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시작할까? 근육이 긴장한다, 한쪽 다리가 기둥처럼 땅과 하늘사이에 몸을 지탱한다. 다른 쪽 다리가 뒤에서 휙 옮겨 온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다. 몸무게가 앞쪽 발볼로 쏠린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밀어내면, 몸무게는 또 한 번 미묘한 균형을 찾아간다. 두 다리가 위치를 바꾼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한 걸음이 이어지면서, 탁, 탁, 탁, 탁 보행의 리듬이 생긴다. 더없이 자명하면서도 더없이 모호한 이 보행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슬며시 종교, 철학, 풍경, 도시 정책, 해부학, 알레고리, 그리고 애통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니체는 “나에게 세 가지 오락이 있으니, 첫째는 나의 쇼펜하우어, 둘째는 슈만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이라고 말했다. 니체의 라임을 맞춰보자. “첫째는 나의 버지니아 울프, 둘째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마지막은 혼자만의 산책.” 나의 사소하고 평범하며 반복적인 일상의 행복감은 걷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니코스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열정적인 불꽃이 피어난다’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열정과 자유로 즐기고 누리는 인간 조르바를 우리 곁에 두고 떠났다. 조르바를 크레타섬을 떠올리면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활기찬 새 봄의 에너지가 고개를 내밀곤 한다. 일종의 심묘한 심리 치료제인 것이다.
크레타섬의 푸른 바다 대신 대한민국 남부의 햇살과 바람을 품은 해운대의 푸른 바다에서 나는 걷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같이 거니는 똑같은 길이지만,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단 한 번도 똑같았던 적이 없다. 오늘과 어제와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를 것을 기대하게 된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다를 품은 풍경은 그날의 공기마저 자지우지하며 살결로 감지되어 산책자의 기분마저 흔들어 놓는다. 바다 푸른빛의 명암과 채도, 하늘의 미묘한 색의 조화와 구름이 흐르는 모양만 바뀌어도 그날의 분위기는 그날만의 독특함으로 기록되고, 태양의 크기와 온도는 그 모든 것을 희미하게 할 만큼 엄청난 존재감을 갖게 마련이다. 자연의 빛과 색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내면의 명암과 채도, 색과 모양은 잔잔한 호흡과 조화를 이루고, 발걸음의 리듬에 맞춰 피어나는 소박한 사색이 더 자유롭고 과감해질 때까지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두 발이 만들어 내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걷다 보면 눈으로 들어오는 세계와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만나 흐리고 모호한 마음을 예민하게 살피고, 일어나는 감정을 구체화하며 웅크리고 있던 마음에 불꽃을 피워낸다.
어제는 서점에 갔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발을 동동거릴 정도로 지금 바로 읽고 싶은 책이 생겨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갔지만, 원하는 책은 모두 품절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교보문고에 ‘<리베카 솔닛>의 책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피터 한트게>는 또 어쩌고? 완전 품절이라니 이건 무슨 의미람?” 도서관에도 없어서, 서점으로 달려왔건만,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중얼 거리며, 인터넷으로 3권의 책을 주문했다. 심술을 입술에 붙든 채, 어슬렁어슬렁 서점을 누벼본다. ‘두둥’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책을 만날 땐 무척이나 설렌다. 이름은 익히 알고 있던 작자였지만, 단 한 작품도 읽지 않은 김금희 작가님의 <식물의 낙관>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숲을 식물원을 동네 꽃집을 여름의 싱그러움을 닮은 책이다. 책의 만듦새에 홀딱 반해서(편집자와 친구 하고픈 마음) 예쁜 화분 하나를 고이 모셔가듯 달랑 한 권을 사가지고 후딱 밖으로 나왔다. 가방 속에서 골프 칠 때 썼던 선글라스 홍홀을 꺼내 꼈다. 이걸 왜 서랍장 구석에 두고 몰랐을까? 한결 가볍고 좋다. 돌아올 때는 걸어오겠다고 걷기 편한 옷으로 챙겨 입었다. 하얀 이 밤 반바지에 탑텐 하얀 면티가 전부다. 지하철로 네 정거장, 큰 도로를 기준으로 4.5km 정도 되는 거리로 평소 6km 정도를 걷는 내겐 가뿐하다. 그저 걸어보지 않았던 길일뿐이다. 차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풍경을 즐기거나, 외식을 하러 가서 혹은 카페에 있다가 목적지 근처를 산책하는 게 전부였다. 부분 부분으로 기억하는 거리를 이어서 걸어보는 것이다. 거리를 걸으면 차로 이동할 때와 다른 경로를 탐색해야 한다. 뻥 뚫린 큰 도로 대신 인도를 따라 걷고 잘 보이지 않는 숨은 명소가 없는지 살펴본다. 좁은 길 사이를 빠져나가거나 우회하며 걷다 보면 차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건물과 하늘, 바다와 바람이 선사하는 절묘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차 안에서 풍경으로만 보던 널찍한 공원의 푸른 잔디밭도 거닐고, 커다랗고 우아한 나무들이 들어선 시원한 그늘 속에 잠시 머물기도 하며 거리를 즐겨본다. 오늘도 다르게 흐르는 구름과 다르게 빛나는 바다색을 멍하니 바라보며 잔잔한 파도를 기다렸다는 듯 새 하얀 요트 몇 척이 유유히 바다의 정적을 즐기며 세련된 풍경을 더한다. 이 순간에만 펼쳐지는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담아둔다. 광안대교 위에 걸쳐진 듯한 태양 덕분에 하늘에서 쏟아진 별빛처럼 수면 위에 떠있는 윤슬의 반짝임은 오늘따라 더 강렬하게 빛나는 것 같다. 우연히 만난 이에게 길도 알려줘야 하고, 가끔 동네 맛집이나 관공서 위치도 알려주는 친절한 주민이다. 여행 중인 외국인과 가볍게 눈인사도 하고, 이어폰 줄을 질질 끌고 가다가 어떤 이의 도움으로 돌돌 말아 가방 속에 쏙 집어넣기도 한다. 오래 걸으면 그날의 이야기도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익숙한 길을 더 가까이 만나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걷다 보면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돌볼 수 없던 마음까지 차근차근 살피는 여유와 생각의 시간이 주어진다. 걷는다는 것은 주변으로 나의 움직임으로 나의 마음으로 향하는 관찰자가 되는 것이고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자연과 세상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걷기에는 생략도 건너뛰기도 삭제 기능도 없다. 오직 뚜벅뚜벅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단 안단테부터 프레스토까지 선택가능하며, 나는 그라베나 라르기시모를 추천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