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맘때였나, 4월이 시작되니 괜히 싱숭생숭 마음도 들뜨고 해서 진안 마이산(馬耳山)으로 방향을 잡았다. 말의 귀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마이산은 1979년 전라북도의 도립공원으로, 2003년에 명승 제12호로 지정된 높이 687.4m의 산이다. 남부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산 묘(駬山廟), 금당사(金塘寺)를 거쳐 탑사(塔寺)까지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에 있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은수사(銀水寺)까지 가려면 300m 정도 더 가야 한다. 암마이봉 등반은 딱 한 번 해봤는데 너무 아찔한 경험이라서 다시 하지는 않기로 했다.
사찰을 세 개나 품고 있는 이 작은 산은 각종 문화재와 천연기념물 등 볼거리가 많은 데다 길이 비교적 평탄해 산책하듯 걷기에 좋다. 벚꽃이 장관인데 비교적 늦게 피므로 전북에서는 마지막으로 벚꽃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세계적으로 특유하다는 음양봉(陰陽峰)으로 ‘영산으로서 산신이 있다’라고 믿어왔던 고장의 특성을 살려 매년 10월 12일을 진안군민의 날로 정하고 산신제를 비롯한 ‘마이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로 한 번쯤은 꼭 가보길 권한다.
어쨌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마이산을 향해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진안 읍내로 들어가 버렸다. 밥때가 늦어 배도 고픈 데다 마이산을 자주 찾는 우리로서는 가봐야 먹을거리가 뻔하므로 읍내에 먹을만한 식당이 있나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 가다 보니 낙지요리 전문점이 눈에 띄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입맛도 없는데 매콤한 낙지볶음이나 먹을까?’ 하다가 마침 제철인 주꾸미를 좋아하는 남자의 의견을 따라 샤부샤부를 선택했다.
정갈한 밑반찬이 나오고 채소와 샤부샤부 육수가 세팅되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스테인리스 면기에 살아 있는 주꾸미를 가득 담아 툭 놓고 가신다. 주꾸미가 계속 기어 나오는 통에 기겁한 나는 입맛이 다 떨어질 뻔했지만 신선함은 증명된 셈이었다. 밥알처럼 생긴 알을 가득 밴 주꾸미는 산란기 전 3월에서 4월 초에만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별미라고는 하지만 사실 별맛이 없고 죄책감만 든다. 오히려 영양가나 식감으로 치면 가을에 먹는 주꾸미가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세 사람은 먹을 양을 둘이 해치우고 소화도 시킬 겸 목적지인 마이산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기로 했다. 대뇌와 소화기는 미주신경을 통해 신경 축으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 음식을 통해 기분 조절제인 세로토닌 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서일까, 태양 빛을 받아서 비타민 D가 활성화된 걸까, 조금은 우울감이 사라진다.
내게 4월은, 아름답지만, 무척 가혹한 달이기도 하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습관적으로 병이 깊어졌다는 시인의 시 《목련》, 시대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는 가난했던 시인이 노랫말을 쓴 가곡 《4월의 노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 이런 것들이 기억 저편으로부터 떠오르면서 위장에서 시작되는 간지러운 쓰라림이 온몸으로 퍼져간다.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다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상실감과 허무와 절망이 되어 마음의 병을 키운다.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처럼 고통스럽지만, 떼어낼 수 없는 환희와 묘한 그리움 때문에 나는 봄에 집착한다. 매화와 수선화를 선두로 경쟁하듯 피기 시작하는 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것도 아름다운 것들을 이 봄에 가둬두고 싶은, 이 계절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집착증일 것이다. 그러나 봄날은 너무도 빨리 멀어진다.
T.S.엘리엇의 유명한 장시(長詩), 「황무지」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한다. 강렬한 이 시의 첫 구절이 봄의 한가운데, 4월이 특별히 서글프게 느껴지는 원인 제공지인 것도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문명이 겪은 상실감, 신앙을 잃고 진정한 생식(生殖)과 재생(再生)이 불가능한 절망적 상황에서 생명과 희망을 환기하는 봄이라는 계절의 비극성을 노래했다는 해석. 하지만 미국 시카고대 영문학 교수 제임스 밀러는 엘리엇에 관한 전기적 연구를 통해 「황무지」를 지배하는 상실감이 서구 문명에 대한 것이 아니라 1915년 갈리폴리 해전에서 전사한 베르드날이라는 의대생의 죽음에 대한 엘리엇의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엇 자신도 이 시는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엘리엇은 개인적 감정을 반영하되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객관적 상관물’의 발견을 시작(詩作)의 출발로 보았다고 하니) 평론가들의 해석이 ‘꿈보다 해몽'은 아니겠으나 실제로 베르드날의 죽음이 그에게 꽤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엘리엇은 그를 사랑했을까?
나는 「황무지」를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아니, 한번은 기어이 그저 읽어 내려갔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첫 연뿐이다. 그런데도 ‘잿빛 죽음과 불모의 문명을 비웃듯 아름답게 만발하는 꽃들, 현실의 아픔, 그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공허한 추억, 그리고 재생을 원치 않는 정신의 황폐’라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정문 바로 왼쪽, 자연대 건물 뒤편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맑은 봄날,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는 물가에 수양버들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던 곳. 인적 드문 작은 연못의 벤치가 그 시절 나의 아지트였다. 강의와 강의 중간에 틈이 나면 나는 그곳으로 달려가 사색하거나 책을 읽곤 했다. 자유를 꿈꾸고, 신앙과 무신론 사이에서 고뇌했으며, 사랑을 했다.
엘리엇에게 4월이 잔인한 것이 젊은 베르드날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고 베르드날을 상징하던 라일락이 추억과 욕망의 꽃이라면, 버드나무 늘어진 작은 연못은 퇴색해 버린 나의 젊음과 잃어버린 꿈, 그리움과 감회(憾悔)는 나의 4월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이산에도 곧 벚꽃이 피겠지? 20세기의 봄은 그만 잊자. 나이가 들면 기가 입으로만 몰린다더니, 쓸데없는 잡념과 말이 많아진다. 내년 봄이 오면 또다시 싱숭생숭 마음이 들뜨겠지만 내 정신은 이제 어느 정도 재생이 된 것 같다. 살아남았고, 삶을 다시 사랑했기에 상처도 후회도 나무의 옹이처럼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 우울감 정도는 가벼운 산책과 생각의 전환으로 얼마든지 떨쳐버릴 수 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살아낸 것, 지나간 추억이 아니라 만들어낼 행복이 더 값진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4월에 고맙다고 말하자. 그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자. 그리고 안 보는 척 내 눈치를 살피는 저 속정 깊은 남자와 맛있는 추억이 가득한 봄을 만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