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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렌즈 Sep 29. 2024

일진 안 풀리네

엄마, 나 면접 다녀올게 #6


일진 그 두려움의 대상이여



마음 편히 보셨으면 하는 마음을 미리 여기에 담아둡니다. 아래부터 쭈욱 이어질 학창 시절
일진패밀리 이야기에선 괴롭힘을 심하게 당했다거나 우울감이 가미되는 학창 시절을
보내진 않았습니다. 슬기롭고 유쾌하게 보냈으니 부디 재밌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일진의 본래 뜻은 '군사들의 한 무리'를 뜻하지만 요즘의 일진은 어디 그러한가. 학창 시절에서 가장 싸움 잘하는 속칭 '쌈짱'을 일진으로 부르곤 했다. 적어도 우리 학교는 말이다. 일진을 뽑는 기준은 동물의 왕국처럼 처음엔 서로 서열싸움을 하듯 '방과 후 폭력활동'을 통해 각자들의 랭킹을 만들어낸다.



내가 고등학교 초에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 승수를 쌓듯, 이 싸움을 좋아하는 친구들 또한 각자들만의 영역에서 승수를 쌓고 있었다.


단 1회의 싸움으로 일진 언저리까지 가는 운동부, 싸움에서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깡다구 하나로 인정받는 의자왕(의자를 들고 싸움),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수업시간마다 찾아와 도전장을 내미는 낭만파도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피바람이 불고 나면 각자의 서열 안에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의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일진을 필두로 한 이진 삼진 사진. 정확히는 일진패밀리가 만들어진다. 조직문화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행동을 좋아하는 행동대장. 뒤에서 침만 뱉으며 가오로 몸을 지배시키는 가오리. 논리로 상대를 압살 시키는 욕쟁이 등.



이 얘기를 왜 하냐고?



내가 그 무리들과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과 대부분 헤어지게 되었다. 이건 꽤 심각한 사안이었다. 단순히 일진과의 조우가 두려운 게 아니라 방과 후 친구들과 PC방을 갈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2학년 초는 역시 일진들의 탐지기가 가동되는지라 눈치를 살폈고 나는 곧 가젤무리가 되어 일진이라는 사자무리의 먹잇감 중 하나가 되었다. 눈에 보이면 빵셔틀을 시켜댔고 참 다행스럽게도 빵값은 주고 시켰기에 남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방과 후엔 게임 속에서 셔틀을 몰고 다녔으니 난 투잡 중이기도 했다.



일진무리들 중 행동대장 '주번'이 되었다. 주번은 그냥 쉽게 말해 1주일마다 칠판 닦기, 청소, 교실 뒷마무리 등등 여러 가지 잡무를 도맡아서 한다. 2명이 1조가 되는 거다.



행동대장이라 부르기 어려우니 '봉두'로 바꿔서 부르겠다. 아무튼 봉두는 모든 주번활동 업무를 나에게 짬처리했고 나는 있는 그대로 수행하는 착한 인물이 아니었다. 꼭 하나씩 빠트리거나 놓치기 일쑤였고 연대책임처럼 선생님은 같이 벌을 주었다.



일진무리들을 왜 같은 학반에 밀어 넣었는지 알 수 있었던 이유. 우리 반 담임은 학년부장이자 교내에서 가장 악바리선생님이었고 매타작의 달인이라는 것.



주번을 게을리한 대가는 혹독했다. 반에서 범생이건 일진이건 항상 공평하게 후드려 팼다. 쇠로 된 마대자루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등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온 그 잔혹사를 당하고 있었다. 내가 슬펐겠는가? 어림없다.



봉두가 욕을 하건 괴롭히건 말건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놔버렸고 봉두입장에서도 그냥 태생이 저런 놈이구나 하면서 체념하는 데까지 3주가 걸렸다.



1주일이면 끝날 주번을 3회나 했다는 말이다. 3주 차가 되니 봉두는 주번활동에 적극합류했고 무사히 주번활동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덕분에 나는 봉두의 적극적인 어필로 1박 2일 수련회 방배정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의 그룹에 합류했다. 거부할 수 없는 마력..



그들이 나에게 내려준 미션은 소주 3병 밀반입이었고 난 프링글스에 1병(이거 당시에 딱 맞는 굵기였다) 나머지 2병을 보온밥통에 쏟아부어 액체류로 반입을 시도했다. 그들은 나를 괴롭힌다는 목적이 아닌, 각자 임무가 있었고 누군가는 구름과자를 누군가는 안주를 밀반입했을 뿐 저마다 주어진 환경 내에서 선을 다해 반입을 시도했다.



내 완벽한 밀반입은 정작 그놈들 중 한놈이 피던 구름과자가 교관의 눈에 띈 덕분에 물거품이 되었다. 연대책임이란 걸 처음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엎드려뻗친 뒤 뒷사람 머리에 앞사람의 다리를 얹는 청룡이 되어 열심히 바닥을 헤집으며 결속력을 다졌다.



나름대로 어른흉내를 내려 시도했기에 해프닝 속에서 기묘한 사회의 축소판인 연대책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수련회의 열차타임 이후로 그들은 빵셔틀에서 나를 면제시켜 줬고 봉두가 나와의 에피소드를 재밌게(?) 포장이라도 한 건지 나는 불편하지 않은 2학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덕에 친구들과 하교 후 꼭 PC방에 들러 하던 게임이 있었다.



이제부터 언급할 게임은 내 인생 전부를 바꿔버린 게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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