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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곰 Oct 09.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19)

18장: 대학원 진학에 도전하다

대학원 진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을 때, 나는 그 길의 험난함을 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범대 졸업 후, 현실이라는 냉정한 벽에 가로막혀 있던 나는 겨우 작은 돌파구를 발견한 심정으로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턱이 나를 얼마나 더 시험할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던 단순한 ‘입학’이라는 과정은 사실,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입학이라는 문턱을 넘기 전까지 그 문을 열기 위해 먼저 “사전 컨택”이라는 작은 열쇠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대학원 진학의 세계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구조적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과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 쉽게 배척당할 수 있는 나만 모르는 숨은 법칙이 존재하는 비밀의 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사전 컨택이었다. 연구실마다 TO는 한정적이었고, 연구실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미리 해당 교수님과의 컨택을 통해 그 연구실의 소속이 될 수 있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었다. 나는 이공계 대학원이라는 낯선 세계의 기본 규칙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이 좋으니 합격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만을 품고 있었다.


사전 컨택.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지만, 당시의 나는 그 용어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연구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입학원서를 작성하며 무작정 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그 문이 나를 향해 열려 있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깨닫지 못했다. 입학이라는 과정이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보이지 않는 조율과 교감이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던진 지원서들이 하나 둘 대학원들로 날아가고, 합격 통지서가 도착했을 때조차, 나는 그 서류 한 장이 전부라고 믿었다. ‘이제는 되는구나.’ 나는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 문이 나를 반기며 열려줄 것이라고. 그러나 정작 합격 통지서를 받은 뒤에야 나는 또 다른 장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연구실 배정이라는 더 높은 장벽. 아무리 합격을 했어도, 연구실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진정한 대학원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전 컨택이라는 열쇠를 준비하지 않은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후적으로 지원을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미 모든 연구실의 TO가 채워지고, 교수님들의 마음이 결정된 후였다. 학문을 향한 열정이나 진심만으로는 닫힌 문을 열기엔 부족했다. 마치 공허한 복도에서 혼자서 손을 내밀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여기 있습니다. 저도 이 문을 두드려도 될까요?" 그러나 그 손짓은 그저 먼발치에서 서성일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고, 나는 서류 한 장만 들고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절망의 순간, 한 줄기 희망이 나를 찾아왔다. 그때 만난 것이 현재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다. 사전 컨택도 없이 단지 합격 후의 지원서 하나로 나의 진심을 받아준 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저 흔한 지원서 속에 묻혀 사라질 수도 있었던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신 분. 나는 후컨택이라는 부족한 형식을 통해 만난 그분에게 내 마음속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왜 교사의 길을 포기했는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이 문을 열고 싶었는지를.


지도 교수님은 나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으셨다. 이미 늦은 시점에서 후컨택을 시도한 내 서툰 행동조차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다. 그리고는 나를 연구실로 받아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그저 머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수많은 서류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어주신 분.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길 잃은 나그네처럼 그 복도를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는 지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만남이 있다는 것을. 내가 그토록 많은 밤을 지새우며 쌓아온 성적과 노력, 그리고 그간의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그 만남 앞에서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뒤늦은 후컨택이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시작이었다. 단순히 ‘연구실 배정’이라는 형식적 합격이 아닌, 나의 다음 삶을 위한 인연의 문이 열렸던 순간이었다.


이후 나의 대학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연구, 그 모든 것이 나를 압박했고,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러나 나를 받아준 그분 앞에서 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사전 컨택 없이 시작된 이 여정은 나의 진심이 운명을 만난 순간이었고, 나는 그 만남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지금은 나의 은사님이라 부르는 그분께서, 그때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해주셨던 말씀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형식이 아니라, 사람을 봤다.”


그 말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규칙을 몰랐던 내 무지함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나의 진정성을 봐주셨다는 것. 그것이 내가 그 험난한 대학원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지도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삶은 어땠을까? 여전히 닫힌 문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또 다른 길을 포기하고, 좌절의 쓴맛을 되새기며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분이 나에게 열어주신 문 덕분에 한 발짝 더 나아갔고, 지금도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에는 때로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도, 문이 열릴 때가 있다. 그것은 단지 나의 능력이나 성적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를 봐주는 눈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눈을 만났고, 비로소 나의 진정한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모든 문이 사전 준비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닫힌 문을 열어줄 사람을 만날 때, 그 문은 비로소 나를 향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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