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부킹, 그리고 평생 계약
그날.
“술 마시러 간 건 맞다. 근데 평생 계약서에 사인할 줄은 몰랐다.”
그날, 친구랑 ‘가볍게 한 잔’하러 갔다가… 인생의 가장 무거운 짐, 아니 보석을 만났다.
그게 내 결혼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회사일과 아이 키우기에 치여 살던 시절이었다.
이혼 후 어머니 도움을 받아 홀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말이면 온몸이 기름기 빠진 삼겹살처럼 힘이 쭉 빠졌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일탈’을 꿈꿨다.
아, 그 ‘일탈’이라는 건 위험한 게 아니라… 그냥 나이트클럽 가서 술 한 잔 하고 춤 좀 추는 거다.
물론 목적은 여자였다. 이건 부정 못 한다.
그날도 친구와 함께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했다.
DJ 음악이 울리고, 조명은 반짝였다.
그 속에서 작은 체구에 반짝이는 눈을 가진 한 여자가 들어왔다.
키는 작지만 당당한 걸음걸이.
그리고 첫 대화가 이거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남자 만나러 왔어요.”
… 이게 첫 대화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와, 솔직함은 인정한다.
작고 귀여운 외모지만, 절대 순진해 보이지 않는 눈빛.
당당하게 웃으면서도 어딘가 톡톡 튀는 매력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번호를 주고받았다.
사실 나는 그날 밤부터 벌써 이 여자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사귀고 한참 지나서 아내가 고백했다.
“솔직히 당신 첫인상? 별로였어. 정말 구렸어.”
그 순간, 34 년간 근거 없지만 자신감으로 버텨온 내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졌다.
이전까지 내가 만나온 여자들은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성격마저 강했다.
그래서 나는 늘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순한 양’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달랐다.
작고 귀엽고, 말도 상냥하고, 웃는 얼굴이 참 사랑스러웠다.
이 여자 앞에선 내가 상남자가 될 수 있겠구나.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집이 반짝반짝 깨끗했다.
거기에 음식까지 직접 해줬는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혔다.
그날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랑 살면 평생 밥 걱정은 없겠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시작됐다.
연애 초반은 뭐, 세상 모든 커플처럼 달달했다.
아내는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를 가끔 했는데,
표정이나 말투는 늘 밝고, 작은 체구에도 당당함이 있었다.
그게 나를 더 끌어당겼다.
그렇지만 그날 나이트에서 술 마시러 갔다가, 인생의 가장 큰 술값을 치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건 그냥 만남이 아니라, 평생 할부 계약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계약의 내용을 아직도 하나씩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