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은 새벽부터 분주했다.
대형 세트장 안, 스태프 수십 명이 분주히 움직이며 조명을 조정하고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었다.
윤서는 장비 가방을 정리하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실장님, 오늘도 예쁘게 해 주세요.”
도현이었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윤서를 향해 다가왔다.
“여기서 그렇게 말하지 마요.”
윤서는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왜요? 사실인데.”
“사람들 다 보고 있어요.”
“그럼 더 좋아요. 다들 알게.”
순간, 몇몇 스태프들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윤서는 괜히 머리핀을 정리하는 척하며 얼굴을 돌렸다.
시술을 하는 동안에도 긴장은 계속됐다.
거울 너머로 마주친 도현의 눈빛은 카메라보다 더 강렬했다.
윤서의 손끝이 떨리자, 그는 낮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실장님이 해주는 건 언제나 완벽하니까.”
윤서는 일부러 딱딱하게 대꾸했다.
“오늘은 대사 연습 안 해도 돼요?”
“지금 하고 있는데요.”
“뭐요?”
“사랑스러운 대사.”
그 순간, 거울 속 도현의 눈동자가 웃고 있었다.
윤서는 볼이 달아올라 고개를 돌렸다.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가 도현의 얼굴을 잡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 대본 속 캐릭터 그 자체였다.
윤서는 모니터 앞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컷!” 감독의 목소리가 울렸다.
촬영이 끝나자 도현은 곧장 윤서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물 한 병을 건네며 낮게 말했다.
“실장님, 오늘은 제일 먼저 챙겨야 할 사람이 따로 있어서요.”
그 순간, 주변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스태프들이 은근히 수군거렸다.
“봐요, 뭔가 있잖아.”
“완전 티 나는데?”
윤서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물병을 잡으며 속삭였다.
“제발, 티 좀 내지 마요.”
“숨기고 싶지 않으니까요.”
점심시간, 스태프들이 모여 도시락을 먹는 동안 도현은 일부러 윤서 옆자리에 앉았다.
“실장님, 김치 좀 주세요.”
“직접 드세요.”
“싫어요. 실장님 이 주면 더 맛있을 거 같아서.”
주변에서 킥킥 웃음이 터졌다.
윤서는 얼굴이 붉어져 젓가락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진짜… 귀찮아 죽겠네.”
“좋아요. 계속 귀찮을 거예요.”
촬영이 끝난 뒤, 스태프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는데 도현이 불쑥 다가왔다.
“오늘 기사 또 날 것 같아요.”
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좀 해요. 나 진짜 감당 못 하겠어요.”
그의 얼굴이 잠시 진지해졌다.
“윤서 씨, 감당은 제가 할게요. 윤서 씨는 그냥 옆에 있어요.
그게 제가 버티는 힘이니까.”
스태프 중 한 명이 멀리서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 쪽을 힐끔거렸다.
윤서는 순간 움찔했지만, 도현은 태연하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찍으세요. 어차피 숨길 생각 없으니까.”
그 여유로운 태도에 윤서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심장이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