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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Nov 03. 2024

얼갈이배추 물김치

  부모님은 요즘 뜰이며 텃밭 가꾸는 일로 대충 때우시는 분위기고, 뭔가 입맛을 돋우는 반찬을 해드리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고… 시원한 물김치만 있으면 밥이 넘어간다는 엄마를 생각하니 얼갈이배추로 물김치라도 담가야겠다. 김치와 된장이 없었다면 한국인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신맛과 감칠맛, 유산균과 효소가 엄마의 입맛을 되돌려주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요리는 고되도 행복하다. 하지만 준비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이 드는 식재료 중에서도 채소는 누가 좀 대신 다듬어 씻어줬으면 원이 없겠다. ‘채소 다듬어 씻기에 특화된 AI 로봇 만들면 대박 날 텐데…’하는 맨날 하는 염불, 하나 마나 한 공상(空想) 속에 어제도 씻고, 오늘도 씻고, 내일도 씻을 예정. (다행히 손바닥만 한 과일 세척기를 발견해 유용하게 쓰는 중이다. 농약만 제거해 줘도 그게 어딘가! 세상 간편한 제품으로 채소가 주식인 우리에게는 아주 고마운 상품이다.)


  그나마 얼갈이배추는 밑동을 잘라 깨끗이 씻으면 되니 손질이 간편하다. 얼갈이란 가을, 겨울에 대충 갈아엎은 땅에 푸성귀 따위를 심는 일이다. 11월에서 12월이 제철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매년 여러 번 수확하므로 일 년 내내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자주 손이 가는 재료다. 김치를 담가도 좋고 나물로 무치거나 국을 끓여도 맛있다. 손이 큰 나는 국을 끓여도 한 솥인데 얼갈이배추 된장국은 금세 동이 난다.


  깨끗이 씻은 얼갈이배추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소금에 잠깐 절였다가 물기를 빼고 고춧가루와 마늘과 생강, 양파와 사과와 배를 밥과 함께 갈아 면포에 넣고 짜준다. 홍고추를 갈아 넣는 것이 좋지만 씹을 때 걸리적거리는 게 싫다면 어슷썰기 해 넣어 맛과 색, 식감을 살릴 수 있다. 물김치는 풀을 쑤어 넣는 것보다 찬밥을 갈아 넣는 게 더 맛있는 듯하다. 부모님께 드릴 김치가 좀 더 영양가 있으라고 잡곡밥을 사용한다. 양파를 조금 채 썰어 넣고 물을 붓는다. 간은 액젓과 소금이면 충분하다.


  식욕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시각과 미각, 후각에 의해 영향을 받으므로 질병이나 약물, 우울증과 스트레스, 노화로 인해 감각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면 식욕이 감소하기 마련이다. 엄마는 위의 원인을 다 가지고 있으니, 입맛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몸이 약한 엄마는 ‘고로롱팔십’이란 말로 나를 위로하지만 ‘건강백세’ 시대에 ‘고로롱팔십’이 웬 말인가! 어떻게든 엄마의 식욕을 되살리기 위해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입맛을 잃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누구는 식욕이 춤을 춰서 비만과 성인병에 노출되어 있다. 바쁜 현대인에게 건강한 식생활은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식욕 조절에 관여하는 가장 주된 호르몬으로 ‘렙틴’과 ‘그렐린’이 있다. 시각이나 후각 등 감각기관을 통해 자극을 받으면 위에서 그렐린이 분비되어 섭식중추를 자극, 우리 몸에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낸다.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고 나면 우리 몸속의 지방세포가 렙틴을 분비하고, 이 호르몬이 포만중추를 자극해 식사를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지방세포가 많을수록 렙틴의 분비량은 많아지지만, 뇌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기능은 떨어지게 되므로 결국 비만이 비만을 부르게 된다는 아이러니…)

  렙틴은 식후 20분이 지나 분비되므로 식사를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짧은 점심시간 중 단 30분이라도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식당에 가서 주문하고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반 시간이 휙 지나가 버린다.


  가짜 식욕이란 것도 있다. 진짜 식욕은 어떤 음식이든 먹으면 채워지지만, 가짜 식욕은 실제로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특정한 기분이 들 때나 특정한 상황일 때, 특정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발생한다. 배고픔과 목마름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필수 영양소와 식이섬유가 부족한 경우 생기기도 한다. 양배추나 오이를 먹었을 때 해소되지 않으면 거의가 가짜 식욕이라고 하니 가짜 식욕은 탐식에 가깝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하다는 말도 있다. 고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면 무조건 행복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부분적으로 상당한 과학적 근거들을 가진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강한 몸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적당한 신체활동 및 운동이 중요하다고 한다. 운동은 신경전달물질 수치 조절, 엔도르핀 분비 촉진, 인지 기능 향상과 함께 수면의 질도 높여준다니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나 같은 사람은 ‘산책도 운동’이라고 우기며 열심히 꼼지락거려볼 일이다.


  잘 먹는 것도 건강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다. 한 유명한 소설가는 2시간에 걸쳐 밥알을 세듯이 식사를 하고, 매일 산책을 하는 것이 오래 다작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좋은 음식을 적당히, 천천히 먹는 습관만으로 상당히 건강해질 수 있다. 흰 쌀밥이나 밀가루 면 요리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리는 만큼 적당히, 천천히 먹을 수가 없다. 거친 푸성귀와 잡곡밥이 정답이다.


  50년 넘게 환자들을 봐오신 아빠께서는 “먹고, 싸고, 자는 것만 잘해도 건강하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시간이 갈수록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적당한 운동과 질 좋은 식사,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건강해진다면 그 세 가지는 저절로 잘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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