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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12. 2024

내가 봐도 흡족했던 순간

최고난이도 커트


어떤 머리가 와도 두렵지 않은 나에게도,

난이도 최상의 고객이 있다.


심리적으로 불편한 고객도 있지만, 특히 두상 모양이 까다로운 고객들은 난이도가 높다.


그중 젤 어려운 두상을 가진 사람이 우리 남편이었다.

남편의 두상과 머릿결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일단 얼굴과 두상 전체적 조화를 살펴보자면,

남편은 넙데데한 사각형의 사람이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사각이다.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참 일관된 사각형이다.


남편의 두상은 어릴 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만 들어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보통 우리는 납작한 뒤통수를 가리켜


“절벽”

                

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절벽보다 험한


“낭떠러지”


라는 별명을 어릴 적 친구들이 붙여줬다.


두상의 윗부분부터 평편하게 잘 다져진 머리는 갑자기 뒤통수 꼭짓점에서 급경사가 펼쳐진다.

근데

“낭떠러지”

라고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급경사를 지나 뒤통수 중간 부분은

살짝 턱이 진다.

마치 절벽에 바위가 솟아 오른 거 마냥.

그 바위를 통과하면 다시 쑥 패인 경사가 나온다.


남편의 난이도 높은 머리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머리 한쪽으로 치우쳐진 쌍가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머리카락, 숱가위로 쳐도 쳐도 좀처럼 줄지 않는 머리숱…..


우리 시어머니는 남편의 두상을 정말 기가 막히게 빚어내셨다.


그렇다고 머리카락이 방방 들떠서

다운펌 시술을 할라치면

네모난 얼굴이 도드라져서 안돼,

네모난 얼굴이 부드러워 보이라고 굽실한 펌을 해주면 어깨 위로 대형 풍선을 달고 다니는 거처럼 방방 떠 보여서 안돼.

할 수 없이 우리 남편에겐 그저 유행 없는 짧은 스포츠머리가 제격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머리를 해주기 싫어서 다른 미용실에 보내곤 했다.


그런데 매번 맘에 안 들어하는 남편의 머리를

결국 다시 내가 해주게 되었다.


나는 남편의 머리를 만진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대단히 뿌듯함을 느꼈다.

최근 연달아 남편의 머리를 커트하면서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해봤고,

오늘 드디어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남편 머리의 디자인은,


첫째, 뒤통수의 낭떠러지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 잘 다져진 메주 느낌의 분위기를 둥글둥글 부드럽게 만든다,

셋째, 하늘로 붕붕 날아갈 거 같은 풍선 같은 머리모양과 숱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한다.


나는 오늘 셋 중 두 개를 성공했다.

아직 네모난 두상과 얼굴을 커버할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남편 두상의 최대 난제 낭떠러지는 얼추 가려졌다~!


나는 오늘 미용 생활 최고 난이도 숙제를 해결한 셈이다~!!


너무 기분이 좋고 신이 났다~!!


두상도 머릿결도 참 예쁘게 타고난 난이도 “하”

고객들의 머리를 해드리고 나면 대충 만져도 이쁘게 나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지만,

우리 남편처럼 난이도 “최상급” 고객들을 예쁘게 성공시키면 그때 그 짜릿함은 정말 오래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미용사로서 한 단계 성장한다.


매번

“다른 미용실에 가서 하고 와!!

여보 머리 만지기 너무 힘들어~!!”

라고 내쳤던 남편에게 오늘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앞으로 나한테만 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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