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불안한 이들을 위하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by SONEA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는 김불안이라고 합니다'

그건 당신의 이름이지 않습니까?

'저는 가끔은 불안을 느끼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편이며 주변 사람들과 관계 유지를 잘합니다.

또 활동적인 행동을 굉장히 좋아하며 자주 웃습니다'

그건 당신의 성격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 저는 키 178cm에 몸무게는 80킬로 정도이며

머리는 검은색에 눈은 약간 갈색을 띠고 운동을 해서 다부진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당신의 입니다. 여전히 당신이 누구인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래요 좋습니다 알겠어요.

저는 서울에 있는 모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직책은 팀장입니다.

적당한 연봉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고 있고

예쁜 아내와 소중한 자녀 두 명이 있습니다.

지금 집은 서울에 있는 모 아파트이며 그

렇게 호화스럽거나 넓은 집은 아니지만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차는 깔끔한 중형세단을 타고 다니고 있고 아내는 작은 경차를 하나 탑니다.

곧 자녀들은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며

성적이 좋아 좋은 대학교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건 당신이 처한 사회적 위치이자 잠시 소유를 하며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누군지'


읽다가 자신을 보는 듯하여 움찔했는가?

아니면 자신 또한 대답을 하지 못함을 알고 머리가 아파오는가?

아니면 이게 나인데 무슨 소리하는 건지 싶은가?

괜찮다 지극히 보편적인 반응이다.

대다수 자신이 잠시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자신이라 착각하여

소유하는 대상에 자신을 '투영'시켜 이야기하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타인이 '침범'했다고 판단되면 분노하고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며 두려워하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차에 작은 흠집을 냈다. 당신은 굉장히 분노하며 따질 것이다.

누군가 당신의 몸에 손을 댔다. 당신은 고통을 느끼거나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할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을 당신의 '소유'라고 판단하기에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곧 '자신'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그건 당신이 아니다.

잠시 당신이 소유하며 관리하고 있는 것이지 '당신 자체'가 아니다.

그건 당신의 '자산'이지 절대 '자신'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그것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말할 때 '나의'라는 소유격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의 몸, 나의 집, 나의 아내, 나의 차, 나의 자식, 나의 돈

하지만 이를 망각하고 자신과 동일시한다.

10년 전 순수하고 해맑던 당신의 모습 기억하는가?

거울 속에 비치는 당신의 모습은 어여쁜 교복을 입고 단정한 안경을 쓰고

학습지로 가득 채워진 무거운 가방을 멘 모습은 영락없는 학생의 모습이다.

조금 더 과거로 가보자.


당신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데 성공했다.

작고 화려한 자전거를 탄 작은 몸을 지닌 당신은

옆으로 넘어질까 무서워하지만 달릴 때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와 바람에

어느새 무서움은 없어지고 이름 모를 흥분감만이 당신의 몸을 감싼다.

그럼 이제 질문을 한 가지 하겠다.

10년 전 당신과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외적인 모습은 완전히 똑같은가?

아닐 것이다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키가 크고 몸이 커지며 머리카락도 자랐고 수염도 거뭇거뭇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당신은 그곳에 있으며 과거에 모습도 같은 당신임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바로 그 자리가 '참 자아인 마음속의 또 다른 나'의 자리이다.


분명 세상도 달라졌고 지내는 환경도 달라졌고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고 보내는 하루도 달라졌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함을 알고 있다.

이제 알겠는가?

당신은 늘 그 자리에서 우주와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주시자의 시선을 지닌 '참 자아'이다.

'참 자아'는 지구별에 잠시 놀러 와 머무는 동안 모든 것을 즐기려 한다.

그중 당연 제일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인간의 '감정'이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났다고 착각할수록

자신만의 기준이 생기고 이는 '호불호'가 된다.

이건 싫고, 저건 좋고, 이건 맛있고, 저건 맛없고

이 '호불호'는 기억에서 태어났으며 이는 곧 '에고'의 기준이 된다.

대다수 인간들은 '참 자아'의 위치를 잊은 채 어느새 '에고'가 자신이라 착각한다.

그렇기에 개인적 호불호를 따라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개인적 호불호를 따라 세상을 통제하려 든다.

이 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누군지 '망각'하기에 이른다.

'에고'의 호불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참 자아'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

이것을 깨닫는 것이 우리들에게 내려진 숙명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당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