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걷기가 매번 망설여지는 이유는 살을 에듯 파고드는 그 지독한 추위 때문이다. 하지만 이불속의 안온함을 떨쳐내고 그 시린 고통을 뚫고 굳이 아침 길을 나서는 건, 오직 추위만이 나를 명징하게 깨어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뜻한 실내에서 흐릿해졌던 삶의 윤곽이 차가운 공기와 충돌하는 순간, 비로소 날카롭고 선명하게 되살아 난다. 추위는 나태해진 정신을 일순간 일깨우는 가장 정직한 죽비와 같다.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대문을 나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벼려진 칼날처럼 서늘한 새벽의 냄새다. 겨울의 길 위에서 공기는 더 이상 투명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살결에 닿는 구체적인 질감이며, 폐부의 구석구석을 씻어내리는 단호한 세례다. 얼어붙은 땅 위를 걷는 내 발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리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불필요한 소음들을 솎아내고 나의 존재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따금 멈춰 서서 바라본 그늘진 돌 틈에는 밤새 내려앉은 서리가 결정체마다 작은 우주를 품고 있다.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피어난 그 정교한 문양들을 보며 서두르는 마음의 속도를 늦춰본다. 웅크린 채 겨울을 견디는 작은 생명들의 맥박이 내 발바닥을 타고 전해질 때, 나는 비로소 세계와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한다.
겨울은 소리를 줄이며 찾아온다. 세상은 한 겹 낮아진 숨결로 움직이고, 나는 그 고요의 결에 천천히 마음을 맞춘다. 찬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면 가라앉지 않던 생각들까지 조용히 누워버린다. 겨울은 날카로운 계절 같지만, 그 차가움이야말로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털어내게 한다. 잎을 모두 비운 나무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표정으로 서 있고, 바람은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눈은 내리지 않아도, 겨울의 공기는 이미 모든 풍경을 얇게 덮어두고 있어 사물의 윤곽이 한층 선명해 보인다. 겨울의 빛은 번잡함을 걷어낸 채 사물의 뼈대를 드러내고, 나는 그 단정한 풍경 속에서 멈추어 서 있는 것들의 깊이를 배운다. 멈추어 선 것들만이 가장 진한 소리를 지닌다는 사실을, 겨울은 말없이 알려준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세계는 자신을 조금 접어 내게 내어준다. 숨은 얇아지고, 생각은 밝기를 잃어 고요의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그 순간 바깥의 풍경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나무의 빈 가지들이 만든 침묵의 결은 여전히 내 호흡 속에서 미세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때, 아주 긴 들숨 하나가 마치 내 안에 숨어 있던 오래된 그림자를 조심스럽게 끌어올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어지는 긴 날숨은 그 그림자를 서서히 풀어 흩어지게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들숨은 겨울바람이 빈 가지 사이를 스치며 만드는 낮은 울림 같고, 날숨은 그 울림의 잔향이 천천히 빠져나가며 고요를 되돌려주는 순간과 닮아 있다. 나는 그 호흡의 길 위에서, 내 존재가 확장되었다가 수축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든 순환을 조용히 지켜보는 목격자가 된다. 그때의 겨울은 말을 하지 않지만, 말보다 오래가는 울림으로 나를 감싼다. 나는 그 울림을 따라 하나의 숨, 하나의 멈춤으로 내 안의 결을 다시 쌓아간다.
눈을 뜨면 겨울 하늘은 더 넓고, 바다는 윤슬마저 접어두며 침묵하고, 나무의 빈 가지는 새 문장을 쓰듯 정연하며, 땅은 모든 것을 지탱하기 위해 한층 단단해져 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고요해질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