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얼마간 선을 지키시는 듯하던 수연의 시어머니는
시간이 지나 또다시 예전처럼 참지 못하고 간섭과 방문이 잦아졌다.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 현수의 밥은 챙겼는지
반찬은 뭘 해줬는지 집은 치웠는지 묻는 어머니의 일반적인 대화들.
그때마다 수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머니. 잘 챙겼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속에 피곤함이 묻어나도 목소리는 최대한 부드럽게 유지했다.
‘이 정도야… 나도 이제 가족이 됐으니 감수해야지.’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관심’은 곧 생활 전반에 또다시 스며들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집 앞에서 연락하시고 들어와 부엌 정리를 시작했고 어느 날은 빨래 건조대에 걸린 수연의 옷들을 옮겨 접어놓으며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심지어 현수가 조금이라도 투정을 부리면 시어머니는 곧장 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얘가 밥을 안 먹는다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전했다.
현수는 그 분위기를 잘 알았다.
수연과 아빠가 함께 있을 때는 얌전하다가도 시어머니와 수연이 단둘이 있을 때는 은근히 수연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밥상 앞에서 “이거 맛없어”라며 숟가락을 내려놓거나
“할머니가 해주는 게 더 맛있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수연은 그 말에 웃어 보였지만 속에서는 작고 날카로운 가시가 하나씩 박히는 느낌이었다.
진우는 중재하려 애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어머니도 그냥 도와주려고 하는 거잖아. 자기도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 말은 곧 수연의 마음에 문을 닫게 하는 열쇠가 됐다.
밤마다 거실 불을 꺼놓고 주방에 홀로 앉아 멍하니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이 집이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 그렇다고 짐을 싸서 나갈 수도 없었다. 이제는 그녀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으니까.
어느 겨울 늦은 오후.
시어머니가 또다시 예고 없이 불쑥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근처에 올일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들르느라 미쳐 연락을 못하고 왔다고 말했다. 양손에는 반찬통이 들려 있었고 현수는 반갑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시어머니는 곧 주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건 이렇게 두면 안 되지 수연아. 애한테는 이렇게 해서 주면 안 좋아.”
그날 수연은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시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리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도 제 방식이 있습니다. 현수는 제가 책임지고 잘 키울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난번 진우 씨와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어머니가 이러실수록 현수와 저도 힘이 들어요.”
그 말에 거실 공기가 잠시 멈춘 듯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수연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반찬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서운하신 듯 현수에게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연은 그날 밤 오래 묵은 숨을 내쉬는 듯한 가벼움을 느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금은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였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의 삶을 지키는 ‘수연’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