강제적인 장치를 사용해서라도 끊어야 한다.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2022년 8월,

프랑스의 워크넷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

중고등학생 학교생활지도교사

눈에 들어왔다.

지원자격은 크게 까다롭지 않아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인터넷으로 도대체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한 번 찾아본다.

자습감독도 하고 상벌점도 주는.. 대충 사감 비슷한 일 같다.


이 일자리는 마크롱이 집권하면서 대학생들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이정도로 20대 위주는 아니었다고 한다.


20대 대학생 위주..?



나는 대학생이 아니다. 20대가 아니다.


30대도 아니다.


40대 경력단절 아줌마다.


심지어 아이는 어리기까지하다.



나는 외국인이다.



음..


이쯤되면..



이런 나에게도..



한 자리 허락될까?



프랑스 청소년 학교 생활 지도를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는 익숙하다. '학생들'도 익숙하다.



일단 지원하자.



10km 이내의 동네 프랑스 공립 중고등학교 대표 이메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그중 한 곳에서 면접을 보기를 희망하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거리도 크게 멀지 않았다.

현관문에서 교문까지 30분.

나쁘지 않았다.



한번 가 보자.




학교에 도착했다. 교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경비실 자체가 없다. 그나마 호출 버튼이 보였다. 교문 창살 너머로 보이는 학교는 텅 비어있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운동장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삑-하는 짧은 신호음과 함께,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했다. 몇 시 예약인지 또 네 이름이 이것이 맞냐고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어 주었다. 철컥, 하고 열린 문을 조심스럽게 다시 닫고 프랑스 공교육 현장으로 성큼 들어섰다.


안내실 직원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20분이 지났다. 건물 안에도 돌아다니는 사람하나 없는 적막강산이다. 약속시간은 오후 2시, 현재 시간 2시 28분.


드디어 내 미래의 직장 상사 '마담 P'가 등장했다. 약간의 웨이브가 있는 어깨 길이 금발머리에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이다. 터키색 민소매 쉬폰 블라우스와 하늘하늘한 레트로 몸빼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었다. 대충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내 또래처럼 보였다.


많이 기다렸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답했다. 그녀는 언짢은 표정을 살짝 내비친 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안내실 문을 확 열어 재꼈다. 왜 자신에게 바로 연락을 하지 않고 면접자를 기다리게 했냐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뭐라고 대답하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문이 닫힌 것도 아닌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가 휙 돌아 문을 나서는 데 모기만 한 소리로 인사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낯선 외부인 앞에서 서열관계도를 보여주려는 건가. 여기 이곳,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그녀가 가진 권력은 꽤 묵직해 보였다.


그녀를 따라 완전한 그녀의 공간에 들어섰다. 컴퓨터에는 커서가 깜빡 깜빡이고 있다. 무슨 스케줄표 같아 보인다. 직원들 시간표를 짜고 있었나 보다. 큰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들, 빼곡한 일정들이 채워져 있는 플래너 두 개, 형광펜 서너 개와 포스트잇 뭉치들과 학생기록부와 벌점노트 등 자잘한 것들로 빈 공간이 없다. 학생들 아뜰리에를 함께 듣는지 바느질을 하다가 만 듯한 프렌치 자수가 놓여있는 천 가방도 저 쪽 원형 탁자 위에 보인다. 뭐, 복잡은 했지만 이 방의 주인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있으리라. 익숙한지 아닌지의 문제일 뿐.


내선번호가 가득히 적혀있는 하얀 전화기 옆에는 유리재질의 다구가 보인다. 우려낸 잎차가 잎을 벌리고 있었고 여전히 김이 남아 있었다. 뜨거운 물을 보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였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안내실의 전화를 받지 못했을 터이다. 그러다 시간을 봤을 테고. 오후 두 시 반이라.. 이 면접자가 도대체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하면서 안내실로 직접 왔었을 거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져볼 여지 따위는 애초에 용납하지 않고 결국은 그녀 앞에 바짝 엎드리게 만드는 강력한 직업병이 그녀에게 있다는 것을 자신은 알까.


책상 뒤로는 벽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큰 창문이 있고 널찍한 정원의 펜스 너머로 내가 아까 지나간 그 길이 보인다.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등의 편지와 선물 받은 듯한 앳된 그림들이 가득 있다. '학교폭력 STOP! 신고전화 3020', '성공적인 중학교 생활의 비결', '뜨개질 아뜰리에', '요리 아뜰리에', '자전거 클럽', '우리도 환경지킴이' '독서클럽', '배드민턴 예선', '2022년 중학교 졸업시험 결과'등의 포스트도 덕지덕지 한쪽 벽에 붙어져 있다.


그녀는 나에게 차를 권했다. 거절했다. 개의치 않고 바로 나를 채용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이어나갔다. 학교 내 문화적인 다양성을 위해서라고 했다. 나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고 바로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 이 순간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물론 교장과 교감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자기 사람 뽑는 거기 때문에 그분들의 싸인은 형식적인 것일 뿐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교장 교감 위에 있는 것이 CPE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첫 등장의 순간부터 말투, 목소리 그리고 눈빛까지 거침이 없다. 여하튼, 내 직속상관은 학생, 학부모, 교사와 교장 교감, 그 누구에게도 거리낌 없는 이 구역의 실세인 듯하다.


그리고 대뜸 당신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요,라고 하며 일어선다. 책장 속의 책을 스캔한다. 책 한 권을 내 앞에 놓는다. Réussir le concours CPE (Conseiller principal d'éducation, Concours enseignement). 자신이 대학원에서 이 과정을 공부하고 국가시험을 칠 때 공부했던 책이라며 도움이 될 거란다. 안을 들여다보니 접힌 부분도 있고 제법 손때가 뭍은 책이다. 그녀의 우호적인 내어줌에 약간의 부담감이 느껴진다. 내가 너보다 나이는 많지만 네가 의지할만한 사람은 못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고맙다라는 짧은 대답으로 대신했다.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아까보단 좀 더 어려보인다. 서른 중 후반 정도. 책상 위에 놓여져있는 사진도 다시 한번 본다. 아들 둘. 겨우 유치원생 정도이다. 그녀의 예민함은 예정되어있다.


우리 둘은 함께 2층 교장실로 올라갔다.


'빠리지엔느'라는 사전적 의미에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던가? 여하튼, 이 정의에 딱 맞아떨어질 법한 소위 빠리지엔느 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슈퍼에 장을 보러 가거나 학교에 아이를 찾으러 가서 만나는 이민자 엄마들과는 사뭇 달랐다. 같은 동네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 여유로운 모습의 그녀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과잉의 호의로 무장해제는 진작에 되었다.


'적어도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할 사람들'이라니.. 나에게도 '동료'가 생긴다니.. 이미 나와 함께 일할 것을 확정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시작은 교사가 아니지만 한국정교사자격증을 어떤 식으로든 사용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라고 했다. "함께 일하게 되어서 기쁘다"는 말도 덧붙인다. 여기 다단계 아닌 거 맞지? 뭐지? 이 무조건적인 친절함이라니..


'일 년 뒤에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다시 학교에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다. 이 일 저 일 전전하며 이어갔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미 다시 교사라도 된 것처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눈물을 터트렸다. 정말 김칫국을 제대로 한 바가지 드링킹 한 것을 이때까지는 모르고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라도 쥔 듯 그렇게 감개무량했다.


교감이 휴지를 가져오겠다며 일어섰다. 젊다. 그것도 아주 많이. 처음 봤을 때 교장의 비서라고 생각해서 교감이라고 소개받았을 때 놀랐다. 무릎 한참 위로 올라오는 손바닥만 한 블랙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다시 한번 살짝 놀랐다.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거기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 그녀는 웃으며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며칠 뒤에 푼다고 했다. 교장은 거기에 거들어, 교감이 학교를 위해서 아주 무리를 한다고, 학교일을 아주 혼자 다 한다고, 병가를 쓰고 좀 쉬면 되는데 애교심이 넘쳐서 탈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교장은 6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인다.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액세서리하나 없이도 자연스럽고 우아한 멋이 있다. 젊을 때 일본에 여행도 다녔다 하고 현재까지도 일본문화에 관심 있어 보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딱히 아는 것이 없어 보였지만 한국인인 나에게도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해 줬다.


미모의 교감은 휴지곽과 함께 미니 크루와쌍과 미니 빵오쇼콜라을 내어 왔다. 크게 쩔뚝거리지 않고 하얀 깁스도 무슨 악세사리 마냥 블랙패션에 심지어 제법 매치가 된다. 턱선까지 오는 찰랑찰랑 거리는 검은색 단발머리와 작은 얼굴에 170은 되어 보이는 큰 키. 줄리아 로버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차나 커피도 한잔 할 거냐고 물어온다. 고맙지만 괜찮다고 했다.내일을 기약하며 교장실을 나섰다.




내일부터는 이 집을 나서서


저기


저 사람들 속으로..


나,


들어간다.




그런데…


학교



이거, 가능해?


여기 안에 다시 들어갈거야 진짜?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을 떠나던 삼십 대의 끝자락까지, 나는 안정적인 사회시스템이라는 것에 진입하기 위해 큰 틀 안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준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곁에 누구 하나 그런 것을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발 앞에 떨어진 것만 하나하나 치워가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무식하니 용감하게 살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인문계고등학교의 예체능반이었다. 보통 한 반에 50명이 훌쩍 넘는것과 달리, 우리 반은 서른명 정도였다. 미술, 만화, 악기, 작곡, 성악, 연기, 모델, 무용, 운동하는 열아홉 소녀들로 가득하다. 1,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만나면 우리 반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눈에서 하트를 뿅 뿅 보낸다. 뭐 전혀 어려울 것 없는 부탁에 점심시간에 놀러 오라고 했다. 우리 반은 '어른들은 몰라요'에 나오는 애도 결석하지 않은 경우엔 있고, 미래에 미스코리아 지역대표로 나왔던 애도 있고, 전교 몇 등이지만 만화가를 꿈꿔서 반을 바꾼 애도 있고, 지역 육상 유망주도 있고, 미래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한국무용가, 발레리나도 있고..그야말로 한국입시지옥의 직격탄을 적당히 피해가는 듯 ‘안전지대’처럼 보이기도 했으리라.



수능을 치르고 대학진학을 못했다. 너무 비쌌다. 서울로 미대유학을 하는 것도, 미술학원을 한 해 더 다니는 것도. 그냥 1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능 모의고사 한 번 쳐보지 않았다. 수능일에도 갈까 말까 하다 그냥 대충 시험을 치는둥마는둥하고 돌아왔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난이도는 작년이 더 높았는데 작년보다도 훨씬 더 낮은 점수가 찍혀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대학 안 가겠다고했다. 엄마는 그래도 가는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녀는 대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과에는 뭐가 있는 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재수학원에 돈 안쓰고 싶었다. 집에 있었다. 너무 불편했다. 가방을 메고 경주도 가고 포항도 갔지만 혼자서 별로 할 것도 없었다 또 그런 시간들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처 대학에 미대에 비해 싼 과로 짐작되는 인문대로 원서를 밀어 넣었다. 애정 한 톨 없이 학교를 다녔다. 연애도 없었다. 군대를 다녀 온 선배는 대학이 여대에서 풀린 후 1회 입학생이었다. 그만큼 남자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저이가 수업시간에 갑자기 넘어와서 옆에 딱 붙어 앉고는 쟤들 커플이랑 더블데이트하잖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구 나는 그 방면에서는 채식주의자라구. 그렇게 대학의 첫 해에 작은 헤프닝에서 시작해서 자잔한 데쉬들은 있었지만 전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틈틈이 알바를 하고 중간에 일 년은 완전히 휴학도 하고 일을 했다.


그 흔한 연애 한번 하지않고 5년이 지나 대학이란 걸 졸업했다. 대학교 행정조교를 일 년 한 후, 지역신문에서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영어학원강사는 바로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그렇게 일을 이어갔다. 몇 년 수업 준비에 몰빵하고 그렇게 돈이 좀 모여 호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어학연수도 하고 자두 사과 딸기도 따서 여행도 했다. 다시 돌아와 일에 몰빵 했다. 수업준비와 수업만 했다. 돈이 모여서 밥벌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더블린에서 반년을 어학연수했다. 돌아와 거울을 보니 갓 서른 살이 된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여중 여고 준여대를 지나 다시 여자들만 모여있는 학원가에서 이렇게 일만 했다. 수업과 수업준비. 이렇게 내 20대는 끝이 났다. 내 인생 한 덩어리 한 덩어리는 그렇게 속절없이 동강동강 떨어져 나가고 삼십 대가 되었다. 뭔가 안정적인 것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학교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했다. 일단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삼 년 했다. 등록금을 위해 대학교 사감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졸업 후에도 임용준비는 시기상조인 것 같아 사립기간제교사를 일단 몇 년 했다. 그렇게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마흔이 넘으면 아이 갖기가 힘들다고 했다. 둘째는 몰라도 초산은 아이나 엄마 둘 다에게 쉽지않다고했다. 남자도 모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결혼한 단짝이 있었지만 스물일곱에 죽었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죽어버렸다. 그냥 일을 했다. 일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본능적으로 나의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임연령의 최전선에서 임용준비대신 결혼을 선택했다. 알던 친구에게 몇 달 안에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며칠안에 결정하고 알려달라했다. 선을 봐서 최대한 빨리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 전화가 왔다. 혼자인 엄마를 두고 한국에 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내가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 너무나 무식했다. 너무나 용감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있다.


이제 나에게는 '내 아이'가 있다.




삼십 대의 끝자락에서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안정적인 사회시스템이라는 것에 진입하기 위해 큰 틀 안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준비한 적이 할 수가 없었다. 곁에 누구 하나 그런 것을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발 앞에 떨어진 것만 하나하나 치워가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무식하니 용감하게 살아왔다.


내 삶의 구멍이 8년 간 좀 커져서 다시 사람들과 섞여서 일할 수 있을까 약간의 걱정도 있었지만, 옛날의 나처럼 용감하게 내 집 대문을 박차고 나가서 저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천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는 나를 치유해 줄 것이며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 년 간 프랑스의 교육시스템을 익히고 프랑스인들과 매일 일하면 언어도 자리가 잡힐 것 같았다. 교장과 교감의 말처럼 내년이라도 당장 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적문제로 공립정교사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기간제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도'가 아니라, 닿을 수도 없을 만치 아득해 보이던 그것이다. 내가 가졌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던 그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무대가 생긴다.


잊고 있었던 그 '희망'이란 놈이 다시 문을 두드린다.


다시 무대 위에서 나만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제 심장의 위치가 느껴진다. 하, 아..


심지어 뛰고 있다.


나에게도 심장이 있었다.


여기.


바로 여기였어..


다시 손을 가져다 얹는다.


박동소리를 느끼며 눈을 잠시 감는다.


눈이 따갑지만 한 번도 눈을 감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자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오늘 눈을 꾹 감아본다.


그간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잠이 쏟아진다.


유튜브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드라마 몰아보기 따위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 밤에는 잠을 좀 자고 싶다.


그러고 싶다.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시작일 2022년 9월 1일

종료일 2023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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