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내가 만들어지기까지
엄마, 나 면접 다녀올게 #프롤로그(1)
┃게임+학창시절, 취업시대 이야기┃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40대의 내 모습이 만들어지기 전 과거의 나를 투영해보는 시간이다. 구구절절한 변명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그리 녹록치 않은 내 삶에 있어 가장 시원하게 희망회로를 풍차마냥 돌려댔던 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낼 수 있는 좋은자리라 생각하여 가감없이 짜내어보려 한다.
공부를 적당히 못했다. 초등학교 땐 나름 동네에서 수재 소리를 들었다. 성적표는 늘 우수한 수우수우수 천지였다. 그러기에 엄마는 여느 부모들처럼 학업에 대해 그리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하는 얘기지만
'엄마, 왜 그랬어. 좀 때려서라도 나 공부시켜 주지.'
라는 변명 같은 말은 꺼내고 싶지 않다.
그저 내 머리가 이끄는 대로 공부했고 결정했으며 그것이 내 인생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땐 취업시장에 막 발을 디딜 때니까. 아무튼 과거의 나를 좀 더 캐내 보자면. 여느 학생들이 그러하듯 학기 초가 되면 문방구에 들러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공책을 이것저것 뒤집어가며 사곤 했다.
아기자기한 공책을 좋아하던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유독 '미치코런던' 공책을 좋아했다. 공룡 뼈가 표지를 그득하게 채우는 어두컴컴하거나 흰바탕의 검은뼈, 노란바탕에 검은뼈의 공책.
지금은 구글링을 통해서도 찾기 힘든 그 기묘한 공책을 나는 매년 꾸준하게 구입해서인지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있다. 왜 좋아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간지'를 좋아했고 튀어보이고싶었던 자그마한 발악과도 같았다. 공책 하단부엔 공백을 길게 이어놓고 ___국민학교라 되어있었다.
매년 그렇게 공책을 구입하다 3학년즈음 국민학교라고 적힌 부분을 줄로 직직 긋고 나는 초등학생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사실 내 인생의 첫 변곡점은 중학교다. 근데 왜 초등(국민) 학교 얘기를 넣느냐고? 조금이라도 내 나이를 유추해 보라는 재미난 퀴즈라 생각해 달라.
중학교 1학년 무렵부터 늘 우수한 내 성적표에 아름답지 않은 '미'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가 늘어나는 개수만큼 학교 근처엔 'PC방'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게임과의 지독한 인연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스타크래프트라는 지금의 '전통 놀이'가 대한민국에 막 살포되던 시기였고, 나는 그 '뉴클리어'를 정통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하는 세대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멋진 타이밍이었다.
내 뇌 속 어딘가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덩크넷 PC방'이란 단어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랬다. 교문 앞에서 생글생글 웃는 학생 한 명이 나눠주는 '1시간 무료' 쿠폰은 친구들과 나를 달콤한 유혹의 길로 인도했다.
학교에서 불과 200m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 학교보건법이 완벽하게 제정되기 전 빈틈의 실을 파고들어 온 덩크넷 PC방은 우리 중학교를 들썩이게 했다.
2층에 자리 잡은 시간당 2천 원의 그 PC방은 같은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의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무료 쿠폰이 끝나갈 무렵 각자의 비상금을 꺼내 카운터에 내밀고 뛰어가는 기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CD를 받아 CD롬에 넣고 괴상한 얼굴을 한 3 종족이 지나간 뒤 싱글게임이든 멀티게임이든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도 고인돌이나 페르시안왕자 등등 다양한 게임이 있었지만, 이토록 도파민을 풀파워로 분출하게 만든 컨텐츠는 스타크래프트가 최초였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마린의 목소리가 내 머리를 때려댔고, 저글링이 울타리를 넘는 상상을 하며 저글링 마릿수를 세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내 중학교의 일부는 스타크래프트로 점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