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위만 커진 괴물들

사유

by 박성욱

얼마 전, 오랫동안 존경해 온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마치 신체 일부만 과도하게 커져버린 ‘괴물’들이 늘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씀이 쉽게 와닿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의 통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정보가 쏟아지고, 알고리즘과 AI 기술의 도움으로 예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정답을 얻는 ‘속도’와 ‘양’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스스로 사유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퇴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 읽은 책 한 권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현대사회에서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황은, 겉보기에 ‘지식의 진보’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 내면의 사유 과정을 메마르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의 답만 빠르게 가져다가 자기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괴물’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나만의 생각을 잃어버리는 순간


원하는 답을 얻는 과정은 쉽고 빠르다. 뭔가 모르면 검색창에 몇 글자만 입력하면 된다. 인공지능이 한 번에 요약해 주고, 전문가들이 정리해 둔 글을 복사·붙여 넣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여기까지는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결과물을 자신이 직접 고민하고 얻은 것이라고 착각할 때 발생한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어느새 자기 생각을 확장해 가는 대신, 남이 떠먹여 주는 답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른다. 한마디로, 몸의 특정 부분 가령 지식이든 정보력이든 한 부위만 거대해지고 정작 깊이 있는 사유의 힘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왜 사유가 필요한가


정답을 얻는 과정이 쉬워진 만큼, 오히려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힘이 더욱 중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불편한 상황,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부딪혔을 때 해결책을 찾아가는 힘은 끊임없는 ‘생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답을 찾는 일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 그 자체를 말한다. 내 안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품고, 다양한 관점과의 충돌 속에서 나만의 통찰을 얻는 과정을 포함한다.


함께 고민하고 더 나아가기


정보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적 혜택은 분명 크다. 다만 그 과도한 풍요로움 속에서 나만의 생각과 사유의 과정을 잃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의문을 품는 습관: 남의 지식이나 정보를 접하더라도 ‘이게 과연 맞는가?’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천천히 곱씹는 태도: 클릭 몇 번으로 얻은 정답이라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며, 가슴에 와닿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자.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기: 읽은 글이나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외우기보다, 내 생각으로 재정리하는 과정을 거쳐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나 자신의 지평을 넓히고,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길러준다.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는 쉽지만,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일은 결국 내 몫이다.


우리는‘생각하는 힘’을 왜 놓치면 안 되는지,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닌 나만의 통찰을 얻기 위한 과정을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


결국 ‘한 부위만 커진 괴물’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지식을 넘어 통찰과 공감의 깊이를 키워나갈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누구나 질문할 수 있고, 누구나 깊이 사유할 수 있다. 다만 그 귀한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내 생각으로 살아가는 법’을 잊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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