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 잠깐 시간 돼요?”
윤서가 퇴근 준비를 막 끝낼 때쯤, 도현이 매장 앞에 서 있었다.
야구 모자에 흰 티셔츠, 편한 차림이었다.
유명 배우의 얼굴이 이렇게 무방비하게 드러난 걸 보고, 윤서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시간엔 왜 또…”
“잡으러 온 거 아니에요. 잠깐만 같이 가요.”
“어딜요?”
“바람 좀 쐬러.”
차 안에는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흘렀다.
윤서는 창문을 살짝 내려 바람을 맞았다.
도심의 네온사인이 사라지고, 한적한 고속도로가 이어졌다.
“이렇게 나가도 괜찮아요? 기자들이라도 또 보면”
“괜찮아요. 오늘은 제 매니저도 몰라요.”
“그게 더 큰일 아닌가요?”
“오늘은 그냥… 강도현이 아니라 도현으로 있고 싶어요.”
윤서는 고개를 돌려 그의 옆선을 바라봤다.
섹시하다고만 생각했던 얼굴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묘하게 귀여웠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작은 바닷가였다.
노을은 이미 저물었지만, 달빛이 파도 위에 은빛으로 흩어졌다.
“여기… 예쁘네요.”
윤서가 감탄하듯 말하자, 도현이 피식 웃었다.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예전에 혼자 많이 왔는데, 오늘은 꼭 같이 오고 싶었어요.”
파도 소리에 묻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윤서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자, 손으로 대충 눌러 내렸다.
그러자 도현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었다.
순간, 숨이 막힐 만큼 가까워졌다.
“윤서 씨.”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아직도 팬 같다고 했죠? 그거, 전 더 좋다고 했잖아요.”
“네… 기억해요.”
“그럼 지금은 팬이면서… 저랑 같이 있는 사람 해주면 어때요?”
윤서는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그런 게…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만들 거예요. 제가.”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불었고, 파도 소리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윤서는 잠시 시선을 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누군가 옆에 있는 게 설레고 좋은 게, 오랜만이에요. 예전엔 화면 속 도현 씨 보면서 혼자 웃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도현의 눈빛이 흔들렸다가 곧 단단해졌다.
“저도 그래요.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
잠시 침묵 끝에, 도현이 주머니에서 작은 카메라를 꺼냈다.
“기념사진 하나 찍을래요? 우리만 아는 거.”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래시가 번쩍, 둘의 그림자가 바다 위에 길게 드리워졌다.
사진을 확인한 도현이 웃었다.
“이거, 제일 소중한 사진이 될 것 같아요.”
윤서는 핑크빛으로 물든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다 보이고 있었다.