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기라 해야 할지 불행한 시기라 해야 될지 모르겠다. 행복이란 단어를 쓰자면 할 게임이 많고 이제 막 게임과 관련된 산업이 부흥했으니 그러할 테고, 불행이란 단어를 쓰자니 그 호황산업의 주 소비자층이 우리. 즉 나의 학창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즐길거리 많은 요즘 세대들이 유튜브나 라이브매체에 빠지듯 나 또한 지독스럽게 게임에 빠졌다. 비겁한 변명을 이끌어내자면 이래서 내가 공부를 멀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내 성적표는 양가집안의 대를 잇고 있었고 나는 그깟 성적표 한 장 보다 내 게임 속 랭킹과 지표가 더 중요했던 모지리였다.
중학교 3학년은 인생의 기로에 서는 시점이다. 문과니 이과니 서로 어떤 인문계로 가 더 나은 공부를 할까 진취적인 방향을 정하고 있을 무렵. 내 성적표의 심각성은 그때서야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어머니. 인문계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마른 입술을 어렵게 떼며 나직이 말했다.
침통한 표정의 어머니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물음을 건넸고 선생님께선 조심스레 택할 수 있는 고등학교 몇 군데를 짚어 주셨다.
"니 인생 네가 사는 건데, 선택에 후회는 하지 마라."
학교를 빠져나오며 어머니가 해준 말은 다소 왜곡되었을지언정 뜻 하나만큼은 충분히 정해졌다. 게임 속 캐릭터의 특성을 찍듯. 내 인생의 스탯은 이제 막 '공업고등학교'로의 특성을 찍게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식 전까지 나는 며칠간 악몽을 꾸었다. 만화책이나 여타 드라마 영화등에서 나오는 '불량한'고등학교의 이미지는 '불량한 서클'과 '불량한 학생'들이 '선량한'학생들을 괴롭히는 장면들로 자주 노출되었기에 난 그 드라마 속 선량한 학생 1번이 될까 너무 두려웠다.(누가 신선한 우유를 던졌어)
꿈속의 나는 일진패거리들 사이에 둘러싸여 스타를 그따위로 밖에 못하냐며 마우스로 두드려 맞는 어처구니없는 꿈을 꿔댔고 꿈은 하루 중 가장 임팩트가 컸던 기억 중 하나를 끄집어낸 것 마냥 뒤틀린 상태로 나를 맞이했다. 어림없지. 그런다고 내가 게임을 포기하진 않는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대단히 성숙치도 않고 아직 중학생의 티를 벗어나지 않은 그런 나였다. 남녀공학으로 변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라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는 여학생 비율이 20%가 안 되었지만, 내가 입학한과는 40명 중 15명 내외의 여학생과 같은 반으로 구성되었다.
덕분에 내가 꾸었던 악몽처럼 서클이나 불량한 느낌의 학창 시절은 아니었단 안도감과 더불어 취미가 맞는 친구 두 명과 빠르게 어울릴 수 있었다. 물론 좋아하는 게임이 디아블로는 아니었다. 반 내에서도 게임의 계파가 갈렸고 나와 친구는 스타크래프트의 계파를 택했기에.
내가 택한 과의 이름은 '전자계산기과'였다. 요즘에서야 '컴퓨터공학과'로 이름이 변경됐지만 아무튼 컴퓨터를 좋아했기에 어머니께서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라였다. 이때 전기과를 갔어야 했다. 취업....
우리의 중간고사 기간은 빠른 'PC방 런'을 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공부를 못하면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직업의 선택권에 있어 누릴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게임에서의 내 직업은 전사, 마법사, 힐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직업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없었다는 걸 그 당시 PC방을 달리는 나는 알 수 없었다.
적당히 공부와 게임을 병행하며 성적은 내려가고 게임실력은 늘어만 가는 채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1학년땐 일진이니 패거리니 서로 확인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2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생성되는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