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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장

by 콜리 Mar 15. 2025

 매년 태양이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 일본에서 맞는 첫 더위부터 부모님과의 연락은 더 이상 서로의 안부가 아닌 푸념들과 힘든 일상의 얘기들로만 가득했어요.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안부보다는 서로의 힘듦과 고충들만 있는. 연락은 점점 더 뜸해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힘들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부모님의 말에 감정적으로 대하기도 했죠. 거기에 고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된 사춘기가 아직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부모님과의 대화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짜증과 불만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난 후에는 내내 감정적이기만 했던 저를 돌아보면서 항상 후회했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지치게 하는 여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해져 일본에서의 첫여름은 저에게는 군대에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길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 온 지 벌써 4개월 차. 일본어 실력 향상도 더뎌지고 타지의 일상에서의 보람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죠. 나의 공부법이 잘 못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지친 것인지, 스스로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고 어느새 더위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막 만 4개월이 넘어가는 시기 었어요. 처음에는 나의 진로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무작정 해외로 나가서 혼자 살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했던 마음이었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더 다양하게 도전해 보고 경험을 쌓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져가기 시작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저에 대해서 알아가 보기 시작해야만 했어요. 먼저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일본어를 통해 언어뿐만이 아니라 저들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자라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여름 방학에 공부량을 늘려 장학금을 위한 면접에만 시간을 할애하고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간간이 신문 배달이나 편의점 대타 알바를 하면서 일상에서 추억할만한 추억거리라곤 없는 여름 방학을 보냈습니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본의 여름 방학은 한국에 비해서 조금 짧았어요. 방학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마다 방학을 하고 그중에서 봄과 여름은 조금 긴 방학을 보낼 수 있었죠. 총기간을 계산해 보면 한국보다 훨씬 더 긴 방학이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방학 끝자리에서 저는 다시 제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유학 경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학비를 해결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고 난 뒤에 다시 고민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엔화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장시간 지속되던 시기라 안 그래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부모님과의 관계는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제활동으로 더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장학금을 놓칠 수 없었고 저는 돈에 대한 집착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언제부턴가 일본에서 무엇을 하고 싶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세워 나갈지는 잊은 채 돈이라는 키워드만 뇌리에 깊이 박혀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죠.


프랑스; 보르도프랑스; 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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