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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곰 Oct 07.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17)

16장: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는 4년 내내 성적장학금을 받았다. 언제나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 전공책을 파고들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은 밤에 도서관에 들어가 도서관 불빛이 꺼질 때까지 남아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생생하다. 머릿속으로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적을 유지했고, 학과에서도 누구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알려졌으니까. 그러나 가끔 교정 어딘가에서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성적표가 나의 삶을 증명해 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


어느순간 나의 진짜 꿈은 교사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지식 이상의 것을 가르쳐주고, 그들의 길을 함께 고민해 주며 그들이 자신만의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바랐던 삶이었다. 그러나 꿈은 그저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고,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 준비를 뒷받침해 줄 돈이 필요했다.


가난은 나에게 언제나 무거운 족쇄와도 같았다. 성적장학금을 받기 위해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쪼개 썼다. 몸이 고되면 잠시라도 누워 쉬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꿈이 나를 채근했다. “더 열심히 해야 해. 그래야 교사가 될 수 있어.” 나는 아프다는 생각도, 힘들다는 생각도 미룬 채 더 많은 교재를 펴 들고, 더 많은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열심히 해온 모든 것이 결국 꿈과는 반대로 나를 밀어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현실은 더욱 냉정하게 나를 압박해 왔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시험 준비와 학원 수강, 그 길을 집중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준비를 할 시간도, 비용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하루라도 학교를 더 다니기 위한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뿐이었다. 교사라는 꿈은 나와 점점 더 멀어졌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멀리, 아득한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꿈을 위한 공부는 사치였다. 꿈은 그저 가슴속에만 두고 바라보는 아름다운 이상일뿐, 내가 실현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현실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바랄 힘조차 잃어버렸다. “교사”라는 단어가 점점 나의 입술을 떠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유일한 대학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학과에서 유일하게 나의 모든 상황을 알던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너무 노력했기 때문에, 이제는 네가 현실을 받아들여도 아무도 널 탓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꼭 붙들고 있던 희망이 내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 시간 동안 교사라는 꿈을 붙들고, 그 꿈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던 내 모습이 순간 불현듯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포기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꿈이 현실 앞에서 이렇게 무력하게 쓰러지는 장면을 보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나의 복잡했던 마음을 정리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방 한편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이토록 현실 앞에서 무력해진 것일까? 교사라는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택한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이제는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현실은 나에게 다시 한번 결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교사라는 이름을 내려놓기로 했다. 꿈을 꾸는 대신, 현실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꿈을 위해 살지 않겠다.” 그것이 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교사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고, 현실적인 직업을 구하는 것이 나의 앞날을 밝힐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렇게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의 손을 꿈에서 떼어내고 현실 속으로 떨어졌다. 꿈을 붙들고 있는 것이 나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꿈을 놓아버렸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서 왜 교사가 되지 않았냐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짓는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질문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나는 단순히 교사가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삶을 포기하고, 그 대신 살아남기를 택했을 뿐이라고.


지금 나의 손에는 그때 놓아버린 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은 한때 내가 믿었던 세상에 대한 배신감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자리를 지키며, 현실이라는 단단한 땅 위에 다시 나를 세웠다. 이제, 나는 꿈이 아닌 나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그 꿈을 다시 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꿈이 나를 무너뜨렸던 날의 기억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꿈을 포기한 자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그 대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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