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우리 가족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까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을 만큼 누구나 쉽게 우리 가정사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훈수를 두곤 했다.
그러나 어찌 우리끼리 단절되어 귀 닫고 눈 닫고 살수
있으랴…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주는 조언들, 살아보거나 겪어보지 않고도 다 안다는 식의 판단의 눈초리들…..
우릴 위해 걱정하는 듯한 포장지를 씌운 채 건네던
수많은 오지랖들…..
그런 간섭들과 동정 어린 오지랖들은 겹겹이 쌓여 화가 되고 분노가 되고 서롤 향한 미움이 되었다.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중2, 중3 이 되자 그동안 억울하고 서러웠던 기억들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서운함과 섭섭함 미움과 분노가 뒤엉켜 좀처럼 풀릴 거 같지 않은 실타래가 되었다.
영준이는 한번 화가 나면 끝까지 폭발하곤 했는데
한 번은 초2 때 남편이 나 몰래 영준이에게 게임폰을
사준 적이 있다. 나름 영준이한테 잘해주고 싶어서 그랬다는데 그건 아이의 버릇을 망치는 방법이었다는 걸 왜 몰랐는지…
아무튼 영준이는 나 몰래 게임을 하다가 화가 난다고
핸드폰을 이빨로 깨물어 액정을 박살 낸 적이 있었다.
그걸 책가방에 꼭꼭 숨겨놓고 다니다가 내가 아이의
준비물을 챙겨주려고 가방을 열어본 순간 걸렸다.
남편도 영준이도 그날 나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다.
유난히 나는 상대를 속이고 거짓말하는 거에 대해
발작 버튼이 있는데 어릴 적 엄마가 늘 나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지독하게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에 강박이 있을 만큼 싫어했는데 그날도 남편과 아이가 협심해서 속였다는 사실이 화를 나게 만들었다.
아무튼 영준이의 성격의 장점은 끈기가 있어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데 단점은 화가 나도 끝을 보는 게 단점이었다.
나 역시 고집하면 누가 꺾을 사람 없는 똥고집에
이때는 누가 말리지도 못할 만큼 온몸에 칼날을 세우고건 들기만 해 봐라 살짝만 스쳐도 생채기를 내줄 테다.
초절정 불안정할 때였다.
그 둘이 만나 늘 으르렁 거렸으니,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단둘이 데이트를 다니고 등산을 다니며 깊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무슨 애 성질이 그럴까 싶지만, 보통녀석이 아닌 건
분명했다. 보통 아닌 아들 위에 더 보통 아닌 엄마와의
기싸움은 늘 누구 하나 힘이 다 빠져 일어설 힘조차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싸웠다.
나중엔 이유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미워하고 싸웠다. 어느 날 영준이가 핸드폰을 놓고 학교를 간 적이 있었다. 요새는 뭔 게임을 하나 하는 마음에 하면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핸드폰을 열어 이것저것 훔쳐보다가 친구들과 대화내용도 궁금해졌다.
헉…….
친구와의 대화문자에 나를 ㅇㅇ년 ㅇㅇ년 해가며 실컷 욕을 해 논 걸 보게 된 거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아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었다. 왜 저에게 영준이를 만나게 하셨나요.
저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싫어요….
그 뒤로 영준이의 목소리 행동 모든 게 싫어졌다.
사춘기라 예민한 영준이가 영재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면서 뭐라고 하는데 내 발작 버튼이 눌러졌고 나는 그동안 쌓아온 감정을 아이에게 전부 토해내며 아이가 아끼는 물건을 집어던졌다.
아이도 물러서지 않고 나보다 훌쩍 커진 키와 더 세진 힘으로 나를 제압했다. 내 양손을 붙잡고 벽에 밀치며 그만하라고 소리를 쳤다.
우리는 극에 달했고 서로를 증오하며 쳐다봤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엄마가 아닌 그 여자가 되고
아들이 아닌 나쁜 새끼 개새끼 소새끼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영준이 중3.
기필코 집을 떠나 기숙사 고등학교로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었고 기다리는 길고 긴 1년 내내 우리 집은 가정을 이루고 가장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