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정 Dec 17. 2024

7년 만의 자유는 나를 살게 했다

죽어야겠다 는 생각을 여기서 도망쳐 살아야겠다는

생 각으로 바꿨다.


나는 원래 마음먹고 생각하면 실행도 빠르게 하는 성격이다. 내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첫 번째 실행에 옮긴 일은 다시 미용실에 취업하는 일이었다.


그 남자에게 벗어나 세상으로 나왔을 때 다시 노래방 도우미 같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배운 것도 없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생각나지 않았 다. 다방 일을 하다 다리가 다치면서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에서 일해봤던 경험을 살려서 미용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친한 언니도 내게 미용기술을 배워서 그 남자에게 벗어나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당장에 미용실에 취업을 했다.

살아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은 나보다 어린 나이의

디자이너 선생님 보조를 맞추는 일도 힘든지 모르고 버티게 했다. 아직은 그 남자 곁에 생활하고 있었기에

월급이 적은 건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그 남자 손아귀에서 벗어날 준비를 했다.


미용실에 다닌 지 일 년이 지났다.

기독교인이셨던 원장님과 함께 다니시던 교회 권사님 이 내 사정을 아시게 됐다. 나를 가엽게 생각하셨고 나를 돕기를 원하셨다. 그 뒤로 일 년을 더 함께 근무하며 그분들의 기도와 도 움으로 그 남자에게서 탈출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일 년 뒤 나는 원장님, 권사님 그리고 내 친구들 의 도움을 받아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계획대로 그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성공한다. 그동안 어딜 가서 일해도 혼자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을 배웠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모든 걸 끊어내고 옷 가방 하나만 들고 남자와 살던 집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곳을 벗어나 새 출발 하는데 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그 뒤로부터는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아무도 없고 살아 본 적 없는 도시에서 처음부터 모 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작은 반지하 원룸 방을 구했고 이불을 장만했다.


7년 만의 자유는 나를 숨 쉬게 했다.


늘 숨 막히는 공간에서 매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무기력한 하루하루 속에 술만이 나를 살게 했다.

죽어야 끝이 날 거 같은 깊은 터널 끝에서 나를 도와주 러 온 손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는 의지가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됐다.


내가 만약 그때 나를 도와주려는 손길을 만났어도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그 남자의 두려움 때문에 벗어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있음 에감사함을 누리지 못했을 거다.


삶이 힘들고 외로워 지쳐 무너져만 가도 반드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고 작은 용기와 의지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줄곧 꿈꾼 삶은 그저 평범함 이였다.


평범한 가족관계. 평범한 학교생활. 너무 가난 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적당한 살림살이.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삶. 평범한 환경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인생.

내 억센 팔자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는 인생.

그냥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 나는 지금 그 남자를 떠난 지 14년이 흘렀다.


끝날 거 같지 않은 그 긴 시간을 지나 지금은 너무도 평 범하게 꾸었던 꿈을 이루며 살아내고 있다.

어린 시절 미영이는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았나 싶게 잊었다.


그렇게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던 나는 우연인 듯 아닌 듯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도망 후 꾸준히 다른 미용실에서 근무했고 어느 날 친구가 나이트를 가자 했다.

나는 귀찮았으나 친구가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자꾸 미뤄내기 미안해서 함께 나이트를 갔다.


심드렁하게 앉아서 친구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냥 맞춰주고 놀다 나와야지 했다.

들어가서 10분이나 지났을까 웨이터가 나와 친구를 데 리고 부킹을 시켜준다고 데리고 갔다.


웨이터가 지정해 주는 대로 자리에 앉았고 맞은편에 앉은 친구 표정을 보니 맘에 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냥 시간 때워줘야지 하는 마음에 옆에 남자가 말을 걸어도 심드렁했다.


남자는 내게 뻔한 멘트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묻는 남자의 말에 나는 무심하게 귀찮다는 듯이 남자 만나서 놀려고요~ 하고 대답했다.


그게 나와 지금의 내 남편의 첫 만남이었다.


남편도 그날 그냥 하루 나랑 놀고 말 생각에 돌싱이고

4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도 내 이야기를 솔직히 이야기했다.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인데 뭐 어떠냐 싶었다.


그러다 가끔 맛있는 밥 사준다며 예의상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밥 먹자고 ~

혼자 모르는 외지에서 밥 사준다고 하니 나는 또 선뜻 나갔다. 젖은 파마머리, 슬리퍼에 티셔츠에 반바지를 대충 입고 나갔는데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엄청 놀랐다고 했다.


속으로는 욕했다고 한다.

그날 밤 나이트에서 본 여자는 어디 가고 짜리 몽땅 칠 렐레 팔렐레 하는 어린애 같은 애가 나왔다고 했다.

짜증이 났지만 이왕 만났으니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 생각한 남편과 아무 생각 없이 밥이나 얻어먹자 털레털레나온 우리는 그렇게 두 번째 만났다.


생각보다 나이트에서 만난 놈이 그렇지 하는 편견과 다른 평범하고 멀끔한 사람이었고 남편도 생각보다 순수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내가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만났고 나는 어차피 남편을 그냥 아는 편한 오빠로 생각해서 내 지난 일들을 다 이야기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고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전부 말을 했다. 남편은 그런데도 나를 편견 없이 대해줬다. 애 딸린 돌싱 말고는 너무나 평범했던 남자의 눈에 나 는 어떻게 보였을까?

그렇게 우리는 자주 만나고 서로 를 알아가다 서로에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서로의 아픔을 덮어주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꿈이던 내 꿈을 남편이 이뤄주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일 년을 공들여 연애했다.

특히 그의 4살짜리 아들과 함께 매일 같이 만났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했다.

잘 살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 다. 그렇게 나는 또 엄마를 닮은 듯 다른 가슴으로 낳은 아 들을 만나게 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