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불안한 이들을 위하여

사는 이유

by SONEA

하루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야 니들은 왜 사냐?'

이 질문을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니는 왜 사는데?'라고 대답하였다.

대답을 들은 친구는 '그러게? 왜 살지?'라 하였고

그러자 친구들은 일제히 그 친구에게

'그럼 죽어 인마, 뜨끈한 국밥 좀 한 그릇 먹게'라 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고민이나 생각이나 이야기를 들은 적 있을 것이다.

'아 나는 왜 사는 걸까?' '저 사람은 왜 사는 걸까?'

'삶의 이유를 모르겠어' '모든 것이 다 의미 없는 것 같은데'

대다수 인간들은 위와 같은 고민을 끝없이 하며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질된다.

부정적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은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며

이는 곧 '무지'를 뜻한다.


초행길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할 때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잘 모르기 때문이고 이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하던 일 안 하고 새로운 일 했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가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갔다가 사고 나면 어쩌지?'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기에

새로운 것을 접할 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기에 삶이 불안하고 미래가 두려운 것이다.

왜? 명확하고 뚜렷하게 보이거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삶이 무의미하고 지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이유, 의미, 목적' 따위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사는 이유는 없다.


'그냥 하는 거야' '한번 해보는 거지' '안 해본 거잖아'

근래에 내가 많이 쓰는 말이다.

안 해본 것을 하거나 도전을 할 때 물론 두려움이 발생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한 발 물러나 바라보며

펼쳐지는 상황에 온전히 나를 내맡긴다.

지구별에 여행을 온 외계인 같이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창조하고 즐긴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없다.

넓디넓은 우주 중 지구별에 태어난 우리는

'태어남'이라는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가 할 일은 끝났다.

이제 할 일은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듯

'무지'가 아닌 '미지'에서 나오는

낯선 설렘과 기대감을 잔뜩 지닌 채

펼쳐지는 모든 것을 즐기면 된다.


단번에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그간 살아온 습과 기억을 벗겨낸다는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이상

한 번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의문을 품을 것이다.

'어떻게 사는 이유가 없을 수 있지?'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오늘 길 가다 본 '잡초'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잡초가 기대어 살아갈 수 있도록 옆구리를 제공해 준 '나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나무 밑에 지나가던 '벌레'들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나가던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알겠는가? 지구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는 이유가 없다.

여전히 사는 이유가 있다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반박은 이들의 시점이 아닌

온전히 인간인 '당신'의 시점과 주관으로 판단하여 말하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에서 푸르고 아름답게 빛나는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펼쳐지는

다채롭고 다양한 것들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우리는 이 지구별에 잠시 내려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놀이동산에 놀러 온

어린아이(에고의 나 가 아닌 마음의 '나')처럼

이것도 즐기고 저것도 즐기고

이런 모습도 해보고

저런 모습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범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를 지켜주시고,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드리며,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앞서 이야기하였지만

불교와 기독교와 천주교 등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우리는 다른 존재가 아닌

모두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에 있음을 알지만 볼 수 없는 것이고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위와 같은 감사 기도는

에고의 나가 내면의 참 자아인 '나'에게 하는 것이다.

이를 인식하고 위의 감사 기도를 읽으면

사뭇 다르게 보이고 어딘가 와닿는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할 수 있는 한 크게 박수를 한번 치고

내가 '나'에게 내 이름을 부르며

이런 감사 인사를 전한다.

'OO아 오늘 하루도 무사히 시작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즐겨보고 잘 놀아보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차를 운전해 출근길에 오르면

하루가 설레고 왠지 모르게 두근 거린다.

이렇게 매일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펼쳐지는 하루를 온전히 즐기고자 하는 자세가

진정한 '내맡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