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글을 꿈꾸던 아이, 현실을 배우다.
어릴 적,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책 속 세상에 빠져들며 내가 만든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꿈이었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주변에 도서관이 없었지만, 작은 은행에 있는 무료 책 대여 프로그램을 알게 된 뒤로, 매일 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었다. 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금방 ‘책 읽는 아이’로 불리게 되었고, 그 작은 공간이 나에게는 매일의 모험과 즐거움의 장소였다.
학교를 다니게 된 이후, 학교 도서관이라는 곳은 나에게는 마치 보물 창고와 같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에는 나는 언제나 도서관에 머물렀었다. 도서관의 책들은 나의 친구이자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주는 열쇠였고,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키웠고 글을 쓰곤 하였다. 지금 보면 매우 서툴고 조잡한 글들이었지만, 빈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지우는 그 시간들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잦은 이사와 단칸방 생활이 반복되었고,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닌 ‘사치’ 일뿐이고, 생활이 우선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꿈이 아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 거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었다. 지역 명문고에 입학한 덕분에 0교시부터 시작해 밤 12시까지 학교에 머물렀고, 집에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목표를 위해 하루를 온전히 바치며,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다 보니, 친구들 대부분은 꽤 괜찮은 대학교로 진학했었고, 나 역시 안정된 미래를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되었다.
어쩌면 불안정한 가정환경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원한 것은 ‘안정’이었으니깐. 그래서 진심으로 열망해서가 아니라, 단지 안정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거다. 헌신과 희생이라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안정적이고 변동이 적은 생활을 원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여러 대학에 지원한 끝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사범대에 진학을 했다. 그 선택이 나의 새로운 꿈을 향한 첫 발걸음이 된 셈이었다.
이렇게 보면, 나는 한때의 꿈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꿈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형태로, 나를 조금 더 현실적인 길로 이끌어준 것뿐이다. 글을 쓰는 일을 잠시 접어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그 꿈의 씨앗이 남아 있다. 지금은 그 씨앗을 잘 보듬어, 나의 현실적인 꿈들과 함께 새로운 방향으로 피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