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꿈을 접고, 새로운 길을 걷다
대학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내게 남아 있던 선택지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교사’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고 사범대에 발을 내디뎠던 그 첫 순간이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보였다. 나는 내 꿈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장학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책을 펼쳤고,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그 순수한 열정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서 있던 나는, 그토록 치열하게 쌓아 올린 내 성적표가 어딘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졸업 후 교사가 되지 못할 나에게 남은 것은, 그저 무의미해 보이는 전공의 타이 틀 뿐이었다. 사범대—이름만 들어도 교사로의 길을 암시하는 그 학과는 정작 교사가 되지 못한 이들에게는 냉혹한 족쇄와도 같았다. 사범대의 교육과정은 철저히 교사 임용에 맞춰져 있었고, 이 과정 속에서 취업을 위한 스펙이나 자격증을 준비할 여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흔한 어학 점수 하나조차 없는 나의 이력서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너무나도 빈약해 보였다. 결국, 교사가 아닌 길을 선택하려는 순간부터 나의 전공은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공계와는 거리가 먼 문과 계열의 학사라는 사실은, 나를 더욱 현실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문과 졸업장이 상징하는 것, 특히나 취업과 관련해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대학이라는 보호막에서 벗어나자,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차갑고 현실적이었다. 다른 이들이 자격증을 따고, 어학 시험을 치르고, 인턴 경험을 쌓을 때 나는 꿈이라는 한 줄기 빛만을 좇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빛이 더 이상 손 닿는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빛을 잃은 순간, 나의 길도 함께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매일을 고민하며 보내야 했다. 꿈을 접고 현실을 쫓으려 했지만, 그 현실의 문도 나를 향해 열려 있지 않았다. 나의 전공은, 그리고 나의 선택은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방황으로 이어졌다. 몇 날, 몇 주, 몇 달 동안 나는 나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들 속에서 몸부림쳤다.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정말 교사를 포기한 거야?” 주변에서는 누구도 나의 고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꿈을 포기하는 나를 비난했고, 어떤 이들은 당장의 취업을 독려했지만, 그 누구도 진정으로 나의 현실을 직시해 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지도 교수님께서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너의 전공을 살리면서, 취업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그때는 그 말이 생경하게만 들렸다. “내 전공을 살리면서 어떻게 취업을 넓힐 수 있을까?” 교수님은 나에게 대학원 진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다. 전공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이공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하여 조금 더 폭넓은 연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 길이 어떻게 내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 말속에는 단순한 제안 이상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교수님은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학비 지원과 더불어 인건비 형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셨다. 그것은 내가 학업을 계속하면서도 생활비를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혼란스러웠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내 손에 주어진 것이 성적장학금이라는 작은 열쇠 하나뿐일지라도,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문을 열어볼 수 있다는 가능성. 그 희망은 비록 희미했지만, 그동안 현실에 짓눌려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나에게는 유일한 구원의 빛처럼 보였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교사라는 길을 포기한 지금, 현실을 외면한 채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의 조언대로 이공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문과 졸업장’이라는 편견의 벽을 허물고, 조금씩 새로운 영역을 탐색해 나갔다. 대학원에서는 나의 사범대 전공을 일부 살리면서도, 보다 실용적인 연구와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내가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길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 선택이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 당시의 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불안감과 희미한 희망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거운 가방을 메고 대학 캠퍼스의 복도로 향했다.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서는 대신, 나는 실험실에 앉아 논문을 펼쳤고, 연구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또 다른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 길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수많은 밤을 새우며 연구실에서 보냈고, 새로운 지식을 쌓고,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보는 경험은 내가 꿈꿨던 교사의 길과는 달랐지만, 또 다른 형태의 의미 있는 배움이었다. 나는 그 길 속에서 나의 새로운 길을 발견해 나갔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선택한 길이 전부가 아니며, 때로는 새로운 길이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단순한 진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의 전환이었고, 내 미래를 재정립한 중요한 결정이었다. 나는 가난과 좌절을 넘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때로는 우리가 꿈꾸던 길을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길이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직 어렸다. 하지만 그 결정은 나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꿈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도전이 생겨났고, 나는 그 도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꿈을 포기해야만 현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꿈이 탄생할 수 있음을, 나는 그때 비로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