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모 청소기 제조업체에 이력서를 냈다. 지방에서 꽤 규모가 큰 업체였고 해외에 지사를 두고 있는 회사였다. 마트에서 이모님들이 타고 다니는 바로 그 청소기였다.
내가 지원하게 된 파트는 '유지보수'였다. 사실 청소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언젠가 꼭 한번 '기계유지보수'를 해보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기름이 묻든지 말든지 나는 무언가 조립이라는 것에 꽂히면 그것을 끝까지 마무리해야만 속이 시원한 성격이었고 그렇기에 이러한 '취미'를 방향으로 잡아 취업의 연장선으로 생각했다.
순조롭게도 이력서는 그들의 눈에 안성맞춤이었나 보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젊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녔기 때문이기도 했나 보다. 아무튼 1차 면접 일정이 잡혔다.
오후 2시 즈음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당시엔 차가 없었던지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 근처의 버스정류장에 내려걸었다. 저 앞에 정장을 입은 다른 사람이 보여 '설마'를 속으로 생각했지만 '역시'가 되었다.
이력서를 냈던 바로 그 회사 앞에서 그는 두리번거렸고 곧 나와 눈을 마주쳤으며, 회사 간판을 올려다보았고 그는 내 시선을 향해 같이 간판을 바라본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품절 나기 직전의 물건을 뺏길세라 금세 달려 나가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휴대폰을 꺼내 오후 1시 30분인걸(2시 면접) 확인하고 철제로 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먼저 왔던 문자엔 '20분 전 도착'이라는 문구가 있었기에 아주 적절한 시간이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입구에 있던 여직원은 먼저 올라갔던 남자와 얘기 중이었고 난 잠시 계단의 끝자락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곧이어 "이름이 어떻게 되시냐"는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했고 "저기 앉아계시면 됩니다"라고 가리키는 손가락 끝엔 이미 나보다 먼저 와있던 남자 한 명과 더불어 3명이 앉아있었다.
옳거니. 필시 대기업 면접시스템이로구나. 이런 긴장감 좋지 않다는 생각. 털썩 주저앉아 각자들의 모습을 흘끗 살펴댔다.
승산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입을 열어 면접관과 마주 보고 깊은 대화를 나눌 때쯤 돼서야 '이 회사를 위해 나 자신을 얼마나 어필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기에 아무것 도 알 수 없었다.
첫인상이 사납든지 좋던지 물론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결국 나 자신을 감싸는 보호막은 입에서 토출 되기 마련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면접 끝에 '자랑스럽게 탈락'한 경험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대기 중이었다.
잠시 뒤 '끼익'소리와 함께 '회의실'쪽에서 문이 열리며 3명 정도의 인원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곧이어 입구에 있던 여직원이 누군가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테이블에서 마주 보던 3명의 남자들이 일어났고 곧 나보다 먼저 계단을 오르던 남자와 나만 남게 되었다.
20분이 이런 느낌을 말한 거구나. 마치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자의 심정이었다. 딱 1시 58분쯤이 되어서야 앞서 들어간 3명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굉장히 짧은 면접이다. 나 또한 저렇게 빨리 끝나려나? 얼른 끝나고 집에 가고 싶다 등등을 속으로 읊어댔다.
그들이 나가고 채취도 없어질 즈음 우리는 호명됐고 당당한 걸음으로 입장했다. 3대 2 면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대기업처럼 의자만 멀뚱하게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책상뒤에 감춰진 내 무릎과 주먹 쥔 손은 다소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면접은 굉장히 짧고 명료했다. 지역과 나이 경력은 이미 이력서로 검토가 되었으니 나머지의 것들에 대해 하나씩 검토하는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우리 회사는 무얼 하는 곳이며 자네들이 할 일은 어떠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경력에 대해 조금 심도 있게 물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2차 면접이 예정되어 있음을 시사하였다. 어떻게 보면 예정되어있지 않던(그러니까 채용공고엔 없던) 추가 면접일정이 그리 썩 달갑지 않았다.(당시엔 1차 면접 2차 면접을 기재하지 않는 업체들이 허다했다.)
합격자에겐 연락이 갈 것이라 얘기하며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 면접을 마무리하고 땀을 쥔 손을 늘어뜨리며 문을 열고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생각보다 큰 부담감은 항상 고역이었다.
집으로 와 잠시 쉬고 있을 때 즈음 2차 면접 예정일이 일주일 뒤 같은 날짜로 잡혔다. 이럴 땐 백수인 것이 참 다행스럽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는 터라면 2차 면접이라는 것 자체가 결코 유쾌한 상황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1차는 실무진 면접.. 그리고 2차는 사장님과의 단독면접이었다.
백수의 시간은 참 느리지만 빠르게 흘렀다.
달력의 숫자는 그저 내가 까먹는 돈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타오르는 일에 대한 갈증과 열정은 점점 면접날만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드디어 지정해 준 면접 당일날이 되었다. 입구에 있던 여직원은 이제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 최소인원일까? 아니면 난 이미 내정된 걸까? 김칫국을 들이켜고 있을 무렵. 바로 사장님실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해주었고 난 손짓을 따라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정말 소수였던 건지 시간을 분배해 놓은 건지 나 이외엔 다른 면접자는 보이지 않았다. 경쟁자를 물리친 걸까?
사장실로 들어서 미리 앉아있던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다소 인자한 표정의 60~70대 느낌의 우람한 덩치의 금테 안경을 쓴 사장님이 소파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해 주었다.
생각보다 격식 있는 자리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마치 부동산에 있을법한 갈색의 두텁고 여기저기 해어진 가죽 의자가 유독 정겨우면서 소름 끼쳤다. 그의 손짓이 내가 앉을자리를 향했고 목례와 함께 조심스레 타이밍을 맞춰 그와 함께 마주 앉았다. 의자는 너무 가까웠다. 테이블은 왜 이리 작은가.
실무진 면접에 비해 오히려 더 가까운 위치라 부담되었고 걱정됐지만 의외로 면접은 굉장히 즐겁고 호의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다만 걸림돌은 나 말고도 몇 명의 면접을 더 진행했고 그중 3명을 뽑아 식사자리를 갖는다고 했다.
식 사 자 리
하마터면 왜요?라고 물을 뻔했다. 아니.. 식사는 집에서.. 밥은 집에서.. 왜요.. 왜 저랑 식사를 해야 하는 겁니까. 밥 안 넘어갑니다. 체합니다. 회식 같은 식사자리를 왜 사장님과 독대를..
한편으론 그럴 정도의 회사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격식을 갖춘다 라는 느낌이 아니라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면접인지라 불쾌감이 자꾸 치솟았다. 그렇다고 안 한다기엔 이미 치러온 면접 시간이 아깝기도 해서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 두루 외쳐댔다.
회사에서 약 1km 떨어진 근처 고깃집의 약도와 주소를 나에게 알려주며 그날 보자고 하시며 면접은 간단히 마무리됐다.
식사자리는 공교롭게도 주말을 낀 금요일 저녁으로 잡았다. MZ의 감성과는 다소 결여된 회사라 계속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께도 밥만 먹고 올까? 그냥 돼도 가지 말까? 등등을 외쳤지만 그래도 "가서 점수 따봐라 좋은 회사일지 모른다"라는 식으로 회유했다.
술자리 예절이 궁금한가 보다. 술을 먹이고 진심을 듣고 싶은가 보다.
식사 면접 당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고깃집 앞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 정도 일찍 도착해 처음 면접 때처럼 성큼성큼 걸어가 가게문을 열었다. 예약된 (면접본 회사) 사장님의 이름을 (고깃집 사장) 사장님께 전달하고 방을 안내받아 들어갔다.
이미 사장님은 먼저 와 있었고 옆에는 1차 면접에서 봤던 관계자 중 한 분이 보였다. 어서 오라며 악수를 청하곤 본인을 '부장'이라 소개했다. 머쓱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내가 앉을자리를 스캔했다. 안타깝게도 먼저 왔다는 건 그만큼 점수를 따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은 구석으로 박힌다. 필시 운이 나쁜 경우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잠시 화장실을 간다고 하기엔 먼저 온 사장님에게 실례다. 패착수였다. 회식에서야 당연히 구석으로 갈수록 생존권이 확보되지만 지금처럼 1점이라도 더 따야 하는 상황에선 사장님과 마주 보며 목을 덜 꺾이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실수다! 정장차림의 누군가가 먼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어대며 구석의 자리로 몸을 옮겼다. 그리곤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방의 문이 열렸다! 또 다른 면접자였다. 그는 나를 의식함과 동시에 마주 앉아있는 그분들에게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댔다. 나를 보았을까? 내가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멀찍이 따라 들어왔을까? 난 심리전에서 졌다. 하지만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었다.
화장실로 향할까? 그를 안으로 밀어 넣고 나는 빠져나와야 할까? 아니다. 어른들을 앞에 두고 화장실을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침착하자, 일단 앉자. 그리고 웃자.
어색하게 웃었다.
좌측 구석으로 찌그러져 벽을 끼고 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약속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무렵 세 번째 면접자가 문을 열었다. 면접자 3명. 그리고 사장과 부장.
고기가 가장 맛없을 것 같은 금요일 저녁 낯선 이들과의 멋쩍고 부담스러운 최종 식사면접자리가 시작되었다.
사장은 전혀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면접비를 지급하진 못하지만 맛있는 고기정돈 사줄 수 있다며 마음껏 먹으라 호탕하게 웃었지만 이 또한 '직장 외 괴롭힘이' 아닌가!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시간은 흘러갔고 회사의 비전이나 당신들의 마인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쯤 되면 이미 내정자는 있는 것 같고 그저 자신들의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고기와 술 사이에 끼워 넣는 고급 안주로 만들 속셈인가 싶었다. 술맛 없고 고기 맛없었다. 이쯤 되면 집에서 기울이는 맥주 한 잔이 더 가치 있지 않는가?
딱히 그렇다 할 말실수는 없었고 내 다짐을 수십 번도 더 얘기했던 것 같다. 사장은 그저 갑의 위치에서 을인 면접자에게 내가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고 '엄청난' 회사를 일궈냈고 그런 '멋진' 회사에서 '젊은 인력'을 뽑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다며 여러 얘기를 꺼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술을 마시고 싶어 직원들이 기피하는 회식 대신 면접자를 볼모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 같았다. 나 또한 술이 얼큰하게 취해 한참이나 그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시간을 흘려냈다. 마음속에선 눈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참 우습게도 식사자리에서 어떠한 '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도 누구를 뽑겠다거나 잘할 수 있겠냐는 맹목적인 믿음? 다짐? 같은 것 또한 없었기에 휴대폰을 꽉 부여잡으며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식사면접이 끝나고 결과는 주말이 끝난 월요일에 알려주겠다는 말을 끝으로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부랴부랴 도망치듯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우습게도 인도블록은 자꾸 옆으로 돌고 있었다. 정신을 부여잡았다.
막차에 가까운 버스에 올라 창문에 머리만 멍하니 기댔다. 술은 독처럼 올라 나를 괴롭히고 죽여갔다. 시간은 아깝게 흘러갔다. 버스에 내려 잡아놓은 긴장감은 아파트 동 입구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풀렸다. 화단 앞에서 나는 연신 속을 게워내며 이 불쾌하고 우울한 감정을 토해냈다.
나무에게 미안합니다.. 경비아저씨 미안합니다.. 나도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말씀드릴 수는 있지만 너무 민망합니다. 너무 부끄럽고 우울합니다. 저는 그저 좀 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좀 더 과거로 간다면 공부를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해야 함이 맞지만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는 취업시장에서 그래도 이건 너무 부당한 처사가 아닐까요? 노동자에겐 노동법이 적용되지만 구직자는 늘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이런 괴로움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되어있는 중소기업의 현실입니다.
합격이라도 한다면 덜 괴로울까요? 아픈 속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되지만 이 면접자를 괴롭혔던 면접자리의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술로 올라간 열을 식히기 위해 얼른 침대에 누워 부모님께 좋은 결과가 있든 없든 느낌 별로였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내밀고 그래도 고기는 맛있었노라 말했다. 기왕 사주는 거 소고기면 좀 어땠나며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벽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은 흘렀다.
취한 술 덕분인지 침대는 나와 찰싹 붙어 자꾸 빙빙 돌아댔다. 지금의 내 감정이 그랬다.
이틀쯤 지나오지 않는 문자와 오지 않는 전화. 그렇게 2주쯤 지나, 이미 면접에 떨어졌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이미 입사해 친근한 회사복을 입고 열심히 일을 배워나가리라. 고기의 맛이 비록 씁쓸할지라도.
나는 술이 그리 강하지도 않았고 멘탈 또한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와의 식사 시간은 따분하고 괴로웠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실했고 간절했다. 그런 간절함을 당연한 듯이 이용하는 회사에게 돌을 던질 순 없으니 매번 미련이 남고 아쉽고 후회됐다.
그냥 깔끔한 한식당에서 최종 1명을 뽑는 자리니 나머지 인원에게 미안해서 밥을 사준다며 가벼운 식사였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엔 남아있을까? 어쩌면 이런 불쾌한 기억을 심어준 덕분에 여러분에게 이렇게나마 적을 수 있음에 다른 의미로 감사함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