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자라온 환경에 비해 썩 괜찮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이만하면 잘 살았다 생각하며 더 더 아무 도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둘째가 돌이 될 무렵쯤 우리는 그곳에서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나는 참 강하다 스스로를 생각했는데 이사하고 아이가 돌이 지나고 큰애가 2학년이 되면서 많이 지쳐갔다.
여러 가지 강박들이 생기고
-이 행복한 시간이 꿈이면 어떡하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이제 행복한 데 불행이 또 닥치면 어떡하지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온갖 불안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 강박과 불안들과 육아 스트레스는 나를 점점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늘 가시를 세우는 짜증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남편에게 네가 이런 여자일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으니 아이들을 내가 갖고 있는 지혜로 잘못된 육아 방식으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나는 지혜롭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대로 키웠고 남편에게는 처음과 다르게 냉랭했다.
한 번 이혼한 상처를 약점 삼아 또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내게 잘하라는 태도를 앞세워 우리 집 남자 셋을 모두 힘들게 했다. 사실 남편은 내 과거를 모두 알았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지 않았는데 나는 남편의 약점을 늘 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나는 소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 격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더 낯선 곳에서 더 더깊이 동굴 속에 갇혀 살 기 시작했다.
둘째가 4살 28개월쯤? 내게 단 한 시간이라도 자유를 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찾았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시 작했다. 그 시간은 내게 꿀 같은 휴식을 주었지만 잔뜩 웅크려진 나는 잘 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다니다가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이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 또래 보이는 밝은 표정의 엄마가 내게 싱글벙글하며 다가와 민재 엄마시죠??
같은 반 한결이 엄마예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나를 아는 척하는 그 엄마가 너무 불편했다.
누구랑 말도 섞기 싫은데 왜 이렇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나 부담스러웠다.
다음 날에도 다음 날에도 자꾸만 마주치는 그 엄마가 불편했다. 아이들끼리 친한 지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하원차에서 같이 내리고 같은 단지지만 다른 동에 살아서 헤어질 때마다 아이들이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때문에 우리 둘째도 동굴에 갇혀 살 게 되면 어쩌나 싶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고 내가 먼저 그 엄마에게 다가갔다.
오늘 하원하고 뭐 하세요?
- 아파트 단지 도서관 가요~
-그럼 저희도 같이 가요~~
그날 우리는 아파트 단지 작은 도서관에 함께 갔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서로 좋아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원 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와 다른 밝은 성격의 한결 엄마가 신기했다.
나와는 다르게 상처 없이 잘 자랐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삶에는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다 주어지는데 한결 엄마도 마찬가지로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더 친밀함으로 다 가왔다.
우리는 점점 아이들 없는 시간에 차도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서로의 삶을 경청하고 나누면서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점점 내 상처를 보게 됐다.
내가 강해서도 아니고 내가 썩 괜찮아서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그게 당연한 줄 받아들이며 살았던 삶들이 그저 익숙했다. 상처가 생길 때마다 꼭꼭 숨겨 두고 외면하면서 괜찮은 척 살았고 그것이 끝내 곪고 곪아 나를 아프게 하고 내 주변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 가면서 나를 직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강해 나는 잘 살았어 나는 기특해 이만하면 충분하다며 아픔을 외면하고 내 몸에 잔뜩 박힌 가시들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찔러대는 내 모습을 보게 됐을 때 내가 참 안쓰러웠고 가여웠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 더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직면하는 나의 아픔들을 마주하고 가시를 하나씩 하나씩 뽑아가며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또 시원 함이 주는 그런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시 박혀 있던 내 아픈 상처들이 하나씩 치유되어 갈 때 내게는 한결이 엄마를 비롯해서 점점 더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온통 눈치를 살피며 밉보이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헤어지고 나면 내가 오늘 실수 한 건 없나? 맨날 그런 생각들로 피곤해서
누구를 만나고 관계 맺는 게 정말 싫었다.
하지만 이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편견 없이 대해 주고 내 삶을 편하게 나눠도 눈치 보거나 신경 쓰지 안 아도 편안한 그런 친구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봐주며 용서와 용납이 너그럽고 삶의 치열한 경쟁이나 시기와 질투도 없고 나를 돋보이기 위해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가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면서 나는 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갔다.
나는 스스로를 장하다 기특하다 잘하고 있다고 체면을 걸었지 내 생각은 사실 그렇지 않았던 거 같다.
그저 부모를 잘못 만나 실패한 인생이고 더럽고 망가진 지난날 내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서 아플 때마다 상처를 외면하고 가시를 하나씩 내 몸에 심고 있었던 거 같아서 내가 더 안쓰럽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눈물로 나를 치유해 가며 신뢰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 안에서 또 이전에 친구들과 건강한 관계를 회복해 가며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갔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소심한 사람이 아니 라 그저 나를 둘러싼 환경들과 내가 자라온 시간들이 나를 위축시키고 자신감 없게 만들어 버리고 점점 작아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눈치 보는 게 아니라 싹싹하게 상황들과
주변을 잘 챙기고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눔을 좋아하고 언제나 대범하고 당차다.
자립심과 독립심이 강하고 사교적이고 웃음이 많고 타인의 대한 배려와 긍휼함이 배어 있는 따뜻한 마음도 겸비한 장점 많은 사람이라는 걸 발견해 갔다.
나에게 거짓 생각을 심어주는 나쁜 생각의 씨앗들을 뽑아내고 이전에 나도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걸어오고 다져진 시간들임을 인정하니 있는 내 모습이 예쁘고 자신감이 생겼다. 친한 동생이 나보고 언니의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냐며 우스개 소리를 종종 한다.
이제 내가 두려움 없이 자신 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믿는 그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세상 밖 빛 가운데 내어 놓고 나와 같이
어둠 속을 헤매며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의
빛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간 하루하루 죽어야 끝나나 절망 가득한 삶도 내 삶이었고 행복한 시간도 내 삶이었다.
모든 것이 나였다.
지나오면서 앞으로도 또 내게 펼쳐질 일들이 빛 가운데소망으로 채워질 날들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