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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11. 2024

나를 찾아오는 고마운 고객님

말이 필요 없는 사이

바쁜 토요일.

가게 안은 정신없이 커트가 이어지고 있었다.


"먼저 오신 분 앞으로 앉으세요~"


우리는 연이어 순서대로 자기 경대 앞으로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 선생님이 고객님~ 앞으로 앉으세요 하고 불렀는데, 그 고객은 기다렸다가 나에게 머리를 맡기신다고 하는 거다.

나는 뒤돌아 고객들이 앉아계신 곳에서 나를 기다리신다는 고객을 찾아봤다.

전혀 모르겠는 분이었다.


나는 직업 특성상 고객들을 잘 기억한다.

특히 도드라지게 특징이 있는 고객들은 더욱 잘 기억해 내지만 조용히 다녀가시는 분들도 꽤 기억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숱도 진짜 거의 남아있지 않은 특징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고객님의 윗머리 부분은 반들반들하고 귀옆둘레머리만 조금 남아계신 60대로 보이는 고객이었다.


가끔 그런 고객을 만나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별로 자를 머리도 없구먼 아무한테나 하고 가지'


한 번은 그런 이야기를 함께 일하는 선생님과 나눈 적이 있었다.

"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아서 더 소중한 거야. 그래서 더 아무나한테 못 맡기는 거야"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아무튼 그 고객님 순서가 되었다.

나는 나를 찾아오신 고객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게 미안해서 몇 가닥 안 되는 머리를

조심조심 다듬고 있었다.

솔직히 3분짜리 컷이다.

그런데 너무 성의 업어 보일까 봐 심혈을 기울이는 척 가위질을 하며 고객에게 말을 걸었다.


"고객님 오늘은 날씨가 참 덥네요 그렇죠?


"....."


아무 대답도 없이 지그시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내 말을 못 들으셨나? 생각하고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댁이 어느 단지 세여?"


아파트 단지 중심상권에 있는 가게 특성상 주변 아파트에서 고객들이 주로  오시기 때문에 어디서 오셨는지 가볍게 물어봤다.


“….”


여전히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계셨다.


나를 기다리신 고객님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사이 커트는 끝이 났다.


계산을 마치고 고객님은 여전히 말대신 고개막 끄덕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셨다.


그렇게 그 고객님은 몇 번더 침묵 속에 커트를 하고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시간에 차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헬멧을 써서 알아보기 힘든 모습의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내 앞에 멈춰서 인사를 했다.

누군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헬멧을 벗은 아저씨가 멋쩍게 웃으며 나에게

“퇴근하세요?” 하고 말을 걸었다.


늘 묵묵히 눈을 감고 커트를 하고 가신 고객님이셨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고객님이 여기 사신다는 정보를 그날, 몇 달 만에 알게 되었다.


며칠뒤 내가 화장실을 갔을 때 그 고객이 또 오셨고

고객님도  점장님도 소파에 나란히 앉아 계셨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침묵 속에 고객의 머리를 해드리고 돌려보냈다.


고객님이 돌아가시고 점장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저 사장님은 꼭 은정선생님한테 하고 가드라? 내가 해드리겠다고 앉으라고 해도 대꾸도 안 해. 그냥 선생님 어디 갔냐고만 묻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셔 “


“저랑도 거의 한마디도 안 하세요… 눈만 감고 계셨다가 조용히 가세요..”


나는 이제 그 고객님이 오시면 무언의 통함이 있기에 편안하고 좋다.

아버지뻘 되시며 머리숱도 없어서 이제는 3분 컷을 해드려도 아무 말씀 없이 일어나시는 분.

나가기 직전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까딱 인사를 하시고 돌아가시는 그 고객님이 좋다.


가끔 얼굴이 발갛게 약주 한잔하고 오신 날엔

“쉬는 날이 언제야?

지난번 왔는데 없어서 그냥 갔어”

라고 몇 마디 안 되는 목소리를 들려주시기도 한다.


남자들은 대부분 익숙하고 편안한 곳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는 걸

여기 남성컷 전문점에서 알게 되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상세히 말해줘야 편하기도 했던 미용실 생활이,

이제는 이곳 나이스 가이에서 단조롭게 일하는 지금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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