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상상이 실체가 되는 순간
나의 조카는 공룡을 정말 좋아한다. 그 조그만 손으로 공룡 장난감을 움켜쥐고, 가끔은 그 장난감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인 양 돌본다. 조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공룡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나도 공룡에 대한 막연한 흥미와 신비감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크기,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생물들이 이 지구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린 나에게는 마법처럼 느껴졌었다. 조카가 공룡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나도 그런 공룡에 매료되었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과 함께 공룡 전시회를 가기로 한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부모님이 바쁜 일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었고, 대신 친구 부모님과 함께 전시회에 가게 되었다. 전시회를 방문하기 전, 부모님은 내 손에 돈을 꼭 쥐어주셨다. 그 돈으로 기념품을 사든지, 먹을 것을 사 먹든지 하라고. 그런데 나는 그 지폐를 어디선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그저 전시만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전시회 자체는 어린 나에게 충분한 충격과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공룡의 거대한 모형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생물들이 수천만 년 전 실제로 지구를 지배했었다는 사실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동생과 함께 그 추억을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그 전시회는 단지 내가 공룡을 더 좋아하게 만든 계기일 뿐만 아니라, 어린 나에게 세상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게 해 주었던 첫 경험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지폐의 아쉬움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전시회에서 공룡들이 내게 준 깊은 인상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공룡에 대한 추억 중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바로 쥬라기 공원을 처음 본 날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접한 공룡은 단순한 만화 캐릭터나 장난감 같은, 상상 속의 존재였다. 귀엽고 친근한 공룡 인형들, 또는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로만 공룡을 봤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은 달랐다. 영화 속에서 공룡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구현된 장면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그 충격에 말을 잃었다.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모든 것이 현실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공룡들이 영화 속에서 그 거대한 몸집으로 울부짖으며, 내 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느낀 경이로움과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쥬라기 공원 이후로 나는 영화라는 매체가 단순히 이야기를 보여주는 도구를 넘어, 상상을 실체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깨달았다. 공룡이라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생물을 실사로 구현해 낸 그 영화는 나에게 상상의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감각을 열어주었다. 그 느낌은 이후 내가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에도 다시 한번 되살아났다. 아바타는 상상 속 외계 종족을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구현해 냈고, 나는 또다시 그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내가 공룡에 대한 사랑을 넘어서,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모든 창작물에 끌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룡이 상징하는 것은 단지 오래전 멸종한 생물만이 아니라, 상상력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의 마법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룡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우리 상상 속에서 살아 숨 쉬며, 그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조물이다.
조카가 공룡 장난감을 들고 놀 때, 나는 그 장난감 속에서 그가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그토록 공룡을 좋아했던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공룡은 나에게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자, 그 세계를 현실로 끌어내는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내게 공룡은 단지 동물이 아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거대한 세계와 미지의 영역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조카를 보며 나의 공룡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 이야기 속에는 상상력과 현실을 잇는 다리가 있다. 공룡은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나의 상상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나는 그 존재가 주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다시금 느낀다. 나에게 공룡이란. 내가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능력,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발견한 무한한 가능성의 상징이다. 조카가 공룡을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상상력을 다시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