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칼날 같은 기억
어떤 기억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마음속에 남아, 그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게 만든다. 입술 끝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단어, 말해버리는 순간 그 상처가 더 선명해질까 봐 감히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그 단어. 나는 아직도 그날의 결정을 '그 일'이라고만 부를 뿐, 그 단어를 꺼내지도 못한다. 마치 그 단어가 나의 후회를 더욱 깊이 베어 들어올까 봐 두려운 것처럼.
그날의 기억은 유독 선명하다. 부모님께서 우리를 조용히 불러 앉히셨던 순간, 아버지의 굳은 표정과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어린 나이였던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머니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곧 여동생이 생길 텐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 말속에는 알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그 질문은 단순히 우리의 생각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픔을 나누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깊은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채, 상황의 무게도 생명의 소중함도 모른 채, 그저 경제적인 현실을 떠올렸다. 너무나 쉽게, 너무나 이기적으로, 나는 대답해 버렸다.
“싫어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어머니의 마음을 찔렀을까. 그 뒤에 이어진 침묵 속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의 말은 부모님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나의 무심한 대답이 그들의 결정을 뒤흔들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의 대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신다. 부모님의 결정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그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 모든 감정이 현실로 다가올까 두려워 여전히 그 단어를 입에 담지 못한다. 내가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이 칼날처럼 내 마음을 깊이 찌르고 있지만, 정작 그 상처를 가리키며 "여기 있다"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진다.
만약 그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어떤 가족이 되었을까? 그 이름조차 붙여주지 못한 여동생은 아마도 지금쯤 내 옆에서 미소 짓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 일'이라고 부르며, 상상 속에서만 그 여동생의 존재를 그려낸다. 말하지 못하는 그 단어가 나를 무겁게 억누른다.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으신다. 그 결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마치 그 단어를 부르는 순간 깊게 묻어두었던 상처가 다시 피어날 것처럼 우리는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 담긴 무게는 결국 세월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단어조차 부르지 못한 채, 오늘도 마음속에서만 조용히 되뇐다. 그때의 내 무심했던 대답이, 부모님의 그 결정이,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이 모두 하나의 상처로 남아 있지만, 나는 그 단어를 불러낼 용기를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후회이자, 가장 큰 비밀이다.
아직도 나는 그 단어를 부르지 못하고, 그 존재를 '그 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이름 없는 아이가 여전히 나의 여동생으로 남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