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작은 방과 긴 시간
대학원 생활은 단순한 학업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또 다른 전쟁터였다. 이공계 대학원의 생활은 그저 머리를 굴리며 연구만 하는 낭만적인 상상이 아니라, 매일매일 육체와 정신을 갈아 넣어야 하는 고된 싸움이었다. 하루 9시부터 밤 9시까지는 기본, 12시간이 더 넘는 연구실 생활은 기본이었고,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학문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남들이 잠을 자고 있을 때, 나는 논문과 연구 데이터 속에서 또 다른 문제를 고민하며 새벽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연구와 학업의 부담이 나를 짓누르고 있을 때조차, 현실의 무게는 더 깊숙이 나를 억눌렀다.
대학원이라는 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한 공간이었다. 연구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열정뿐만 아니라, 그 열정을 지탱할 수 있는 금전적인 기반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연구실에서 소정의 인건비가 주어졌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등록금을 제외하고 남는 돈은 거의 없었고, 생활비는 늘 한계에 부딪혔다. 연구라는 위대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걸어가는 동안 나를 지탱해 줄 최소한의 기반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의 삶은 그 최소한마저도 사치로 느껴졌다.
기숙사라는 작은 안식처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나마 돈이 필요 없을 것이라 여겼던 기숙사는 배정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선택한 곳은 고시원. 보증금이 필요 없다는 것만으로 나는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시원은 그저 ‘지낼 곳’ 일뿐, 결코 ‘사는 곳’이 아니었다. 좁디좁은 방 안에서 내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그 침대 위에 낡은 이불을 펼치고 누울 때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사람들의 발소리와 고단한 한숨이 벽을 타고 흘러나왔다. 밤이 깊어도 고시원의 복도는 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조그마한 방 안에서 그 모든 소리를 이불속에 감춘 채 지내야 했다.
고시원의 공용 주방은 나에게 은밀한 생존의 장소였다. 밥은 무한 제공. 그것은 나와 같은 가난한 대학원생에게는 축복이자 생존의 끈과 같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마트에 들러 할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식재료들을 골라내고, 그 식품과 고시원 주방의 밥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조금씩 아껴둔 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대학교 시절의 경제적 궁핍과는 또 다른 종류의 빈곤이었다. 대학교에서는 그나마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조금씩 저축하며 다음 학기를 준비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에서는 시간이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짧은 잠을 자고, 눈을 뜨자마자 다시 연구실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연구와 실험 사이사이,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했다. 조교로 일하며 학교에서 얼마간의 지원금을 받았고, 야간 아르바이트로 잠시나마 지갑을 채우기도 했다. 주말에는 다시 일을 나가야 했고, 이 모든 것을 마친 뒤에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야 했다. 고된 육체노동 뒤에 실험실의 조용한 공기 속에 들어서면, 나는 다시 이중의 부담감과 싸워야 했다. 과학과 이론의 세계 속에서 나의 정신을 쥐어짜 내면서도, 내 머릿속 한편에서는 언제나 “이번 달 생활비는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본가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한 일이 되어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차비가 없었다. 기차표 한 장, 버스표 한 장을 끊기 위해서 나는 며칠의 식비를 포기해야 했다. 그나마 가족들이 나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또다시 걱정과 한숨이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 나를 위해 그토록 고생하시며 애써 마련해 주신 교육의 길이 결국 나를 또 다른 궁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연락을 드릴 때마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은, 그 잘 지낸다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허무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연구실에서 보내는 긴 시간 속에서, 나는 가끔씩 책상에 머리를 대고 고독과 싸웠다. 학문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 나의 꿈은, 나의 열정은 이렇게 현실의 벽 앞에서 끝없이 시험당해야 하는 걸까? 하루하루가 그저 생존을 위한 발버둥처럼 느껴졌고, 가끔은 내가 정말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공계 대학원이라는 그 험난한 길에서, 나는 끝까지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남고 싶었다. 대학원이라는 곳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단지 학문의 깊이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연구실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밤하늘 아래에서,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좁은 고시원 방 안에서 홀로 눌러앉아 있을 때에도, 나는 내 안의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실험실로 향했다.
이 길이 끝난 뒤,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지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그 모든 것을 버텨냈다는 사실이다. 내가 쏟아부은 노력과 고통, 그리고 그 안에서 간신히 지켜낸 자존심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질 수 없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섰고, 다시 걸었다. 가난과 꿈, 그리고 학문을 향한 열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썼던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좁은 고시원 방과 긴 연구실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고된 현실 속에서도 나는 나의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이 나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