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한 옹고집
보통 헤어디자이너 하면 세련되고
젊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내가 여기 남성컷 전문점에서 만난 분들은 거의 대부분 40대 이후의 선생님들이었다.
특히 50대, 60대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대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경력 30년"
한 분야에서 30년이란 시간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을 테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일할 수 있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은 경력 30년 말고도 늘 하는 이야기가 있으신데,
"옛날에 나는 "
이라며 꺼내놓는 그 시절 화려한 경력이다.
사업을 하신 이야기, 연예인들을 상대로 일했던 이야기, 서울에서 잘 나가던 이야기 등등 말이다.
그런데 가끔 30년 된 경력을 가진 선생님들이 때로는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 옹고집"( 억지가 매우 심하여 자기 의견만 내세워 우기는 성미. 또는 그런 사람.)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신 건 아니다.
나와 함께 일하시는 점장님도 60이 넘은 연세에 여전히 세련되고 누가 봐도 고수의 느낌이 나는 분이지만, 지금도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은 받아들이시고 고객들의 원하는 니즈를 잘 살펴서 서비스를 해드린다.
그렇지만 가끔 옹고집 선생님들을 만나면 너무 힘들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가게는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커트를 무료로 해드린다. 그래서 어르신들 고객님들이 종종 오시는데, 한 번은 80대 할머님이 가게에 찾아오셨다.
"동네 노인정에서 여기 가면 머리를 무료로 잘라준다고 해서 왔어. 나는 다른 건 필요 없고 그냥 이 스타일에서 조금만 다듬어 주기만 했으면 좋겠어.
너무 짧지 않게 말이야."
그때 그 고집이 센 선생님이 자신의 경대로 할머님을 안내했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 엄마들은 머리 길면 관리하기도 힘들고, 길면 귀찮기만 하지. 그냥 짧게 자르시는 게 깔끔하고 이뻐"
" 아니야 나는 짧은 머리는 싫어
그냥 조금만 다듬어줘"
" 나이 먹고 늙어서 머리 길면 지저분해 보이고 안 이뻐 그냥 시원하게 잘라드릴게!"
선생님은 할머니의 말씀을 무시한 체 조금만 다듬어 달라는 머리를 짧은 쇼트커트로 만들어 버렸다.
내가 봐도 속상한데 할머니 본인은 얼마나 속이상하실까....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예쁘게 늙고 싶은 거 아닌가?
우리 눈에야 거추장 스러 보인다 쳐도 할머니는 그게 아니실 텐데...
아니, 할머니가 싫다고 하시는데 왜 본인의 생각을 우겨서 머리를 다 잘라 버렸을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상하실 할머니를 나는 위로한답시고
"어머니~ 머리 시원해 보이고 더 젊어 보이세요!
어머니 얼굴이 고우셔서 짧은 머리도 너무 잘 어울리세요~~! “
하고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서 선생님이 또 한마디 거든다.
"나는 우리 엄마 머리도 짧게 다 잘라드려요. 엄마들이 관리도 못하면서 길어서 다니면 그거보다 보기 싫은 게 없어."
정말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고집을 내세우다니. 대단하다.
속이 상하신 할머니는 마지못해 고맙다 한마디 남기고 가게를 나가셨다.
무료로 해준다더니 대충 막 해서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하실 것만 같아서 나는 너무 할머니가 신경 쓰였다. 그런 취지로 무료로 해드리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나는 선생님께 물어봤다.
"할머님이 머리 조금만 다듬고 싶어 하셨는데 왜 다 잘라드리셨어요?
할머니 속상하시겠어요."
선생님은 여전히 내게 아까와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몇 달 뒤, 그 선생님이 그만두시고 안 계실 때,
할머님이 오셨다.
속상해서 다시는 안 오실 줄 알았던 할머님이 오셨을 때 나는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그날 할머니가 원하시는 데로 머리를 조금만 다듬어 드렸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께 대신 사과를 드렸다.
그날 선생님은 어머님 머리를 편하게 관리하실 수 있도록 잘해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니 오해는 하지 말아 달라고.
미용사는 자기만의 신념과 철학은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고객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중심을 잡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고객이 원하지 않는 일을 끝까지 내 고집대로 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된 경력에서 나오는 경험이라고 해도 내 가무조건 옳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우리 점장님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일을 하게 된다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나의 신념과 철학을 지키면서,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미용인이 될 수 있도록 10년 뒤 20년 뒤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