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구직자입니다. #5
면접은 좋았다. 타 회사와 동일한 날에 면접을 진행했고 나는 두 갈래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없었다고 해야 될지..
현재 다니고 있는 바로 이 직장에선 유일하게 중소기업 최초로 면접비를 받아 쥐게 되었다.
2만 원일 뿐이지만 그 돈이 주는 값어치는 크게 와닿았다.
그런 좋은 감정을 갖고 이 회사를 택했고 입사했다. 연봉은 전 직장보다 500 정도 줄여서 입사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영업직'이기 때문이었다.
전 직장에서 영업 최우수사원으로 200만 원의 포상과 5일간의 휴가까지 받았던 경험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 직장'일뿐 '현직장'에서 보여줄 퍼포먼스는 결국 몇 마디의 대화와 빠른 손가락보다는 데이터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뿐이었다.
그렇기에 초봉은 작게. 그리고 증명해서 올리는 게 보통 내 방식이기도 했다. 가파른 상승으로 연 500정도 오른 경험도 있으니 말이다.
모쪼록 정장 차림으로 첫날 사람들과 인사하고 자리를 배치받아 앉았다.
회사의 제품이 가득 들어있는 카탈로그를 보면서 처음으로 퇴사생각을 해본 것 같다. 너무 공학적인 요소가 많아 단순히 제품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설명하는 것 조차 버거울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일단 '기술영업'이기에 내가 이 제품에 대해 잘 알아야 했지만 문제는 이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단순히 내 제품만이 아니라 타회사의 '공정'에 투입되었을 때 여러 변수들에 대한 자료는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도체공정에 투입될 수도 있고 압출 공정이나 사출 공정에 투입될 수도 있는 제품인데 이렇게 폭넓은 산업 전반에 들어가는 제품들의 경우 다양한 데이터가 쌓여있어야 그것을 기반으로 접근할 텐데 그러한 자료가 전무했다. 오로지 머리박치기 영업인가?라는 생각들 뿐..
연구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곳의 부서장은 '없다'와 '불가능하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영업이 아무리 필요한 데이터를 요구해도 없는 것들이 더 많았기에 영업사원에게 무기를 만들어주긴 커녕 발목을 잡아대고 있었다.
아! 이래서 20년이 다되어가는 사업아이템이 100억을 간신히 넘긴거구나!
문득 면접 때 사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1년 안에 한대라도 팔 수 있다면 대단한 겁니다.
미리 스포를 하자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나는 5대를 판매했다.
아무튼 입사 후 2개월쯤 지나 이제 제품명과 스펙이 익숙해질 무렵 나와 동갑내기 과장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부서장과 상담을 하고 나왔다. 이때가 4월이었다. 불길한 느낌은 어딜 가나 틀리는 법이 없다.
그의 퇴사. 그리고 넘어오는 예기치 못한 업무량들.
"많이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내가 나가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수인계를 해나갔다.
내가 이 사람의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나와 업무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영업'이라는 포괄적인 부서에 묶여있지만 그와 나는 시작부터 포지션이 달랐다. 나는 외부영업을 하기 위해 경력직으로 들어온 거고 그는 '유지보수'로 소속되어 제품의 A/S를 담당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과도한 업무량 탓에 수차례 부서장에게 인원을 늘려달라 호소했지만 결국 내가 들어온 것이 그의 퇴사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오기 전 이미 2명이 퇴사를 했고 내가 들어왔다고 하니 이 뜻을 곰곰히 되짚어 보면 애초에 '부서장'이 필요로 했던 '영업'직군이 입사한것인데 이 과장은 자기 포지션으로 추가인원이 들어온 줄 착각 한 것 같았다.
모쪼록 나 또한 불쾌함이 있었고 그와 함께 다니는 출장에선 내가 원하는 업무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제품의 설치과정에서 3박 4일간 공사관리로써 안전모와 안전조끼를 입은 채 감독역할을 하고, 제품의 시운전을 위해 아침 일찍 차를 끌고 나가는 등.. 나는 분명 '영업'이라는 카테고리로 소속되길 바랐지만 회사는 "그 또한 영업이니 일단 해보라"라는 말로 나를 현혹시켰다.
아니 이건 흔히 말하는 PM(Project Manager)이 아닌가? 영업으로 묶어서 퉁치는건가? PM은 따로 부서를 둘 만큼 업무량이 많은데 이걸 왜 영업에서 하고 있지? 라는 불만이 한가득 쌓였다.
실제로 영업에서 도면을 받아쥐고 검토하며 시운전일정을 조율하고 납품까지 신경쓰는 등 별의 별 개차반같은 업무에 혀를 내둘렀다.
이때쯤부터 늘 사직서를 마음에 품고 있었지만, 먹어가는 나이의 앞자리는 곧 4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포도청이 되어가는 목구멍을 간신히 눌러가며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퇴사하고 유지보수 업무를 본격적으로 떠맡게 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도중 '영업'의 본업 또한 잊지 마라는 부서장의 의견으로 인해 잦은 출장(그것도 자차로)과 내근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쓸 무렵이 아마 내 한계가 도래했던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가 떠난 자리와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영업팀의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퇴사를 했고 우리는 2명의 공석을 갖고 12월까지 흘러왔다. 그간 떠나간 사람만 5명은 되는 듯 하다.
신입이 계속 나간다는건 그만큼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았단 뜻이고, 그만큼 직장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단 구석에 박혀있으니 자차가 없으면 출퇴근조차 불가능하고 그러다보니 젊은피를 수혈 할 만한 환경조차 갖추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영업해 오는 '부서장'의 능력과는 별개로 그것을 쳐내줄 역량은 내부엔 없었다.
사장에게 꾸준히 사람이 없음을 피력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미안하다' '기다려달라'라는 말뿐..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9월쯤에 신입이 한 명 입사했다.
'신입'인데 직함은 '차장'으로 입사했다. 나보다 높은 직급이란 것이다. 한편으로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내 업무를 나눠줄 수 있는 훌륭한 인재이기를 바랐다.
그에게 기본적인 업무 인수인계를 지시했기에 난 그의 곁으로 가 폴더의 위치나 파일 등을 알려주는데 문득 수상한 손가락이 보였다. 키보드를 독수리타법으로 두드리는 것에서 그만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엑셀을 할 줄 모른다고, 컴퓨터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상사로 입사했다.
어려웠다. 감정을 숨기는 게 힘들었다. 나는 표면적으로 쌓여있던 불만이 내부로도 스며들어 내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뱉어냈고 그에게도 몇 번이나 '유튜브를 통해 학습이 필요하다.'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음에도 그는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나도록 그 실력 그대로 지닌 채 시간을 때워 댈 뿐이었다.
분명하게 나는 선을 그었다. 낙하산으로 오신건 알겠지만 기본적인 노력은 좀 해야되지 않겠나. 라고 거듭 강조했다.
우습게도 그가 받는 월급은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떼는 세금보다 20만 원을 더 뗀다는 사실 하나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나보다 월급은 충분히 많다는 것.
그는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는 내가 영 못마땅 했는지. 정작 일을 시켜대는 부서장때문에 스트레스로 퇴사하면서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퇴사를 한단 식으로 여기저기 표현해댔다.
웃기게도 정작 그가 해왔던 짧은 일 들을 일련의 과정으로 풀어서 하루에 2시간씩 짜내가며 가르쳐준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풀어보자면 나도 여느사람과 다름 없는 '꼰대'였다.
그러하고 저러한 불만들을 부서장에게 털어내며 난 24년을 끝으로 더 버티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꼼꼼히 미래를 준비해 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나와 같이 일하던 대리 또한 포기를 선언하며 지난주 금요일에 퇴사를 선언했다.
공백이 3명이라고? 내가 이걸 버텨낼 수 있을까?
나보다 더 빠르게 선언한 퇴사 탓에 나는 한층 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 사단을 해결하고 싶었다.
추운 겨울의 퇴사는 누구나 피하게 되고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곧 다가올 설연휴 보너스를 위해 어느 직장인이나 '존버'를 하게 되고 보통 설 연휴 1~2주 이후 여러 알찬 직장들이 올라오니 그때까지만 버텨보자는 마인드였는데. 이 대리는 그 순수한 과정을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자그마한 위로 한편으로 쓰려던 글을 싹 뭉개버리고 이런 하소연을 털어낸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나는 여전히 구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