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곰 Oct 05.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15)

14장: 가난이라는 이름의 덫, 대학 생활의 첫 장

나의 대학생활은 정말 치열했다. 가난한 환경 속에서 학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힘든 일’로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때 나의 대학 생활은 치열한 전쟁터였고, 나는 겨우 버티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병사와도 같았다. 사치스러운 낭만은 물론, 여유로운 대학생활의 그림자조차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마치 벽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늘 외로이 고군분투했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등록금도 아니었다. 바로 '지낼 곳'이었다. 보증금이 없는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곳은 대학교 인근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사글셋방이었다. 일 년에 120만 원이라는 낮은 가격은 나를 그곳으로 끌어들였지만, 싼 곳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다 누더기 천막 같은 공간이었다.


비바람이 불면 벽을 넘어 들이닥치고, 밤이면 개미들이 줄을 지어 방을 가로질렀다. 눈을 감아도 개미가 몸 위를 기어 다니는 감각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여름의 더위는 무시무시했고, 겨울의 추위는 잔인했다. 난방을 아무리 틀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안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새벽을 떨며 견뎠다. 그러면서도, 그저 ‘그래도 지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나에게 그 120만 원짜리 방은 추억이 아닌 ‘생존’이었다.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투쟁은 바로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임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마저도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이렇게라도 벌 수 있으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압박했다. 그때 나는 손에 잡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해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이 나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편의점 창고 한쪽에서 몰래 먹는 그 싸구려 빵 한 조각과 컵라면이 그나마 나를 버티게 했다. 그렇게 생활비를 마련하고, 조금씩 모아 책을 사고, 다음 학기의 등록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갔다.


동기들이 서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내게는 꿈같은 장면이었다. 같이 어울려 밥을 먹을 때면, 내가 지불해야 하는 한 끼 값이 내 일주일의 식비를 모두 앗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멀리했다. 모임이 있을 때면 뻔한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혹은 일부러 조금 늦게 도착해 그들이 이미 식사를 마쳤을 시간에 나타났다. 그렇게 내 자리는 점점 사라졌고, 학과 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은 언제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점점 '고립'이라는 이름의 감옥 안에 갇혀갔다.


방학은 나에게 학업의 연장이 아닌 또 다른 싸움의 장이었다. 등록금과 교재비를 벌어야 했기에 공장으로 향했다. 고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야간 근무와 주말 잔업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손끝이 까져 피가 나고, 온몸이 땀에 젖어도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 곧 돈의 손실이었고, 꿈을 이루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그러나 현실은 더욱 냉정했다.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자신을 다듬어가는 또래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한 학기라도 더 다니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국가장학금이 없던 당시, 학과 1~3등 안에 들어야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자, 나를 지탱해 줄 기둥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일했다. 잠을 줄여가며 책을 파고들었고, 강의실에서 정신없이 졸다 잠에서 깨는 일도 잦았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머리칼이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그렇게 지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며 나는 늘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버텨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대학 졸업장은 나의 꿈이 아니었지만, 내가 놓아버릴 수 없는 최소한의 생존선이었다.


나의 대학 생활은 그렇게 ‘생존’이었다. 꿈을 좇을 여유도, 미래를 계획할 시간도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당장 다음 학기를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버텨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곤 했다. "대학 시절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그러나 나에게 대학 시절은 잔인하고 처절한 생존기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비로소 졸업을 맞이했다. 다른 이들은 졸업장을 손에 쥐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꿈과 열정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겐 졸업장이 곧 탈출구였다. 나는 끝없는 전쟁터에서 탈출하여 겨우 생존했을 뿐, 그 너머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새도 없이, 어서 빨리 그다음 ‘생존’을 위한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분명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치열함이 나에게 남긴 것은 쌓여가는 성취감이 아니라 깊이 새겨진 상처와 씻기지 않는 고단 함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가난과 함께, 나의 젊음을 처절하게 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