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려지는 식재료가 있다. 바로 새순이다. ‘순(筍)’이란 나무의 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새로 돋아난 연한 싹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두릅과 참죽순(가죽나물), 오가피·엄나무의 순이 있다. 이 어린잎들은 모양은 얼핏 같은 듯 다른 듯 헷갈리지만 데쳐 놓으면 그 맛과 향이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새싹과 새순은 약간이지만 독기가 있기 때문에 소금과 식초를 넣은 물에 데쳐 찬물에 담가 쓴맛과 독성을 제거한 후 꼭 짜서 숙회로 먹거나 된장에 무쳐 나물로 먹는다. 전을 부쳐도 별미다. 데친 순을 물과 함께 얼려 놓으면 입맛 없을 때 요긴한 반찬이 된다.
온 산이 다 우리의 시장(市場)이다 보니 먹을 것도 많은데 오디, 자두, 개복숭아, 복분자, 호두가 지천이다. 우리는 둘 다 열매 수확에는 별 취미가 없어 내버려두고 있다. 하지만 ‘순’은 얘기가 다르다. 진입로를 따라 두릅이 자라고 강아지 마루의 집으로 쓰고 있는 차고 앞에는 커다란 참죽나무가 있다. 말 그대로 '자연산' 순(약을 치지 않아서인지 개미가 엄청 많다. 요놈들도 맛있는 걸 아는 게다)이 가운뎃손가락만큼 자라면 수확을 시작한다. 더 키워도 되지만 비가 오면 잎이 쇠기 때문에 연할 때 따는 게 낫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두릅은 숙회, 참죽순은 된장무침이 가장 맛있다.
(여담이지만 참죽나무와 가죽나무는 완전히 다른 나무인데도 어르신들이 가죽나무라고 부르셔서 그런 줄 알았다가 자료를 찾아보고서야 확실히 알았다. 참죽나무는 색이 붉고, 단단한데도 가공하기 좋아 가구용으로도 많이 쓴다고 한다. 가죽나무는 식용이나 목재로도 별 효용이 없는데다 번식력이 매우 강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봄에는 왜 이리도 향이 좋은 먹거리가 많을까? 또 선조들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조리해 먹게 되었을까? 단지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가난 때문이었을까? 순을 따도 나무는 죽지 않고 매년 다시 잎을 내민다. 열매를 먹고 남은 씨앗은 다시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운다. 넉넉한 자연으로부터 빌려오는 음식은 보리가 날 때까지 내 아이를 먹이고 주린 배를 채워주는 감사한 것이었으리라.
또한 얻어온 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비했는데 배추나 무청, 고사리, 호박, 가지 등 각종 채소를 햇볕에 말려 저장했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 장을 만들었고, 그 장에 장아찌를 담갔다. 또 각종 김치와 동치미, 젓갈을 만들어 오래 두고 먹었다. 시래기 하나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가! 한식을 접할 때면 이런 소박한 재료들로 그토록 훌륭한 맛을 창조한 옛사람의 지혜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에 반해 현대는 먹을 것이 풍부해져서인지 남아 버리는 음식이 너무도 많다.
언젠가부터 먹는 방송이 엄청나게 느는 추세이고 ‘먹방’이 아니더라도 음식 관련 콘텐츠 비중이 상당히 크다. ‘굳이 음식 먹는 장면이 나와야 하나?’라는 의문이 드는 프로그램도 많다. 그중 정말 혐오스러운 것은 너무 많은 음식을 질질 흘려가며(식사 예절은 고사하고) 입에 쑤셔 넣거나 면을 한 번에 빨아들이는 ‘면치기’ 따위를 한답시고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줘가며 지저분하게 먹는 유튜버들, 전문가도 아니면서 남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에 가타부타 평을 달며 무료 식사나 뒷돈을 요구하는 소위 ‘블로거지’들의 행태다.
그들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느낄까? 생명을 주는 음식의 소중함, 수고하는 손들에 대한 감사, 나눔과 절제의 미덕을 배울 수 있을까?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너무 많이 먹고 마시는 습관, 즉 탐식(貪食)은 여섯 딸을 낳는데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무절제한 웃음, 꼴사나운 환희, 무례함, 더러움, 수다, 그리고 우둔함이다.”라고 경고했다.
굳이 아프리카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 아직 무료 급식소의 도움을 받는 어르신들과 끼니를 다 챙겨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2022년 기준 식량자급률 32%, 곡물자급률은 23% 정도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 이는 전쟁이나 전염병, 경제 제재 등으로 한국이 봉쇄되어 외국의 화물선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2개월 이내에 국민 대부분이 먹을 것이 없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쌀이 남아돈다는 착각과는 반대로 식량 위기에 대비하려면 지금보다 쌀 생산량을 50만 톤 이상 늘려야 하고 식량 낭비를 현재의 반으로 줄이면 식량자급률을 50%로 높일 수 있다는데 방송이 앞다투어 낭비를 조장하고 있으니 이 무슨 난센스인가!
음식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기막힌 일도 있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진미로 캐비어나 푸아그라, 샥스핀 등이 있다. 철갑상어는 번식을 위해 알을 품는데 그 알인 캐비어 때문에 멸종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간을 크게 만들기 위해 거위를 꽉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깔때기로 필요량 이상의 먹이를 주입해 푸아그라를 얻는다. 중국 최고의 보양식이라는 샥스핀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말려서 만든 요리인데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바다에 버린다고 한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많은 종교가 먹는 것을 가리고 절제할 것을 권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아담에게 주셨고, 이슬람교는 술을 금하고 불교는 살생 자체를 금하기도 한다. 건강을 위해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하고 팍팍한 인생에 기름칠해줄 술도 가끔 마셔야 하는 우리, 철저한 금욕의 삶을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런 가르침이 생명의 소중함과 무분별한 욕망의 절제, 우주의 질서를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생물 종의 멸종 속도가 인간 이전의 무려 천 배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이 있고, 불과 하루 만에 10종씩 사라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비교적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인 무주도 양봉업자가 줄었고 이상기후로 냉해를 입는 과수원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은 이기심의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될 것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식량 위기, 기후 위기를 타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업과 정부, 세계가 인식을 같이한다 해도 한순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의 자각과 노력이 기업과 정부를 움직이고 나아가 지구를 지키는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식생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되 먹을만한 음식을 적당한 양만 먹고, 적어도 단순한 호기심이나 허영심으로 마구 먹고 버리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 식량자급률: 국내에서 소비하는 식량의 공급량 중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차지하는 비율
** 곡물자급률: 국내에 필요한 곡물을 자체적으로 공급하는 비율. 전년도 곡물 총생산량을 금년도 곡물 총수요량으로 나누어 계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